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일규 Aug 12. 2021

그 시각, 당신과 함께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

열대야를 사랑했던 이유, 문보영 <불면>과 함께


 열대야를 좋아했다.

 어린 시절 뉴스에서 열대야 소식이 들려오면 혼자 설레던 기억이 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한데, 더운 밤에는 많은 사람들이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뉴스 영상 속에선 많은 사람들이 여름밤 한강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고. 모두가 함께 잠들지 못하는, 그 분위기를 좋아했다. 같은 맥락으로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 새벽, 사촌 아기의 울음이 온 가족의 잠을 깨울 때도 그랬다. 새벽의 다정한 소란이 좋아서.


 어렸을 때의 나는 새벽이 무한한 시간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으로 인해 새벽을 좋아하기도 두려워하기도 했다. 혼자서 잠에 들지 못하면 영겁의 시간을 홀로 보내는 듯했고, 같이 새벽을 보내는 사람이 있으면 둘 사이에 영원한 시간이 생긴 것 같아 그렇게 설렐 수 없었다.


 이러한 습관은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됐는데, 나이가 들면서 새벽은 점점 더 길어졌다. 늦은 밤 혼자 천장을 바라보는 날이 많았고, 함께 자는 누군가는 늘 나보다 먼저 잠에 들었다. 불면의 시간은 내 머릿속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뇌는 내 것이라 이 시간에 생산적이거나 가벼운 사고를 해주지 않는다. 결국 이 시간은 불안정의 연쇄다.


 내가 완성해내지 못한 관계들과, 내 입에서 나와 여전히 누군가의 가슴에 박혀 있을 말들, 누군가의 입에서 나왔지만 내 가슴에 깊이 박혀 있는 말들을 떠올린다.




불면



누워서 나는 내 옆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내 옆의 새벽 2시는 회색 담요를 말고 먼저 잠들었다


이불 밖으로 살짝 나온 내 발이

다른 이의 발이었으면 좋겠다


애인은 내 죽음 앞에서도 참 건강했는데


나는 내 옆얼굴에 기대서 잠을 청한다

옆얼굴을 베고 잠을 잔다 꿈속에서도 수년에 걸쳐 감기에 걸렸지만

나는 여전히 내 발바닥 위에 서 있었다 발바닥을 꾹 누르며

그만큼의 바닥 위에서 가로등처럼 휘어지며


이불을 덮어도 집요하게 밝아 오는 아침이 있어서


부탄가스를 흡입하듯

옆모습이 누군가의 옆모습을 빨아들이다가


여전히

누군가 죽었다

잘 깎아 놓은 사과처럼 정갈하게



문보영, <불면> 전문




 그래서 나는 문보영 시인의 <불면>을 좋아한다. 이 시에는 유독 온몸으로 와닿는 표현들이 많은데, 좀 더 간단하고 이기적으로 말하면 누군가 나와 함께 잠들지 못한다는 증거가 되는 것 같아서 좋다. 내가 열대야를 좋아했던 그 마음처럼.


 <불면>에서 시의 “나”는 시적 화자인 동시에 관찰대상이 된다. 화자는 누워서 “내 옆얼굴을 바라보고 있”고, “이불 밖으로 살짝 나온 내 발이 다른 이의 발이었으면 좋겠다”한다. 이는 불면의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몸과 정신이 분리된 마비된 듯한 느낌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건대 이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내 몸이 낯설고 딱딱하게 느껴지고, 그 몸이 애처로워서 내가 아니길 바라는 일종의 자기 결렬과 연민이라고 표현하면 될까.(시인의 의도를 정확히 아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내 옆의 새벽 2시는 회색 담요를 말고 먼저 잠들었다”. 그러니까 여느 때의 불면처럼 시간은 나를 돌보지 않는다. 자야 할 시간은 이미 나를 두고 먼저 떠났다. 그것도 회색 담요를 말고 무심히. 그리고 이어지는 3연을 특히 좋아한다. “애인은 내 죽음 앞에서도 참 건강했는데”. 나를 잠들게 하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생각들과 매우 닮아 있으니까.


 내 죽음 앞에서 건강한 애인도, 수년에 걸쳐 꿈속에서 걸렸던 감기도, 잘 깎아 놓은 사과처럼 정갈하게 죽어 있는 모습도, 이 시에는 어느 하나 위로를 건네는 말도 없으며, 불면의 극복 의지도 찾아볼 수 없다. 시인은 우리와 함께 슬프고, 독자를 돌볼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이러한 불면자와의 연대는 이 시각 잠들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우리는 얼마나 혼자 많은 밤을 지새웠는가. 그러나 그 시각 당신과 함께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했고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을 조금이나마 알고 느끼는 지금의 나는, 오래전 열대야 소식을 듣고 불특정 다수의 모르는 이들에게 의지했던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문창과랑 연애하면 생기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