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지 말아야 할 비건스러운 음식들
채식을 하는 즐거움 중 하나는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뭐가 있나 찾아보는 활동이다. 이 빵에는 버터가 들어있을까? 이 육수는 고기 베이스인가? 하는 탐구 정신부터 채식 혹은 비건 음식점 찾기 등 이것저것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당연히 비건 푸드 일거라 생각했던 음식들에서 동물성 성분이 들어간 것을 나중에 발견하게 되면 조금 배신당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론 내가 더 꼼꼼히 봤어야 하는 부분이다.
나는 아침마다 시리얼에 아몬드 우유를 타서 먹는다. 주로 바삭바삭한 콘푸로스트 종류를 먹는 편인데 최근에는 아몬드 후레이크에 중독되어 계속 그것만 먹고 있다. 포스트, 켈로그, 피코크 시리얼 등 크게 상관하지 않고 사 오는데 이번에 사 온 건 피코크 시리얼이었고 아몬드 후레이크는 아몬드, 옥수수, 설탕 정도 들어있을 테니 당연히 비건 음식이라 생각하며 계속 아침마다 먹었다.
정말 혹시나 하는 생각에, 혹시 우유 관련된 뭐가 아주 조금 들어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하며 박스 뒷면을 읽어봤다.
커다랗고 굵은 글씨로 쓰여있는 ‘벌꿀’….
생각지 못했던 동물성 성분이 들어있었다. 벌꿀이라니! 우유 대신 아몬드 우유를 타 먹으며 비건식이라 생각했는데 배신감이 느껴졌다. 그럼 다른 브랜드들도 벌꿀을 쓰나?
어차피 한 통 거의 다 비웠던 차에 시리얼을 새로 사러 가봤더니, 다른 브랜드에는 벌꿀이 들어있지 않았다. 단맛을 내기 위해 과자, 시리얼류에 벌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다녀야겠다. 나도 모르게 비건 인척 하는 식사를 하고 있을지 모르니.
예전에 사둔 메밀소바가 하나 남아있길래, 점심에 먹을까 하고 꺼내봤다. 왠지 비건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사실 나는 가쓰오부시가 뭔지 잘 몰랐다. 가쓰오부시우동, 메밀 등 자주 먹어놓고, 가쓰오부시가 생선인지 채소인지 버섯인지 정확히 몰랐다. 메밀소바 소스에 가쓰오 조미액이 들어있길래 한번 찾아보았다. 가쓰오부시는 이렇게 생긴 생선으로부터 만들어진다
참치캔에 들어가는 가다랑어이다. 가다랑어를 훈연시켜 포를 만들면 그게 가쓰오부시란다. 완전히 논비건이잖아! 이제 가쓰오 어쩌고 음식은 비건 데이에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었다.
일본 음식에는 이 가쓰오부시를 넣어 만든 쯔유라는 간장소스 베이스의 음식들이 많다. 갑자기 탐구정신이 활활 타올라 가쓰오부시 안 넣은 쯔유 만드는 법을 유튜브에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비건 쯔유로 검색해보니 레시피가 꽤 있다. 아직 시판되는 상품들은 없는 것 같았다. 재료들을 다 사 왔고, 오늘 드디어 만들어 보았다.
-비건 쯔유 만들기-
재료: 다시마, 표고버섯, 간장, 통후추, 월계수 잎, 양파, 설탕, 물
요리: 다시마를 간장에 담아 한 시간 우리고, 물을 같은 만큼 넣어 끓인다. 5분 끓으면 다시마를 건져내고 재료를 다 넣어 한 시간쯤 졸인다. 채에 걸러서 쯔유만 분리한다.
이렇게 만든 쯔유는 숟가락으로 2~3스푼 정도 넣고 물과 설탕을 넣어서 육수를 만들면 메밀소바든 우동이든 만들 수 있다. 우동 사리 넣어서 먹어보고 싶은데 오늘은 없으니 패스. 대신 졸여진 표고버섯으로 초밥을 만들면 맛있다고 쓰여 있어서 그대로 해보았다. 밥에 식초랑 설탕, 쯔유, 물을 넣고 동글동글하게 만들어서 표고버섯 회(?)를 얹어 초밥을 만들었다
생각보다 너무 맛있잖아? 청경채랑 버섯볶음 하고 같이 먹으니 정말 완벽했다. 가쓰오부시 없이도 이런 소스를 만들 수 있었다.
세상엔 다양한 음식들이 있고, 알게 모르게 약간의 고기액기스 끼얹은 정도의 음식들이 많을 것이다. 채식주의자가 주류가 아닌 세상에서는 당연한 일일 테지만, 점차 커지는 채식 시장을 보면 그 약간의 고기액기스조차 들어있지 않은 음식들이 앞으로 많이 생길 것 같다. 비건 라면도 맛있다고 하던데.
이미 유튜브에는 비건 레시피, 비건 식당 관련 엄청나게 많은 콘텐츠가 있다. 10년 전에는 겨우 책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들이 정말 쉽게 접근 가능해졌다. 집 바로 앞에 비건 카페가 있다고 하는데 비건 빙수, 비건 빵 먹으러 주말에 가야겠다. 이번 주는 주 2회는 먹을 수 있는 고기를 한 번도 먹지 않았다. 잘 지키고 있다며 스스로를 칭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