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란 Jul 24. 2021

달의 마음

판타지 역사동화

“서방님, 저도 때가 되면 서방님 뒤를 따를 것입니다. 이제 그만 편히 쉬시지요!”

 평강이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온달의 영혼이 부웅 떠올랐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평강을 어루만져 보지만 신기루처럼 잡히지 않는다. 점점 더 가벼워진 온달이 흰빛을 타고 하늘로 하늘로 올라갔다.   

   

 염라대왕이 눈을 부릅떴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네 놈의 손에 수백 수천의 목숨이 사라졌다.”

 검붉은 눈썹과 수염을 늘어뜨린 염라대왕이 향기로운 꽃이 핀 청옥으로 만든 보좌에 앉아 온달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만으로도 얼어붙게 만드는 힘이 느껴졌다. 온달은 자기도 모르게 납작 엎드렸다. 무서워서 고개도 똑바로 들지 못했지만, 온달은 궁금했다.

 “고구려의 장수로 전쟁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이것이 죄가 되는지요?”

 온달이 용기를 내어 염라대왕에게 되물었다.

 “어리석은 인간 같으니라고! 나라가 무엇이고 적군이 무엇이냐? 어차피 다 똑같은 생명인 것을……. 네 놈의 죄가 얼마나 큰지 알겠느냐?”

 “억울하옵니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대장부의 도리라 배웠습니다. 도리를 지키며 산 것이 어찌 죄라 하십니까?”

  염라대왕의 서슬 퍼런 호통에 간담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온 온달이기에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여봐라! 온달에게 악행의 거울을 보여 주거라!”

 염라대왕의 양옆에 서 있던 시종이 왼쪽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온달을 가리켰다. 대문짝만한 거울이 온달의 앞에 나타났다. 테두리가 불꽃으로 이글거렸다. 거울은 구정물처럼 검고, 탁했다. 거울에 온달의 모습이 떠올랐다.

 찰갑을 입고 말을 달리며 용이 그려진 환두대도를 휘두르고 있는 온달이 피를 뒤집어쓰고 적군을 죽이고 있다. 그리고 잠시 후 온달이 처음으로 목을 벤 적군의 노모가 나타났다. 아들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통곡하는 모습이 보였다. 노모는 아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마치 자신의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아 온달의 가슴이 저려 왔다.


 그다음에는 두 번째로 죽인 적군의 아내도 나타났다. 어린 젖먹이를 업고 망연자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는 배가 고픈지 등 뒤에서 칭얼거렸다. 여린 어깨를 부들부들 떨던 평강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시 거울에 나타난 온달은 쉴 새 없이 칼을 휘둘렀다. 그런 온달의 눈빛에는 조금의 자비심도 보이지 않았다.

 저승사자 같은 자기 모습을 본 온달이 진저리를 쳤다.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이제야 알겠느냐? 너의 죄는 지옥에 가 마땅하나 인간의 잣대로는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여봐라! 이번에는 선행의 거울을 가져오너라.”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염라대왕이 명하자 시종이 오른쪽 손을 들어 온달을 가리켰다. 이번에는 별빛으로 반짝이는 테두리의 거울이 온달의 앞에 나타났다. 거울은 맑은 샘물처럼 출렁였다. 맑은 물 위로 다시 온달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린 온달이 눈먼 어머니를 위하여 구걸하는 모습이 보였다. 동네 아이들이 ‘바보 온달’이라며 돌팔매질을 하여도 집에서 기다리고 계실 어머니 생각에 발걸음을 빨리했다. 자신은 먹었다고 거짓말을 하며 어머니에게 음식을 드리는 모습이 보였다. 나무를 하다 덫에 걸린 산짐승을 풀어주는 모습도 보였다.

 “눈먼 어미를 정성껏 보살피고, 자비심으로 산짐승을 구한 것을 보니 너의 천성이 어질구나. 죄는 크나 어리석음 때문이고 선한 천성으로 자식의 도리를 다하였으니 지옥에 가는 것만은 면해 주겠다. 허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치는 못할 것이다. 홀로 달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어 너의 죗값을 치르거라.”

 염라대왕이 판결을 내리자 온달의 영혼이 서서히 투명해졌다.   

