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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Nov 12. 2024

인생은 혼자다

     


‘인생은 혼자다.’   

  

이 말은 인간 존재의 고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혼자니 남에게 기대지 말고 홀로 서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이 말은 인간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군가의 뱃속에서 태어난다. 아직까지 인공 자궁에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으니 인생의 시작부터 혼자는 아닌 셈이다. 인공 자궁으로 사람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고, 같이 태어나는 사람은 있을 것이고, 정자나 난자를 제공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니 완벽히 혼자서 태어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가 딴 데로 샜지만 어쨌든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는 옆에 있고, 성장하면서도 가족이든 친구든 지인이든 옆에 있을 것이고, 더 커서 사회생활을 하게 되거나 연인이 생기거나 결혼을 하거나 자식을 낳게 되니 사람이 혼자는 아니다.

 

만약 사람이 완전히 혼자면 어떻게 될까? 수감자들의 가장 큰 벌이 독방에 갇히는 것이다. 독방에 갇히면 사람은 결국 미친다. 히키코모리가 있지 않냐고? 독거인들도 혼자 살지 않냐고? 물리적으로 방 안에서 혼자 생활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지만, 사람은 정신적으로까지 고립될 수는 없다. 히키코모리들도 컴퓨터를 하거나 온라인으로 외부인과 소통을 하면서 지내고, 독거인도 사람이 나오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사람이 쓴 책을 읽거나 바깥세상을 보거나 장을 보거나 외부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소통의 정도가 다른 사람보다 적다는 것뿐이다.      


그러면 왜 인생은 혼자라고 말하는 걸까? 앞서 말했듯이 이 말은 인간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군가와 접점이 있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그것이 평생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가 있고, 부모보다 먼저 죽어서 사는 내내 부모가 옆에 있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항상, 모든 것을 해 줄 수는 없다. 너 아니면 못 살겠다는 연인이 생겨도 결국 헤어지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이혼을 하거나, 오래 같이 살더라도 항상, 모든 면에서 붙어 있을 수는 없다. 항상 함께 했던 부부도 한 사람이 죽으면 인생은 혼자가 되고, 한날한시에 같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사는 동안 자신만을 위한 공간과 시간은 필요하다는 뜻이다.      


나 자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함께 있지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는 그렇게 될 수 없다. 그래서 인생은 혼자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고, 어느 누구도 그걸 대신해 줄 수 없다. 영원을 약속한 연인이라도, 피로 엮인 부모라도, 내가 낳은 자식이라도 결국은 남이라고. 지금은 아닌 것 같지만 결국은, 반드시 그런 때는 온다고. 그래서 인생은 혼자라는 말을 하는 거라고.   


Image by Amaya Eguizábal from Pixabay

  

쇼펜하우어가 말한 고슴도치 비유가 있다.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은 혼자 떨어져 있으면 춥기 때문에 가까이 붙는데, 너무 가까이 붙으면 서로의 가시들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떨어지면 다시 추위를 견디기가 어려워져서 결국 찔리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찾게 된다는 것. (물론 고슴도치들이 가까이 있다고 무조건 찔리지는 않는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천생연분이고 잘 맞는다고 하더라도 너무 가까이 붙으면 서로의 가시 때문에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상처를 받기 싫어서 멀어지면 인생이 외롭고 추워진다는 것. 그래서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지만 마음이 약하고 외로운 사람일수록 그 거리를 조절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마음이 약하고 외로우면 사람에게 가까이 가고 싶은 욕망이 크게 마련인데, 동시에 사람에게 상처도 잘 받기 때문에 가까이 가서 상처를 받고 멀어져서 또 상처를 받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아주 처절한 고독도 느껴보았고, 서로를 찌르는 가시들로 상처도 크게 받아 보았다면 적당한 거리를 갖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물론 알게 되었다고 해서 다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관계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관망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그 사람이 내 마음 같지 않다고 해서 집착하지도 않고, 이별의 때가 다가와도 스스로 손을 놓을 줄 알게 된다는 의미다. 부모의 품에서 자라나서 성인이 되었다면 언제까지고 부모와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서는 연습을 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 죽음으로 인해 나의 삶까지 망가져서는 안 된다. 죽은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내가 내 삶을 망가뜨린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서 오는 것도 아니고, 슬퍼한다고 죽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없다. 인생을 철저히 혼자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이 없다고 내가 혼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인생은 계속 갈 것이고, 또 다른 인연은 올 것이고, 나는 계속 누군가와 접점을 만들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며, 결코 이기적이거나 그 사람에게 죄스러운 일은 아닌 것이다.     


인생은 혼자다. 나와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 사람은 나 혼자밖에 없지만, 가는 동안 누군가를 만날 것이고 헤어질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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