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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북 Jul 14. 2023

물난리






때아닌 가을장마가 시작되었다. 연일 비가 내린다. 뜨거운 무더위 속 열기를 식혀줄 촉촉한 단비가 왔다는 보도는 어느새 폭우와 불어난 물로 인한 수해 긴급 보도로 성격이 바뀌어 매체를 뒤덮는다.


나야 뭐, 창문 밖이 허예질 만큼 거칠게 소낙비가 내려도, 소파에 앉아 에어컨 바람을 쐬며 인터넷 이슈 글 속의 침수된 강남역 차량들을 보며 안타깝다 수준의 탄식. 조금 더 나아가선, 아침, 저녁 남편의 퇴근길에 너무 많은 비가 내리지 않길 바라는 정도의 걱정만 하게 되는 여유로운 상황이지만 그거야 팔자 좋은 오늘날 이야기고, 어린 시절은 좀 다르다.


비가 온다. 많이 온다! 싶으면 아빠와 엄마, 할머니가 초저녁부터 부산스레 움직였다.


준비물은 쓰레받기와 신문지. 그리고 걸레.


우리 집은 반지하였다. 그것도 창문들이 모두 다세대 주택 마당의 하수구가 있는 쪽에 위치해있었는데, 비가 많이 오면 그쪽으로 물이 몰리다가 역류를 하면 집안의 벽지를 타고 물들이 줄줄 샜다.

어린 나야 비가 많이 오면 엄마 아빠가 모두 집에 들어앉아 있으니 마냥 좋았으나, 부모들에게는 장마는 마치 재앙과도 같았을 것이다.


한밤중에 비가 울컥울컥 몰아치는 소리가 나면 아빠는 몇 가닥 없는 머리를 휘날리며 계단을 뛰어올라가 창문 쪽의 있는 하수구를 꼬챙이로 빡빡 뚫어댔다. 그래도 이미 들어찬 물은 별수 있나. 흥건해진 바닥의 빗물은 엄마와 할머니가 쓰레받기로 퍼내야 했다.


스윽-탁 , 스윽-탁


쓰레받기의 끝이 바닥을 스치며 벽에 탁 부딪히면 바닥에 고였던 물이 경쾌하게 찰랑이며 쓰레받기로 모인다. 그렇게 모인 물을 양동이에다가 부어 넣는다.

장판 아래는 날것의 시멘트 바닥이었는데, 한 번씩 이렇게 물난리가 나면 그 안에 끼어있던 오물들과 먼지 부스러기들이 물을 타고 제 모습을 보인다. 바퀴벌레 몇 마리의 시체도 토핑처럼 둥둥 떠다닌다. 실로 크리피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마저도 재미져서 쓰레받기를 들고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물을 퍼나르는 시늉을 하다가 엄마한테 머리를 쥐어 박히기 일쑤였다.



"아씨, 왜때려어..!"

"너는 저기 방에 들어가 있어!! 방해하지 말고!!"



한바탕 물난리가 지나고 나면 그때부턴 곰팡이와의 전쟁이다.

해가 들지 않고 통풍이 안되는 반지하는 장마가 끝나도 뽀송해지지 않는다.

티라미수 바닥처럼 촉촉하게 수분을 머금은 시멘트에서 자꾸 물이 새어 나왔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신문지다. 물이 새어 나오는 곳은 보통, 장판과 장판의 이음새 부분이었으므로 그 부분을 꼼꼼하게 신문지로 틀어막아주어야 했다. 물론 반나절도 안돼서, 비건용 콩고기 마냥 흐물렁 해지긴 하지만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자고 일어났을 때 요 와 함께 등짝이 흥건하게 젖어있는 산뜻한 기분을 느껴야 하므로 아빠는 장마철만 되면, 여기저기서 신문을 모아놔 창고에 가득 쌓아놓곤 했다.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개봉했을 때, 송강호의 몸에서 나는 묘하고 꾸리한 냄새에 대한 언급이 있다. 나 역시도 그 냄새를 안다.

쿰쿰한 곰팡내 속에 섞인 물 비린내와 같은 냄새일 것이다. 신문지가 물에 젖으면 그런 냄새가 난다.



우리가 살던 다세대 주택은 총 2층. 2층엔 2가구가 살고 1층엔 주인집 포함, 2가구, 반지하는 우리 집과 비어있는 1가구였다. 그리고 우리 집 작은방과 벽을 마주하고 있는 세대가 있었는데 그 집에 살던 분을 뚱땡이 아줌마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차별적인 호칭인지..죄송합니다.본인이 뚱땡이아줌마가 된 지금.. 그 호칭은 무척 잘못된 거라는 걸 느끼고 삽니다)

그곳은 완전 지하로 비 오면 계단 시작 부분까지 완벽하게 침수가 되어 결국 뚱땡이아줌마는 몇 해 못 버티고 이사를 갔다. 그렇게 주인이 없어 관리가 안 되는 옆집은 비가 오면 늘 속수무책으로 침수가 되었고, 그럴때마다 작은방은 거대한 어항과 붙어 사는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벽에 수묵화처럼 피어나는 곰팡이의 모습은 찬란했고, 아마도 나의 예술적 재능을 자극한 모티브들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언제부턴가 비오는 날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그런 유년기의 기억이 있어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비가 오면 부러 집밖으로 한발자국도 나가지않는다.집에게서 보호받는 기분을 1분 1초라도 더 느끼고싶다.


글을 쓰는 지금도 이틀째 칩거중이다. 그니까, 자발적(!) 고립이라고 할수있다.


기록적인 폭우로 수해 뉴스가 연일 보도되는 날이면 나는 어릴 적 반지하에서 쓰레받기로 벽을 치는 그 소리가 자꾸 생각이 난다.


스윽-탁

스윽-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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