  

 서늘한 바람이 달에 있는 계수나무 주위를 맴돌았다. 바람은 작은 회오리바람으로 돌다가 온달의 모습으로 변했다. 정신을 차린 온달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계수나무 한 그루뿐 아무도 없다. 살을 에는 듯한 한기가 느껴졌다. 죄책감에 몸보다 마음이 더 추웠다. 온달이 나무 아래에서 무릎을 꿇었다. 온달의 머릿속에 죽어간 사람들이 한 사람씩 떠올랐다. 슬퍼하는 가족들의 모습도 보였다. 한 가족의 아들이고 남편이며 아비이기도 한 자들이 온달의 손에 죽어갔다. 온달이 괴로워하며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온달의 마음처럼 달빛도 어두워졌다.

 ‘어떻게 해야 죗값을 치를 수 있을까?’

 온달이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살아있는 동안 온달이 한 일 중 가장 아름다운 일을 떠올렸다. 어머니를 사랑하고 평강공주를 사랑하고 산짐승들을 자비심으로 대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온달이 한반도의 고구려 땅을 굽어보았다. 온달이 어머니와 평강공주를 보려고 하자 이웃집을 보는 것처럼 훤히 보였다. 달의 수호신이 되자 인간의 몸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들이 가능해졌다.      

 어머니와 평강공주가 툇마루에 나와 달을 올려다보며 눈물짓고 있다.

 “아가,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내 아들 온달은 죽어서 분명 달로 올라갔을 게야. 내가 온달을 가졌을 때 커다란 보름달이 내 품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단다. 그래서 이름도 온달이라고 지었지. 우리 착한 온달은 어두운 밤에 누구 하나 모자람 없이 온 세상을 골고루 비춰주는 달님이 되었을 게다.”

 어머니가 보름달을 올려다보며 평강공주의 손을 어루만졌다. 평강공주도 촉촉이 젖은 눈으로 보름달을 올려다봤다. 온달의 가슴에 따스함이 밀려왔다. 온달이 온 마음을 다해 어머니와 평강공주를 어루만졌다. 어두웠던 달빛이 어느새 은은한 노란빛으로 변해 두 사람을 포근하게 감쌌다.


 달빛은 두 사람뿐만 아니라 온달의 손에 죽어간 자들의 가족과 모든 인간, 풀벌레와 옹달샘에 이르기까지 세상 만물을 골고루 비추었다.

 장독대 앞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보름달을 쳐다보며 소원을 비는 여인네를 위로하고, 어두운 밤길에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돌아가는 사내들의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어떤 날은 갓난아기를 받으러 가는 산파의 밤길을 비춰주고, 또 어떤 날은 길을 잃고 헤매는 나그네의 등불이 돼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믐달이 어머니와 평강공주가 곤히 자는 집의 마당을 비추고 있었다.

 ‘쿵!’

 검은 복면을 한 남자가 평강공주의 집 담을 넘었다. 검은 옷에 칼을 차고 있는 모습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온달이 숨을 멈췄다. 흐려진 달빛으로 평강의 방문을 두드려보지만 문고리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온달이 소리를 지르며 몸을 솟구쳤다. 하지만 온달의 몸은 계수나무 한 그루를 겨우 뛰어넘었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방문이 부르르 떨렸다. 자객이 발소리를 죽여 마당을 가로질렀다. 평강공주의 방 앞에서 칼을 빼들었다. 시퍼렇게 날이 서 있다. 그자가 평강공주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누, 누구냐? 아악!”

 평강의 비명과 함께 방문에 피가 튀었다. 자객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바람처럼 담을 넘었다. 새파랗게 질린 달빛이 활짝 열린 방문으로 뛰어들었다. 평강의 가슴에서 울컥울컥 피가 솟았다. 온 힘을 다해 막아보지만 시린 달빛만 평강을 감쌌다.

 “서방님-.”

 평강이 흐릿하게 웃으며 가쁜 숨을 멈췄다.

 온달이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푸른 달빛이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어머니와 하인들이 달려왔다. 온달의 몸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자객을 찾는 눈에서 불꽃이 이글거렸다. 대대로의 집으로 숨어드는 사내가 보였다. 온달이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난데없이 대대로의 집 마당에 돌풍이 불었다. 대대로의 방 창호지가 바들바들 떨며 귀신처럼 우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뿐, 굳게 닫힌 방에서 은밀하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해치웠느냐?”

