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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Oct 14. 2024

보이스피싱을 당하면

   

보이스피싱은 사람을 무너지게 만든다.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돈 때문에 사람이 망가진다. 매일 악몽과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잃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 잃고 나서야 잃기 전이 행복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금액이 크면 클수록 더 심할 수 있지만 금액과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 천만 원은 큰돈이 아니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목숨을 버릴 정도의 고통을 주고, 어떤 사람에게 일억은 없어도 되는 돈이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의 방향이 바뀔 만큼의 돈이다.   

   

나는 무너졌지만 주변은 나를 그만큼 알아주지 못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인 양 대하기도 하고, 돈을 왜 보냈냐며 질책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이차적인 상처가 된다. 사람을 괜히 만났다 싶고, 괜히 얘기했다 싶다. 경찰도 내 편이 되어 주지 못하고, 친구에게 하소연해 봐도 그때뿐이다. 스스로를 찌르는 자책감은 극에 달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슬픔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이성적인 생각이 잘 되지 않는다. 보이스피싱으로 잃은 돈을 찾기란 어렵다는 사실을 알지만 받아들이기 힘들고, 신고도 하고 고소도 하고 법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도 심적으로 부담이 된다. 피해자는 나인데 내가 왜 힘들어야 되나 싶고, 가해자는 그 돈으로 떵떵거리며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점점 제정신을 잃어가고, 몸은 피폐해진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만 앞으로만 흘러가는 시간이 비참하게 잔인하다. 그때의 일분일초가 생생하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내가 스스로 한 일에 이렇게 후회를 해 본 적이 없다. 내일이 없는 최초의 오늘. 살갗이 타들어가는 느낌.      


생전에 그렇게 경찰서와 은행과 법률 사무소를 자주 드나든 적이 없다. 전화만 울리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관련된 그 어떤 것만 나와도 피하고 싶다. 사람을 믿기 힘들어지고, 세상으로부터 고립된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고, 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된다. 당시에는 죽을 것 같던 일도, 그래서 죽음을 수백 번 생각했던 그 일도 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된다. 하지만 단순한 과거는 아니다. 아픈 과거다. 시간이 지나더라도 그 아픔은 고스란히 남아 있고, 그것은 감정적인 것만이 아니라 통장의 잔고부터, 인간관계, 내가 사는 집이나 내가 가지고 있는 금전적인 것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어쩌면 연인이나 배우자 등 모든 것이 보이스피싱을 당하기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다.      


내가 그 일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은 더 이상 상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보이스피싱이 없는 나의 인생은 상상하기가 어렵다. 그 일은 일어나야만 했던 일일까 생각해 보지만 너무 생각하기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인생은 새옹지마라지만 보이스피싱을 당한 일도 나중에 좋은 일과 연결이 될까 의문이다.   

   

돈은 찾지 못했고, 연관된 사람들도 모두 법망을 피해 갔다. 법이라는 것이 과연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을까 싶다. 피해자는 잃은 돈과 함께 살아가야 하고, 지은 죄도 없이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고, 그날 이후 세상을 아픔의 색으로 봐야 한다. 웃음으로 살아가던 내가 웃음으로 살아가던 나 자신을 잊고 그런 시절이 있었냐는 듯이 우울과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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