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하랑 Mar 19. 2022

혼자 살아도 방은 두 개였으면 좋겠습니다.

공간의 의미

바다가 보이는 집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적정 공간은 얼마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혼자 산다고 해서 2인 가족의 1/2 공간이 알맞은 건 아니라는 거다. 빛이 충분히 들어오고, 요리와 운동, 취미생활을 할 수 있을만한, 지나치게 협소하지 않은 공간이어야 한다. 싱크대와 침대와 책상의 거리가 한 발자국도 되지 않는 좁은 집일수록 외로움과의 거리도 좁아지기 때문이다.


처음 원룸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 시절, 서울에서 자취하는 언니에게 놀러 갔을 때였다. 그럴싸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계단으로 한 두 층 올라가면 문이 여러 개 나오는데, 그 문을 따고 들어가면 그 안에 또 다른 문이 세 개 정도 있었다. 문 안에 문이 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렇게 들어간 방이 너무 작아 한번 더 놀랐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런 방에도 도둑이 든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도둑이 든다고 해야 맞았다. 내가 방문하기 며칠 전, 몇 안 되는 금붙이와 뚱뚱한 컴퓨터 본체가 사라졌다고 했다. 혼자 들기엔 역부족이었는지 본체보다 더 뚱뚱한 모니터만 덩그러니 남아 있던 것이 우습기도 했다. 그때 언니는 많이 우울해했고 불안해했다. 


역시나 내 진정한 독립도 문 안에 문이 있는 방 한 칸에서 시작됐다. 기숙사 생활과 친구와의 투룸 생활을 거쳐 진짜 혼자 살게 된 집은 좁은 베란다가 딸려 있는 원룸이었다. 대학원 생활을 하며 취업 준비를 하던 시기였기에 인생의 '가장 열심'과 '가장 우울'을 그 작은 방에서 모두 겪었다.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첫 타임 영어 수업을 듣기 위해 준비하던 곳이었고, 면접을 보기 위해 하나뿐인 정장을 걸어 놓은 곳이었고, 원하는 곳에서 최종 불합격 통보를 받고 가장 크게 울었던 곳이었다. 그 골목엔 그런 방들이 수십 개는 있었고, 방마다 내가, 친구들이 살고 있었다. 어떤 친구는 반지하였고, 또 다른 친구는 가정집에 딸린 하숙방이었다. 모두들, 방 하나였다.


취업을 하고 나서도 방 한 칸에서 사는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신분은 바뀌었지만, 사는 공간이 그대로인 상태는 괴리감을 안겨주었고 나는 이사를 간절히 소망했다. 이 소망은 공부를 마친 언니와의 합가로 이루어졌다. 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방이 두 개인 집으로 이사했다.


몇 해 전, 청년 임대주택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은 최소한의 주거 공간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청년 주택'은 5평 내외의 원룸이 대부분이다. 1인 가구의 최저 주거기준은 약 4.2평. 4.2평은 방 두 개는커녕 부엌과 침실이 분리되기도 어려운 면적이다.


젊을 땐 누구나 방 한 칸에서 시작한다고 쉽게 얘기하지만, 문제는 방 한 칸의 삶이 젊은 시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일생의 이벤트나 부모님의 도움이 없다면 직장을 구하더라도 당장 원룸을 떠나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


청약제도의 특별공급만 해도 그렇다. 지금은 제도가 변경되어 일정 평수 이하의 아파트는 1인 가구도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 사는 사람들은 특별공급에서 제외됐었다. 현재 1인 가구의 특별공급에서 제한한 공간은 약 20평, 두 개의 방이 가능한 공간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의 유명한 구절, '여성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를 떠올린다. 여기서 말하는 방이 현재 우리나라의 원룸을 말하는 건 아닐 거다.


공간이 분리되어 있고, 그 공간이 각각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안정감을 준다. 혼자 살아도 방이 두 개, 세 개인 집에 살고 싶다. 침실과 서재가 있고, 거실에서는 식물을 잔뜩 기르고, 부엌에서 한 서툰 요리를 친구와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은 혼자 사는 사람에게도 꼭 필요하다.


하나의 ‘방’에서 살다가 두 개의 방이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이, 1 다음 2가 오는 것만큼 자연스럽고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2W 매거진 20호 '2와 여자들'에 수록되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인간들에게 바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