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쪼북 May 26. 2023

아직은 아니야 아빠.

예외적으로 면회 허용해 드릴게요. 앞으로 매일 면회 오셔도 됩니다.


어릴 적의 나는 죽음이란 존재가 참으로 만만했다. 죽고 싶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며, 실제로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건 삶과 필연적인 관계이며, 따라서 그것이 언제 우릴 덮친다 해도 억울해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중2병 일 수도 있고, 힘들었던 유년 시절의 부산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였던 죽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무게를 더해 때로는 참기 힘들 만큼의 중압감으로 나를 짓눌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걸까. 그래서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될수록 ‘지금은 안돼’라고 외치게 되는 것일까. 만만하기 그지없던 죽음은 빚쟁이의 모습으로 변모하여 내가 빼앗기려 하지 않는 것을 악착같이 빼앗아가려는 듯 내 옆을 휘-휘 스쳐 지나가며 비릿한 숨소리를 내뱉는다.


“안녕하세요. 요양병원입니다.”


아빠의 병동 주치의라며 신분을 밝힌 전화를 받았을 때,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은 마치 본인을 만만하게 본 것에 대해 항변하듯 나를 작신작신 짓눌렀고 그 엄청난 무게감에 숨이 막힌 결국 나는 주저앉아버렸다.


'안돼, 지금은 안돼. 조금만 더 버텨줘 아빠'





비가 오는 어둑어둑한 오후, 아빠에게 필요한 약과 필요서류를 처방받기 위해 병원에 들렀다 오는 길.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빗물이 질척대어 미끌거리고 서늘해진 바닥에 발을 내디디려는 순간.

[발신자: 요양병원]으로 표시된 핸드폰을 보고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학습된 불안. 일련의 사건들이 낳은 변수적 불행들에 기인한 불안은 안타깝게도 다소 높은 정확률을 자랑하기 때문에 나는 이 불안을 무시할 수가 없다.


'두렵다'


손발이 차가워진다. 발의 감각이 사라지며 이내 부들부들 떨린다. 온기 하나 없어진 서늘한 몸을 지탱할 힘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수화기 너머로 본인을 담당의라 소개한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어르신이 혈변을 많이 보시네요. 네 꽤 많이요. 아무래도 장내 출혈인 것 같습니다. 보호자분께서 선택을 하셔야 할 것 같아 전화를 했습니다. 이대로 구급차를 불러 시내의 큰 3차 병원으로 전원을 하실지, 아니면 저희 병원에서 대증치료를 하실지를 결정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혈변인 거면... 많이 위독하신 건가요?”

“현재 크게 위독하시진 않지만 혈변이 지속된다면, 어디선가 계속 출혈이 되고 있다는 거겠죠. 혈액의 양이 많은 편이라 이대로 두시면 쇼크로 돌아가실 수도 있는 상황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가능성이 낮진 않아요. 조금 위험하긴 하십니다.”

“아.... 제가 바로 다시 연락드릴게요.. 가족이랑 상의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아요."



털썩. 나는 기어코 주저앉아버렸다. 흙탕물 투성이인 미끌거리는 바닥이 종아리에 닿아 축축함이 느껴졌으나 중요하지 않다. 떨리는 손으로 남편에게 전화를 거는데 쉽지가 않다. 초여름의 6월이었다. 그러나 한겨울처럼 한기가 돌아 이가 딱딱 거리기 시작했다.


“오빠 오빠.. 어떻게 해. 아빠 혈변 때문에 상태가 안 좋아지실 수도 있대. 큰 병원으로 이송할지 그냥 요양병원에 둘지 결정하래. 돌아가실 수도 있대. 어떻게 해.. 어떡해...”

“일단 진정해 봐. 큰 병원으로 이송하시면 상태가 좋아지실 수는 있대?”

“모르겠어.. 놀래서 못 물어봤어.”

“그거 물어보고 결정하자. 힘들겠지만 네가 아버지 상태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을 테니 한 번만 더 전화해서 물어보고 연락 줘. 이동을 해야 하면 바로 퇴근할게”


남편의 차분한 목소리를 듣고 나니 떨리는 몸이 조금 멈췄다. 몸을 일으켜 차 문을 잠그고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이번엔 간호부장이 받는다. 까랑까랑한 그녀의 목소리가 반갑다. 담당의의 건조한 목소리보다는 조금 더 인간미가 느껴진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목소리에 묻어있는 아주 미묘한 감정까지도 나에게는 위로로 느껴졌다.