 “예! 보란 듯이 해치웠습니다. 온달 장군을 해치울 때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수고했다. 한동안 숨어 지내거라. 매제에 이어 누이까지 죽어 나갔으니 왕도 겁 좀 먹겠지.”

 대대로가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온달의 가슴이 복수심으로 타올랐다. 자신이 죽던 날이 떠올랐다. 신라군과 아군의 화살이 뒤엉켜 쏟아지고 있었다. 온달의 앞에는 부하들이 방패를 들고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어떻게 신라군의 화살이 방패를 뚫었는지 알 수 없었다. 전쟁에서 승기를 잡아가고 있던 참이었다. 등 뒤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몸이 휘청거렸다. 또 한 발의 화살이 날아왔다.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쓰러진 온달을 끌어안고 허둥대는 부하의 모습이 보였다. 시끄러운 군사들의 함성이 서서히 사라졌다. 어머니와 평강공주의 모습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의문이 풀렸다. 자신도 적군의 손이 아닌 대대로가 보낸 자객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은 억울하지 않았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죗값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그렇지만 평강은, 평강은…….’

아무 죄도 없는 평강이 먼지만도 못한 욕심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을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온달이 대대로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저주를 퍼부었다. 하지만 온달의 목소리는 계수나무만 뒤흔들 뿐이다. 차갑고 새파랗던 달빛이 점점 붉게 물들었다. 한동안 온달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가능하다면 숨 쉬는 것도 멈추고 싶었다. 몇 날 며칠 동안 어떤 생명도 온화하고 따스한 달빛을 받지 못했다. 어떤 온기도 느낄 수 없는 차가운 달은 또 다른 지옥이었다.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붉은 달빛을 내뿜던 온달이 어느 날 서해를 무연히 바라볼 때였다. 어둡고 고요한 밤바다가 보름달을 오롯이 품고 있었다. 온달을 위로하듯 부드럽게 출렁거렸다. 평강의 따스한 품이 생각났다. 온달이 서해에 쓸쓸한 달빛을 비추자 바닷물이 기다렸다는 듯 반짝거렸다. 바닷물에 그녀의 맑은 눈동자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문득 전쟁에 나가기 전 보름달을 보며 평강공주가 한 말이 떠올랐다.

 “서방님, 저는 바다처럼 세상 만물을 품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온 나라 사람들이 바보라고 놀리는 서방님을 품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온달의 가슴이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오랜만에 부드럽고 따스한 달빛을 비추었다. 달빛을 받은 바다가 몸을 뒤척였다. 그녀의 맑은 눈빛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온달이 바닷물을 힘껏 끌어당겼다. 바닷물이 수줍은 듯 순순히 끌려와 밀물이 되었다.

 온달의 힘이 가장 세지는 보름달이 되면 서해도 한껏 올라와 만조가 되었다. 그득 차오른 바닷물이 보름달을 온전히 품었다. 온달과 평강의 사랑으로 하루에 두 번 밀물과 썰물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바닷물을 따라 올라온 양분 많은 진흙이 작은 갯벌에 쌓여 갔다. 그리고 넓은 갯벌이 생겼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 둘의 사랑이 갯벌에 조개를 낳고 고둥을 낳았다. 갯지렁이와 낙지도 낳았다. 바닷물이, 오글오글 모여 숨 쉬고 있는 생명을 어루만졌다.

 철새들이 날아들었다. 배불리 먹은 철새들이 매해 찾아와 새끼를 낳았다. 굶주린 백성들이 갯벌로 나와 조개와 낙지를 잡았다. 바닷가 마을에는 굶주리는 이가 없었다.      


 어두운 밤 까만 갯벌 위로 방게와 달랑게가 거품을 뽀글거리며 오다다다 게걸음을 걷는다. 달빛을 받아 매끄럽게 반짝거리는 개펄을 주워 먹는다. 갯벌 여기저기에서 온갖 생명이 고개를 내밀고 소곤거린다. 보름달이 노오란 달빛을 비춘다. 어린 자식을 바라보는 아비의 눈빛으로.     


 서해바닷가 갯벌에 가면 평강과 온달의 사랑으로 태어난 생명이 어우렁더우렁 살고 있다. 바닷물이 젖을 먹이고 달빛이 지켜주는 서해에 가면.      

작가의 이전글 여기 내 집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