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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May 20. 2024

동해의 신선 심동로와 해암정

 고향, 동해시(옛 삼척군 북평읍) 남단 해변은 추암湫岩마을이다. 이 마을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바닷가의 낭떠러지는 예전에 추암이라 하였다. 바다 가운데는 바위가 쌍가닥 서 있는데 그 높이는 5~ 6길이나 된다. 그리고 언덕 위는 평평하여 수십 명이 앉을 수 있다.

세조 임오(1462)에 체찰사 한명회가 이곳에 들러서 추암이라는 이름을 능파대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추암 촛대바위

신제 심동로 선생은 고려 충선왕 2년(1310) 삼척에서 태어났다. 그때 이름은 한(漢)이라 하였으며 동로라는 이름은 공민왕이 "동쪽에서 늙는다"는 뜻으로 하사한 이름이다.

그는 충혜왕 2년(1342) 봄, 32세 나이로 생원진사과에 합격하고 그해 가을 한림원사, 성균관학록 등 관직을 시작으로 공민왕 때에는 중서사인, 예의판서, 집현전 제학까지 올랐다. 그러나 권신들의 횡포는 날로 심하여 국운이 기울어짐으로 고향인 삼척군 북평으로 낙향하여 노후를 보냈다. 이때 공민왕은 수차에 걸쳐 관직을 권했으나 듣지 아니하므로 동로東老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그를 위로했다고 한다.

해암정

심동로는 추암 명도산 기슭의 바닷가 명당에 정자를 세우고 노후를 보냈다. 이 정자가 바로 해암정이다.

심동로는 이곳에서 풍류롭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후손들은 공의 유언에 따라 본관을 삼척으로 하였으니 공은 삼척 심씨 관조이며, 그의 후손들은 삼척을 위시하여 강릉 등 각지에서 번영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의 묘소와 신도비는 동해시 발한동에 있다.


심동로 후손들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벼슬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의 7대손, 심언광은 중종 8년 (1513)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 판서까지 지낸 인물로 중종 25년(1530)에 강원도 안절사로 왔을 때 시조 유적인 해암정을 중건했다고 전하니 동로 선생이 돌아가신 지 150년 후가 된다.

추암해변

최근 삼척 심씨 대종회가 발간한 <동해의 신선 신동로와 능파대>라는 책 일제강점기 한학자 강암 홍정현과 그가 지은 시, '능파정'의 역문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능파정(凌波亭)

      

                          / 剛菴 홍정현


산을 등지고 바다를 바라보며 정자가 우뚝 서니


다만 올해에는 발걸음이 그곳에 머물렀네


늙은 재상의 황량한 터에 남은 풀은 푸르고


신선은 바다가 두려워 서리가 푸르름을 바라보네


수레가 치고 이긴 땅에 그날은 오지 않고


바위가 세워지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을까

 

거센 파도가 갑자기 바위 에 부딪치고


우레 소리 시끄러운 곳에 흰 눈이 휘날리네



강암 홍정현(1875~1938)은 지금의 동해시 송정동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남양, 자는 우팔, 호는 강암 또는 불이재다. 한학자이며 서예가인 만재 홍락섭과 함께 송병선(송시열의 8대손, 대사헌)의 문인이다. 저서로는 '사유록'과 '강남유고' 8권 1책이 있는데 이 시는 강남유고 권지2 시편에 등재되어 있다.


나는 추암해변을 찾으면 해암정을 짓고, 후학을 가르친 신제 심동로 선생과 <능파정>이란 시를 지은 강암 조부님이 생각난다.


(출처) : 분토기 2( 동원 김영기 著 ), 강암유고 ( 홍정현 ), 동해의 신선 심동로와 해암정 ( 윤종대 편저자 )


추암해수욕장
능파대
추암 촛대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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