“네. 보호자님 이야기 들으셨죠. 결정은 하셨어요? 저희도 구급차를 수배해야 하고, 서류도 준비해야 해서..”

“잠깐만요. 간호부장님. 우리 아버지 3차 병원으로 가시면 괜찮아지시는 건가요?”

“글쎄요.. 그건 확답드리기 어려워요. 가서 내시경검사랑 초음파, 엑스레이 등 찍어봐야겠죠.”

“저희가 걱정되는 건 코로나가 심해져서 거부하는 응급실도 있을 거고, 그렇게 되면 받아주는 병원을 찾아 계속 돌아야 하는 거죠? 그리고 내시경을 하려면 수면마취도 해야 할 텐데.. 아빠 상태로는 좀 무리일 것 같아서요.”

“네. 그건 아무래도 그렇죠.”

“다시 돌아온다 해도 본 요양병원에서 아버지를 다시 받아주실 수 있을지도 불분명한 거고요?"

“네. 그것도 그래요. 코로나가 너무 심해져서 최대한 입소를 제한하고 있거든요. 원장님과 상의를 해봐야 할 문제예요. 새로운 입원환자를 아예 안 받고 있어요 지금.”


좋지 않은 상황은 굴릴수록 스노볼처럼 커져만 간다. 역시 나의 불안의 이면엔 여지없이 불행이 도사리고 있구나.라는 예상이 적중하니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나에 대한 연민 반. 아빠에 대한 연민 반이 섞여있다.


“간호부장님.. 저.. 저 진짜 어떻게 해야 해요?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요... 진짜 하나도 모르겠어요..”


아이처럼 엉엉 울며 간호부장에게 매달리듯 울부짖었다.

수화기 너머로 잠깐의 침묵이 이어진다. 이내 긴 한숨.


“보호자님. 결정하시기 쉽게 제가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만약 제 부모님이라면 저는 큰 병원으로 안 모실 것 같아요. 가면 생각보다 많이 고생하실 거고 큰 병원 가신다고 확 좋아지시진 않을 거예요. 내시경도 무척 힘드실 거고요. 예후가 좋은 상태는 아니신 거 보호자님은 아시죠? 큰 병원으로 가지 않는다고 죄책감 가지실 필요 전혀 없으세요.”


숨이 꺽꺽 차오른다. 우느라고 제대로 대답도 못한 거 같다.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아빠 전원 안 하고, 그냥 요양병원에 모실게요..


그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내가 아빠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게 아닐까? 또다시 그 악다구니를 하기 싫어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은 아닌가. 또다시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아빠를 방치하는 것은 아닐까? 이대로 아빠가 죽는다면? 병원에 가면 살릴 수 있는 거였는데, 치료를 못해 과다출혈로 죽는 거라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수많은 선택과 선택을 하며 지나왔지만 지금만큼은 정말 그 무게가 미친 듯이 무겁고 잔인했다. 도망가고 싶었다. 설마 내 선택으로 아빠의 생과 사가 갈리게 된다는 건가? 헐떡거리는 내 숨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던 간호부장이 위로하듯 말을 꺼낸다.


“지금 면회 오세요. 예외적으로 면회 허용해 드릴게요. 앞으로 매일 면회 오셔도 됩니다.”


그렇게 원하던 면회 허용이었지만 기쁘지 않았다. [예외적인 면회 허용]이란 말은, 면회 전면 불가인 상태이나 갑자기 작고하신 썬의 시아버지 케이스를 참고한 요양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위중한 어르신에 대한 면회를 허용한단 뜻이었다. 따라서 아빠는 임종을 생각해야 하는 상태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안돼, 지금은 안돼. 조금만 더 버텨줘 아빠'


남편과 함께 아빠가 있는 요양병원으로 내달리는 차 안.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그렇게도 많았건만,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지금은 아니야'라는 말만 주문처럼 중얼댈 뿐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고문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