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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Nov 09. 2024

난생처음으로 머리를 기르다


내 머리는 직모다. 직모도 장점이 있겠지만 어릴 때부터 나는 직모의 단점만 많이 경험했다. 여자였더라면 머리를 길러 찰랑거리는 생머리로 다닐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직모가 여러모로 불편하다. 삐죽삐죽 솟는 머리카락 때문에 길이는 항상 애매하고, 조금만 길어도 지저분해 보이고, 조금만 더 잘라도 군대 머리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사회인이 되고 내가 돈을 벌면 파마를 하겠다고 다짐까지 하기도 하였다.     


사회인이 되어서 돈을 벌게 되자 파마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가 20대 중후반이었다. 하지만 파마머리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워낙 직모다 보니까 2달에 한 번 파마를 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남자 파마는 여자보다 비싸지는 않지만 2달에 한 번 하기에는 아무래도 금전적으로 부담이 있었고, 머리도 쉽게 상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파마를 하여도 옆머리와 뒷머리는 파마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길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조금만 길어도 지저분하긴 매한가지고, 조금만 더 잘라도 중학생 머리 같아서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머리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는가 보다 하고 단념하며 살고 있을 즈음, 미용실을 한 번 옮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비싸다고 생각해서 안 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머리가 전보다 마음에 들어서 다니게 되었다. 파마도 이전보다 자연스럽게 잘 나왔다.     

 

그렇게 1년을 다녔을까. 파마머리가 잘 어울리다 보니 머리가 조금 더 길어도 괜찮아 보였다. 그래서 커트를 할 때도 많이 자르지 않고 정리만 몇 번 했는데, 어느 날 길어진 머리를 보면서 더 길러 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용실 원장님께 얘기를 했더니 덱스처럼 길러 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에서 덱스의 긴 머리를 괜찮게 봤던 기억이 있던 터라 바로 오케이 했다.   

  

그때부터 머리를 기르게 되었다. 중간에 정리만 한 번씩 하고, 파마도 한 번씩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머리는 길어졌고, 머리가 점점 길어지니 어느 순간부터는 젤이나 왁스 같은 걸로 고정을 해야 내려오지 않을 정도로 제법 길게 되었다. 하지만 젤이나 왁스는 잘 안 씻기기도 하였고, 진득거리기도 하여서 스프레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번 여름. 스프레이를 뿌려도 일을 하다 보면 머리카락이 내려와서 답답하고 지저분해 보일 정도가 되었다. 퇴근 후에 머리를 감고 집에서 쉬는데 머리가 내려와서 앞이 안 보일 정도가 되었고, 그때 머리띠가 생각이 났다. 머리띠를 히면 머리가 내려오지 않을 것 같았던 것이다. 그래서 바로 그 자리에서 남자가 쓰기 편한 가벼운 머리띠를 주문했다. 도착한 머리띠는 집에서 쓰기에 참 편했다. 귀 부분도 생각보다 안 눌리고 머리도 잘 고정이 되어 좋았다. 그렇게 다시 몇 주가 흘렀을까. 이걸 일을 할 때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머리띠를 하고 출근을 하면 다른 사람들의 눈치도 보이고, 누가 뭐라고 할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에 쉽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답답한 내 머리가 보기 싫기도 하고, 일을 할 때 덥기도 하고, 어떤 일 때문에 약간 화나는 일이 있기도 한 상태에서 ‘에라 모르겠다. 내일부터 그냥 머리띠로 머리를 올려보자.’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고, 다음 날 처음으로 머리만 대충 말린 상태에서 머리띠로 고정시키고 출근을 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내 머리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전에 어떤 분이 ‘더워서 머리를 올리셨나 봐요.’ 정도의 반응뿐이었다. 그런데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가니 주변에서 ‘오’하는 탄성과 함께 머리가 바뀌었음을 크게 알아봐 주었다. 그리고 속으로는 뭐라고 할지는 모르겠으나 겉으로는 대부분 잘 어울린다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나는 머리띠로 머리만 올렸을 뿐인데 다들 머리를 새로 한 줄로 알았다.   

머리띠를 하니 확실히 시원했다. 그리고 머리가 길지만 전혀 길어 보이지 않고 오히려 단정해 보였다. 그리고 이마가 드러나니 얼굴이 훤해 보이는 효과까지 있었다. 드라이로 올리고, 스프레이를 뿌리는 고생을 안 해도 쉽게 정돈이 되고, 머리를 더 길러도 쉽게 커버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애 처음으로 머리를 기르게 되었다. 언젠가 해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하게 되었다는 성취감도 있는 것 같다.


머리를 어디까지 기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새로운 머리 스타일을 하면서 장발의 낭만을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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