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의 유용함
럭키는 지하철 역 근린공원의 한 구석에서 태어났다. 털이 연한 노란빛이어서 누가 봐도 예쁜 고양이었다. 어느 날 형제들과 함께 포획되어 옮겨졌고, 그중 럭키만 사람의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땐 럭키 대신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그 집에서 럭키는 유용한 활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먹이를 찾기 위해 움직일 필요도, 개를 피해 도망갈 필요도, 새를 쫓기 위해 달릴 필요도 없었다. 자고, 먹고, 창 밖을 바라보는 동안 럭키는 점점 커져갔고, 그에 반비례해 사람의 관심도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에게 럭키는 더 이상 귀엽지 않아 쓸모가 없게 되었다. 제대로 관리받지 못한 럭키의 이빨과 입 안 상태는 점점 나빠졌고, 사료를 먹을 때에도 똑바로 씹기가 어려웠다.
그는 안 그래도 쓸데없이 커버린 럭키가 미워지기 시작했는데, 치료를 위해 돈까지 써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그는 럭키를 데리고 나와 집 근처 아파트 단지에 풀어놓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집으로 돌아갔다.
럭키는 어리둥절했지만 새로운 풍경에 조금 흥분이 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 손을 탄 탓에 그들이 무섭지 않았다. 날이 밝고 출근 시간이 되자 럭키는 부지런히 사람들을 쫓아다녔다. 어떤 이는 쓰다듬어 주었지만, 다른 이는 손을 내젓거나 피하기도 했다.
김무명은 그때 럭키를 처음 만났다. 그는 남들처럼 출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담배를 한 대 피우기 위해 나와 아파트 화단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이 담배를 다 피우고 나면 엄마가 출근하고 없을 것이고, 그는 빈 집에 들어가 책을 보는 대신 컴퓨터를 켤 것이었다.
담배를 피우며 출근하는 사람들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사람들을 졸졸 쫓아다니는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 있는 사람들 중 가장 한가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한 김무명은 소리 내어 고양이를 불렀다. 고양이는 김무명의 손에 머리를 부볐다. 한참을 놀다 집에 들어가려는 그의 뒤를 고양이가 쫓아가자, 당황한 그는 집으로 도망치듯 돌아갔다.
럭키는 자신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밖에서는 살 수 없었다.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어떤 사람도 자기를 데려가지 않았다. 배가 고파왔고, 목이 말랐지만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집에서 나온 지 며칠 만에 럭키는 흔한 도둑고양이의 모습이 되었다. 처음 밖에 나왔을 땐 예쁘다고 만져주던 사람들도 이젠 럭키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무심코 사람에게 다가갔다가 맞을 뻔한 일도 있었다. 럭키는 너무 목이 말라 화단의 풀을 뜯어먹었고, 낡은 트럭 밑에 몸을 숨기고 잠을 잤다.
김무명은 담배 피우러 나올 때마다 고양이를 찾았다. 눈에 띄게 핼쑥해지고 못생겨진 고양이가 자신의 처지 같다고 느꼈다. 쓸모 있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는 쓸모없는 놈, 돈을 버는 일보다 돈을 쓰는 일이 더 많은 놈. 그런 평가에 걸맞게 김무명이 좋아하는 것들은 무용한 것들이었다. 음악을 듣는 것, 음악을 만드는 것,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 담배를 피우는 것, 그리고 지금은 저 못생긴 고양이를 바라보는 것.
김무명은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는 김에 고양이 밥도 하나 샀다. 고양이가 있는 트럭 근처에 음식을 두었지만, 그새 경계심이 생긴 고양이는 다가오지 않았다. 손바닥에 축축한 먹이를 덜어 고양이를 다시 불렀다. 쭈뼛쭈뼛 눈치를 보며 다가온 고양이는 경계를 풀지 않고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이빨이 아픈 것처럼 제대로 씹지 못하고 죄다 흘리며 먹는 고양이를 보다 김무명은 자기도 모르게 조금 울었다.
럭키는 밥을 주는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예전의 그 사람과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얼굴이었다. 먹이를 준 감사의 의미로 손에 머리를 대주었더니 이제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가도 될까, 망설였지만 가지 않으면 그 사람이 계속 울 것 같아 천천히 뒤를 따라갔다.
김무명은 고양이를 럭키라고 부르기로 했다. 무명과 럭키는 이제 서로에게 책임이 있었다. 그러므로 무명의 무용한 취미들도, 럭키의 변한 모습도 더 이상 쓸모없지 않게 되었다.
[이 글은 2W 매거진 23호 '무용한 것을 사랑하나요'에 수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