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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Jun 25. 2024

떠나는 교수님의 마지막 진심


어제 은퇴를 하시는 교수님을 위해 송별연을 마련하였다. 회의를 하고 중국집에서 회식을 했다. 식사를 앞두고 은퇴하시는 교수님의 마지막 말씀과 감사패 전달식이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교수님이 아니었고, 지나다니면 인사를 드릴 뿐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평소에는 몰랐던 분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하시는 말씀이 내 마음에 와닿았다.     


요지는 이랬다. 교수 생활을 하시면서 본인의 과목이나 분야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 시간만 해도 전체 교수 생활의 2/3 정도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끝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고 하셨다. 말이 그래서 불교 철학 같지만, 마치 공(空)과 같은 상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학문을 할 거면 남아 있고, 학문에 뜻이 없으면 나가라고 하셨다.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정신을 깨우는 큰 충격을 받았다. 떠나는 교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진심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치 떠나는 사람만 할 수 있는 말들. 그 말들은 몇 십 년 교수 생활을 하고 남은 정수 같았다.     


먼저 마지막 말부터 따져보자면 결국 교수 생활은 학문에 있다는 것이었다. 다들 능력도 있고 실력도 있지만 학교에 남아 있는 것은 물론 안정된 생활이나 사회적인 지위를 얻기 위함도 있을 수 있지만 결국 학문을 하지 않을 거면 나가는 게 낫다는 의미다. 돈도 나가면 더 잘 벌 수 있는 사람들이고, 사회적인 지위도 어차피 교수가 끝나면 없어지는 것이고, 학문에 뜻이 없으면 크게 메리트가 없을 수 있는 직업인 것이다. 교수님은 그래도 학문을 하면서 행복했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좋게 느껴지면서 한편으로는 뭔가 쓸쓸했다.  

   

그리고 2/3가 되는 교수 생활 동안 학문에 대해서 고민을 한 결론이 공(空)이라는 것이 내 머리를 크게 울렸다. 결국 교수도 학문도 인생처럼 비슷한 결론에 이른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뭔가 많은데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그 느낌. 뭔가를 많이 하지 않으면 이를 수 없는 결론이고, 깊은 고민이 없으면 내릴 수 없는 결론. 그리고 그 결론은 ‘아무것도 없다.’였다.     

그리고 본인의 분야에 대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했지만 속으로는 고민을 많이 하고 방황을 했다는 것. 겉으로 봤을 때는 확신에 차 계신 것 같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남들이 모르는 생각이 많았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속으로 확신에 찬 사람은 오히려 그 분야에 대한 깊은 고민과 여러 가지 것들을 고려하지 않아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마치 빈 수레가 요란하고,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것처럼 삶에 대한 통찰이 적은 사람일수록 오히려 겉으로는 더 화려한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을 알면 알수록, 인생을 알면 알수록 고민과 방황이 깊어지고,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더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학문을 선택해야 할까. 평생 학문을 하고 공(空)이라는 결론에 이른다고 하더라도 그 인생을 선택하고 끝에 가서 행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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