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문이란 (지옥의 코드)

르네상스 예술작품들의 심층적 접근

by 윤옥환

인류문명사에서 '지옥'이라는 용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곳은 인도였을 것이다.


고대 인도 산스크리트 문헌상 '나라카'는 지옥을 나타내는 말이고, 우파니샤드에서는 지옥대신에 '어둠'으로 표현한다.

'나라카'는 한반도에 '나락'이라는 말로 대중화되었다.


유대교는 지옥이라는 표현대신에 '어둡고 깊은 곳', 인도의 시크교는 '천국' '지옥' 개념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용하는 언어들은 모두 다르지만, 수많은 종교에서 지옥을 언급하고 있다.


고문, 구타를 심하게 당한 후에 의식을 잃었다.

자동차에 4번 치어 의식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

열대 사막에서 두 번 쓰러져 의식을 잃어버린 일이 있다.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 의식을 잃어버린 일이 있다.

폭우와 추위 속에서 의식을 잃어버리고 쓰러졌다.


이러한 풍부한(?) 체험상, 죽음에 대하여 거의 매일

떠올리는 것은 아주 익숙하다.


죽음은 준비한 자에게는 죽음이 두렵다거나 터부시 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지옥'이란 죽음이 두렵거나 무섭기 때문에 생긴 용어일 가능성도 있다.


삶이 지독하게 힘들은 경우에도 죽음을 도피의 길로 선택하는 일이 있다.

기독교가 유럽에 유입되어 유럽인의 사고와 의식을 온전히 지배하던 때가 있었다.

중세의 암흑기라 일컫는다.

맹신 질풍노도의 시대였다.

교황들은 절대적 자리에서 이집트의 파라오 같은 권력을 향유하였다.


교황은 곧 신이었다.

교황청은 온갖 재물과 부동산을 원하는 대로 거두어들였다.


기독교가 위세를 떨치면서 음악, 미술, 조각, 문학 등 방면에서도 '지옥'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다.

'지옥'이라는 말은 민중들을 순종케 하는 최면제 역할을 하였다.

'면죄부' 열풍이 유럽을 덮었던 때가 있다.


유럽의 각 지방에 있는 박물관이나 건축에서 '지옥'을 표현한 작품들을 들여다보았다.


처음, 오귀스트 로댕의 '지옥의 문' 그리고 지옥을 그린 많은 그림들을 볼 때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더 많은 서적들을 읽은 후에는 '지옥'의 의미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일부 유럽의 천재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서 교황이나, 타락한 부유층을 비웃는 내용을 내포한 것이다.

아니면, 맹목적인 맹신자들과 공부하지 않은 무지자들을 빗대는 수단으로 '지옥'을 소재로 한 것이다.


'지옥'으로 '지옥'을 희화화한 것이다.

그리고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났다.

르네상스와 인본주의는 '예수 전능주의'를 더 이상 따르지 않겠다는 운동이다.

'예수 환상'에서 탈출하기 시작했다.


많은 저명한 예술가들이나 문학가들은 '지옥'을 공부를 게을리한 저급한 사람이 가는 곳.


머리가 텅 비어 분별력 없이 대중들에 부화뇌동하는 인생.

지식이 없이 무식하여 짐승과 다름없는 불쌍한 인생 등등.

'인생의 실패자'를 나타내는 은유를 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유대교에서는 탈무드나 카발라 서적을 통하여 '지옥'이라는

표현 대신에 '깜깜함'을 사용한다.


'지옥'이라는 용어보다는 '깜깜한 곳'이라는 표현이, 동방적 개념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을 진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생을 쉽게 생각하면 망친 인생으로 끝난다.'

'인생은 혼신의 조각이다.'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인생은 미로에서의 전투이다.'

'온갖 유혹과 쾌락들은 함정이다.'

'철인에게는 허비할 시간이 없다.'

'무지한 사람들은 지옥이라면 진짜 '지옥'인 줄만 안다.'


'지옥의 문은 넓고 깨달음의 문은 좁다.'

'정치와 서양종교부역자에게는 지옥이 기다린다.'

'남아수독 오거서'

'남녀수독 오거서'

'불쌍한 민중'

'불쌍한 민족'

'불쌍한 후손들'


#프란츠카프카 #열리지않는문 #FranzKafka

#FranzLiszt #





작가의 이전글당신의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