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한풀 꺾인다는 처서가 지나자 시원한 바람이 분다. 양재천 공원에서 고요히 흐르는 시냇물을 바라보니 노자(老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 말은 최고의 선이 물과 같다는 뜻으로 노자의 무위(無爲) 사상을 물에 비유한 것이다
노자는 사람이 물처럼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남과 앞다투며 높은 곳에 오르려고 애쓰지만, 물은 서로 다투지 않고, 남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겸허히 흘러간다.
물은 깊고 고요하다. 깊은 수면은 겉으로 아무 흔적이 없지만 내면의 깊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물은 어질고 사랑할 줄 안다. 언제나 물은 베풀고 두루 사랑하며 보답을 바라지도 않는다."
노자는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인간의 삶을 생각하였다고 한다. 자기 자신의 고집과 자존심 때문에 불협화음을 만드는 사람과 물의 성질을 비교해 보았는데, 이런 사람들이 물보다 더 어리석게 보이고, 남을 조금만 도와주고도 이를 과장하여 자랑을 해대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렸던 것이다.
송사(宋史)의 소식전(蘇軾傳)에 '행운유수 초무정질(行雲流水 初無定質)'이란 말이 있다. 떠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은 애초에 정해진 바탕이 없다는 뜻이다. 누구도 바다의 고향을 묻지 않는다. 바다의 고향은 강이었고 개천이었고 계곡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바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인간도 행운유수처럼 인생길을 걷는다. 인생길 역시 정해진 것은 없다. 오직 자신이 길을 만들어 날아가는 새가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처럼 앞을 보고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20세기, 미국 문학의 대표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나는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한참을 서서 낮은 숲으로 꺾여 내려가는 길을 끝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
이 시는 삶에 대한 희구(希求)와 인생행로의 대한 회고다. 화자(話者)는 자신이 선택한 길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회상하고, 자신이 가지 않는 길을 바라보며 미련과 아쉬움을 보인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길에도 후회와 미련도 있다. 하지만 길이 주인이 아니고 내가 길의 주인이기에 스스로 선택한 길은 후회 없이 잘 살아가야 한다. 흐르는 강물이 바다에 다다르면 멈추고, 하늘에 떠가는 구름도 바람에 소멸하듯이 인간도 행운유수처럼 살다가 저세상으로 가야 한다.
오늘은 매미가 떼로 요란하게 울지 않고, 한 마리씩 애처롭게 울고 있다. 아마도 짝을 찾지 못한 숫매미가 있는 힘을 다해 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6년 동안 땅속에서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내고 한 달을 행운유수(行雲流水)처럼 살았지만 삶이 덧없고 허무하다고 서럽게 우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