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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북 May 25. 2023

부고문자

상복을 미리 좀 사놔야겠어.



5월 8일 어버이날, 요양병원에서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코로나로 인한 장기 면회 불가로 애가 타는 보호자들의 마음을 달래 드리고자, 카네이션 증정식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첨부된 2분이 조금 넘는 영상에는 기가 막히게 말라버린 아빠의 모습이 섬네일로 대표되어 있었고, 나는 볼 엄두가 나지 않아 남편이 먼저 확인하기로 했다.


“할아버지~따님이랑 사위분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세요~”

“….”

“할아버지~이 영상 따님한테 보낼 거예요~뭐 하실 말씀 없으세요?”

“….."


직원의 목소리만 실컷 울려 퍼지다 종료된 영상 속 아빠의 모습이 궁금해진 나는 남편에게 핸드폰을 되찾아 실눈을 뜨고 고개를 뒤로 쭈욱 뺀 몰골로 부들대는 손가락을 영상 재생 버튼에 올렸다. 가장 처음 보인 건 풀어진 앞섶 사이로 보이는 앙상한 가슴뼈였다. 입원 당시 부종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처음엔 우리 아빠가 맞나? 싶을 정도로 얼굴이며 목, 어깨까지 많이 야위어있었다. 거기에다 콧줄까지 낀 아빠 모습은 너무 낯설어서, 그 이질감에 기분 나쁜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마르고 콧줄한 모습보다 내 가슴을 더 아프게 만든 건, 모든 걸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직원의 물음에도 아무런 반응 없이 그저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아빠의 표정이었다.

화질이 그다지 좋지 않은 지글지글한 영상으로도 전해지는 처참한 공허. 건너에서 그 체취가 전해져 오는 것 같아 숨이 막혔다. 가슴팍에 '아버지 사랑합니다'라는 리본이 달려 데롱거리는 빨간 카네이션이 이렇게나 안어울릴수 있을까. 서로에게 어떠한 감정도. 아무런 말도 전할 수 없는 건조하기 짝이 없는 어버이날은 그렇게 끝이 났다. 차라리 전처럼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욕이라도 마음껏 뱉어냈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무겁진 않았을 것이다. 몸서리쳐질 만큼 명징한 체념. 그것에 압도당한 우리는 한참 동안 입을 열지 못했고, 먼저 침묵을 깬 건 남편이었다.


“상복을 미리 좀 맞춰놔야겠어”


남편에게도 보였을까. 어쩌면 아빠의 삶에 대한 욕구와 가장 치열하게 마주한 건 남편이었을 것이다. 그런 남편이 무언가를 느꼈다면, 그것이 맞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길로 우리는 매장에 들러 남편의 정장을 맞췄다. 그리고 며칠 뒤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썬의 이별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일어나서도 기분이 한참 좋지 않아 남편에게 카톡을 남겼다.


“아빠 가게에 강도가 들어서 옷을 다 훔쳐 갔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어. 애가 타서 미치겠는데 아무것도 못해서 가슴을 탕탕 치면서  일어났는데 그 분한 감정이 잊혀지질 않아.”

“무슨 그런 꿈을 꾸냐. 잊어버려.”


가게는 모두 정리하여 이제 더 이상 신경 쓸 구석이 없었음에도 마음 자락에 나름 무거움이 매달려있었나? 싶었다. 찜찜한 기분을 억누르며 하루를 정리하는데, 문자가 왔다.


-부고-

ㅇㅇㅇ님 별세

ㅇㅇ동 ㅇㅇ 장례식장


썬의 시아버지가 떠나셨다.



어버이날, 요양병원에서 보내준 영상을 서로 돌려보던 중, 썬이 걱정스레 한 말이 기억난다.

"너무 겁먹으신 것 같아서 맘이 안 좋아. 마르기도 엄청 마르셨고..”


썬에게 전해 들은 시아버지의 이미지는 파괴왕. 폭력왕. 막말왕으로 정의될 수 있었는데 막상 영상을 키니 화면 안에는 겁에 질린 채 멍한 눈으로 두리번대는 작고 마른 노인만이 있었다. 우리 아빠와 별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우리들이 편해진 만큼 아빠들은 폐인이 되어버린 것 같아, 죄책감이 고름 터지듯 올라와 서로 그런 생각하지 말자며 위로했던 그때가 5일 전이였는데 폐렴 이후 몸이 점점 쇠약해지신 썬의 시아버지는 입원 당시의 모습이 무색하게, 바싹 작아진 모습으로 떠나셨다. 그리하여 남편은 새로 맞춘 상복을 조금 일찍 입게 되었는데, 이야기를 들은 썬은 “우리가 운명이긴 한가보다.”라며 쓰게 웃음 지었다. “너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어떻게든 면회 한 번은 시켜달라고 해”라는 말도 덧붙이며.


장례식장을 나서는 길

지난했던 세월과 이별을 하는 썬의 자그마한 뒷모습이 어른하다. 썬은 꽤 담담했다. 나는 그 속에 연민과 사랑이 가득 담겨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우리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어린 며느리 괴롭힌 늙은 시아버지가 떠났으니 홀가분한 모양새라 할 수 있겠지만 그녀의 담담함은 누구보다 진심이었고 열정적으로 임하였기에 가능한 모습일 것이다. 불자인 썬은 부디 시아버님의 다음 생은 따듯하고 충만한 사랑을 가득 받을 수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 행복하고 따스한 삶을 살길 기도한다며 영정 앞에 앉아 틈틈이 경전을 읊어드린다고 했다. 그리고 그토록 아버지를 미워했던 썬의 남편은 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집으로 오는 차 안,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슬픔에 의해 서서히 침잠되어 감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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