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포기하고야 말았던 채식, 다시 할 수 있을까
대학생이었던 22살 때, 우연히 집 책꽂이에서 ‘음식혁명’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산 책은 아니라 부모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나의 독서능력을 매우 떨어트려 버렸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책을 자주 읽었고 좋아했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음식혁명’이라는 책이 나의 식습관을 180도 바꿔버렸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육류의 생산방식, 육류 가공품의 성분, 그리고 육류 및 유제품 등이 얼마나 몸에 해로운지 너무나 잔인할 정도로 자세하게 나와있었다. 환경 문제에도 굉장히 관심이 많았는데도 당시에는 소, 돼지, 닭들이 너무 불쌍하고, 미안하고, 또 그런 음식을 먹음으로 인해 내 건강이 얼마나 안 좋아질 것인가가 환경 문제보다는 더 임팩트 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10년 전쯤에도 지금보다는 덜했지만 아주 살짝 채식의 바람이 불기는 했었다. 당시 학교 바로 앞에도 채식 빵집이 하나 있었고, 채식 식당도 여기저기 찾아보려면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확실히 채식, 비건, 친환경이 피할 수 없는 주제가 된 지금보다는 많이 특이하고, 이상하고, 별난 ‘관종’ 취급을 받았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크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니라, 그런 이상한 시선 때문에 채식을 그만두게 된 것은 아니었다. 나의 어머니는 태어나면서부터 육고기를 싫어하셨다. 대신 생선, 달걀, 우유를 무진장 좋아하신다. 우리 가족은 그래서 육고기보다도 생선을 자주 먹었고, 또 매우 좋아한다. 사실 그래서 채식을 시작하면서 육고기를 끊는 것은 나에게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다. 점차 소, 돼지, 닭, 유제품과 계란은 안 먹게 되었는데 생선만은 도저히 끊을 수 없어 가끔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도 아닌 별난 채식주의자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7개월 정도 채식 레시피 찾는 재미, 먹을 수 있는 음식 찾는 재미, 또 무엇보다 매달 조금씩 건강해져 가는 내 몸을 보면서 잘 지내왔었다. 자연스럽게 7킬로가 빠졌고, 피부 트러블과 생리통이 너무나 확연하게 줄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일단 매일매일 몸이 날아갈 것 같은 건강한 기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좋은 채식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걸까?
나는 해산물도 먹고 있고, 육고기가 없으면 죽을 듯이 미쳐있는 사람도 아니라 괜찮을 줄 알았던 것이다. 당시 운동하는 것도 매우 좋아하여 운동 동아리며 관련 아르바이트, 취미 레슨까지 했던 터라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회식도 자주 있었다. 처음에는 눈앞에서 구워지는 고기들을 보면 책에서 봤던 동물 도축 장면이 상상되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 회식 장소에서도 꿋꿋하게 고기 없는 국수나 생선요리 같은 것을 먹으며 잘 지켜오고 있었다.
“에이, 그게 뭐 어때요? 맛있으면 장땡이지. 특이한 사람이네?!”
하는 말만 수십 번 들었지만 별로 상관 안 했다.
그런데 점점 갈수록 눈앞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의 모습도, 그 구워지는 냄새도 점점 나에게 불쌍한 동물이 아닌 음식 덩어리로 인식이 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나만 먹어 볼까?
안 돼, 그럼 실패야. 몇 개월 동안 뭘 한 건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트럼프 카드 날아오듯 두두두두두두두 휘몰아쳤다. 그런 회식 자리에 애초에 끼면 안 되는 거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앞으로 수많은 회식 자리가 있을 텐데 다 비슷할 테니 미리 단련해 놓자 하는 생각도 있었다.
문제는 술이었다.
고기판이 벌어진 자리에 고기 안주 없이 술을 마시고 있으니, 술 좋아하는 나도 엄청 빨리 취해버리고 머릿속의 악마는 더 활개를 치는 것이다. 정말 정신 바짝 붙들고 노력했지만 어느 날 터지고 말았다.
항상 고기 안 먹는 사람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메뉴를 고를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냥 따라가서 내가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찾는 편이었는데, 마지막으로 간 그 식당은 하필 아무것도 없고 양념불고기 같은 것 밖에 없었다.
그렇게……… 고기가 8개월 만에 다시 입에 들어갔다. 정말 찰나였는데 그때 내가 왜 그런 판단을 했을까 후회를 많이 했다. 그냥 계속 옆에서 채소나 집어 먹고 있을걸.. 그때 먹은 그 양념불고기는 그 맛이 정말 엄청났다. 아! 고기가 이런 맛이었지.. 요리왕 비룡처럼 머릿속에서 폭죽이 막 터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한순간의 쾌락이었지만 죄책감을 무겁게 지고, 터덜터덜 집으로 가서는 너무 우울하고 억울해서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서 누워만 있었다.
8개월 간의 나의 채식 생활이 그렇게 끝났고, 물론 건강도 피부도 나빠졌지만, 그 이후 몇 번을 시도했으나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었다.
어쩌면 의지가 부족한 걸지도 모른다. 예전처럼 책을 읽은 후의 충격이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환경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고, 샤워할 때, 설거지할 때 물을 아껴 쓰는 것보다 고기 한점 먹지 않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많은 물을 아낀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10년 전과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채식을 해보려고 한다. 동물의 권리, 나의 건강 이외에도 환경을 위해서 채식을 할 것이다.
모 아니면 도였던 과거처럼, 8개월 동안 먹지 않은 고기를 먹고 실패했다며 좌절하고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간헐적으로라도 채식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일주일 중 이틀은 육고기까지 먹을 수 있고, 하루는 생선만 먹을 수 있고, 나머지 4일은 완벽한 비건으로 지내보려 한다.
그러다가 점차 육고기를 완전히 안 먹게 되고, 비건으로 점점 바뀌어 가도 되니까.
환경 관련 일을 하며 채식을 안 하는 건 여태 굉장히 양심에 찔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반성의 의미로 이런 긴 고백을 하며, 또 다짐의 증거로 이 글을 쓴다. 앞으로 잘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