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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Jul 13. 2023

하늘나라와 주고받은 편지


오늘은 새벽부터 봄비가 내렸다. 직장 친구가 비 오는 양재천을 산책하고 자신의 소감을 이렇게 보내왔다. "그토록 아름답고 화사하던 벚꽃이 꽃비를 맞고 지저분하게 떨어져 있는 것을 바라보니 쓸쓸함 마저 드는 세상사, 인간도 음양의 조화 속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또 한 친구는 '벚꽃이 만개하면 언제나 비바람이 치고 새봄을 시샘하지요. 비 오는 양재천, 상상만 해도 멋집니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거실에서 정원을 내려다보 백목련 꽃은 이미 떨어졌고, 산수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자목련 은 만개하여,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나도 비 오는 양재천이 궁금하여 집을 나섰다.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군데군데 모여 있고, 천변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봄을 예찬하듯, 흥겹게 노래했다. 봄비흩날리는 벚꽃을 바라보면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생각났다.


저녁 무렵, 강남역 부근 식당에서 대학 친구 몇을 만났다. 코로나 19 때문에 한동안 친구를 만나지 못하자, 현직에 있는 성 대표가 만남을 주선한 것이다.

한 친구는 은퇴한 지 1년쯤 지났지만, 코로나19 때문에 고대하던 해외여행을 갈 수 없다고 신세한탄을 했다. 또 한 친구는 노후생활에 불안감을 느껴, 하느님을 신실하게 믿는 친구가 가장 부럽다고 했다. 

하지만 성 대표는 대학 시절에 활동했던 향영회(경영학과 연합 동아리) 회원들과 '세노향 합창단'을 조직하여 보람 있는 시간을 보낸다고 다. 성 대표우연히 프로 남성합창단 '벨리시모' 단장을 맡아서 서초동에 있는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나도 그 공연을 관람한 기억이 났다. 그는 유명한 곡의 가사를 외우고 노래를 하나씩 익히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고 했다.

세노향 합창단 정기공연

우리들 대화는 대학 동창 이야기로 이어졌고, 5년 전 미국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난 정재진 친구가 생각났다. 그 친구도 이민 가기 전, 향영회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었다.

그는 투병 생활을 하면서 수필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결국, 상당한 분량의 원고를 남긴 채, 하늘나라로 떠났다. 유가족은 장례를 미국 샌디에이고(San Diego)에서 치렀고, 대학 친구들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해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 동창, 노 회장이 주도하여 북한산 기슭에 있는 도선사(道詵寺)에서 49재를 지냈는데, 동창들은 부인과 함께 참석하여 고인을 추모했다. 고인의 아내, 정 여사도 입국해 49재를 함께 지냈다.


 그리고 며칠 후, 정 여사는 남편과 친했던 국문학과 김 교수를 찾아갔다. 고인이 생전에 썼다는 원고를 김 교수에게 보여주면서 수필집을 발간하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김 교수는 그 글을 찬찬히 읽어보고 좋은 글이라 생각하여 본인이 직접 교정후기를 썼다. 정 여사는 남편을 기리는 뜻에서 '가끔 수취인 없는 편지 쓴다(저자 정재진)'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발간하여 남편과 인연이 닿았던 여러 사람들에게 보내주었다.


정여사가 쓴 수필집 머리말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을 타계 첫 주기를 맞아 우리 가족이 가장 사랑했던 남편, 정재진 씨의 영전에 바칩니다. 나는 항상 자기 자리를 지킬 줄 아는 재진 씨를 존경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다시 태어난다면 아름다운 인연이 되어, 나는 또 정재진의 아내가 될 것입니다. 당신 곁으로 가는 그날까지 좋은 추억으로,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당신을 보듬으면서 하루하루를 시작하렵니다.  

                                                     정ㅇㅇ 씀"


하늘나라로 떠난 친구 이야기로 우울한 분위기가 엄습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한 친구가 "우리는 벌써 돈, 권력, 명예가 껍데기로 보이는 나이가 되었어. 이제는 내 건강과 가정의 화목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런데 사실 이것보다 더 절실한 건 죽을 때까지 즐겁게 사는 거야. 난 합창단 활동을 열심히 하는 성 사장이 참 부럽네."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한 친구의 딸은 몇 년 전, 결혼했다. 그런데 딸의 시아버지 즉, 친구의 사돈이 그로부터 몇 달 후 지병으로 하늘나라로 떠났고, 장례식을 치를 때, 고인이 생전에 직접 썼다는 '감사 편지'를 유족이 직접 조문객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도 특별한 그 편지를 읽은 기억이 났다. 고인의 감사 편지는 다음과 같다.


안녕하십니까?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여러분이 보내주신 사랑과 위로 덕분에 건강할 때는 물론 긴 투병 기간에도 행복했습니다.


이제야 저희 장례식을 통해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게 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죽음은 많은 분들이 이미 간 길이고 또 모두 갈 길이기 때문에 삶을 당연하게 여기 듯,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만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익숙한 일상과 영원히 헤어진다 생각하면 아득한 느낌인 것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과의 소중한 인연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제게 주어진 가장으로서의 소임은 부족한 데로 마무리를 졌습니다. 많은 분들의 축복 속에 아들의 혼사를 치렀습니다.


가장 슬퍼할 제 처와 사랑스러운 딸은 하느님께서 돌보아 주시리라 맡기고 나니 홀가분해졌습니다.

제가 없더라도 두 사람을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남 ㅇㅇ 드림


인간은 누구나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인생길을 걷는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느 철학자는 인간은 죽음을 향하는 존재라 했으며, 어느 소설가는 산다는 것은 무덤을 향하여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이다. 인간이 행복하게 살려면 건강은 물론이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것도 오늘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새삼 깨달았다. 또한 하늘나라로 떠날 때,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글을 써 남기면 슬픔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천국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을 정재진 형과 친구의 사돈께서 평안하시길 재차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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