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에세이 #1. 선택하는 즐거움
네가 원하는 걸 골라볼래?
아이들은 어른보다 선택할 기회가 적은 편이다. 고학년보다 저학년일수록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적고, 일상생활이나 학습에 있어 조금 더딘 아이들은 선택의 기회가 더 적다. 선택에 대한 의지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인지, 선택할 기회를 주면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어른이 대신 선택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만난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해 본 경험이 적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선택하는 경험을 주기로 했다. 그 시작은 ‘만들기 고르기’였다. 예를 들어, ‘여름’을 주제로 만들기를 계획했다면 여름과 관련된 여러 가지 만들기를 함께 보고 각자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식이다. 만들기 재료는 아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목표를 달성하거나 수업을 진행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기에 선택의 기회를 주기에 적합했다. 물론 교사가 교육목표를 바탕으로 계획한 시간에 계획에 따라 준비한 재료로 수업하는 것이 효율적이지만 아이들이 작은 선택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먼저 고른 건데!
어느 여름날, 쉬는 시간을 몇 분 남겨두고 교사용 컴퓨터를 앞에 두고 학생 둘과 나란히 앉았다. “지금부터 선생님이 ‘여름’과 관련 있는 만들기 재료를 보여줄 건데,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손을 드세요.” 만들기 재료를 판매하는 쇼핑몰 화면이 나타나자마자 두 녀석은 동시에 손을 번쩍 들었다. 첫 화면에 나타난 ‘여름 팔찌 만들기’를 가리키며 “이거요!”하고 합창하듯 외쳤다. 다른 것들을 살펴보려고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기 무섭게 손을 번쩍 들고는 “선생님, 이거도요!”하고 외쳤다.
만들기를 선택하는 첫 경험은 아이들에게 꽤 강렬했나 보다. 평소에도 만들기를 좋아하던 아이들이었지만 직접 만들기를 골라보지는 않았을 터, 게다가 인터넷 쇼핑몰이란 곳은 만들기가 어찌나 많은지 손을 들고 또 들어도 탐나는 만들기가 계속 쏟아졌다. 아이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고, 이후로도 손들기는 계속되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이거요 대잔치’는 장바구니에 열 개가 넘는 만들기를 담고 나서 끝이 났다.
더 사고 싶다는 아이들의 아우성을 뒤로하고 장바구니를 클릭했다. 아이들이 고른 만들기가 보기 좋게 정리되어 나타났다. 자기가 고른 것도 그새 잊었는지 “와, 저거 멋있다. 저거 살래요.”라며 손을 들었다. 그러자 다른 녀석이 “저거 내가 고른 건데.”라며 다투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진정시킨 후 중요한 조건을 안내했다.
“여기 너희들이 선택한 것 중에서 딱 2가지만 고를 거야. 다 하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다음에도 만들기 수업을 해야 하니까 다른 건 포기하는 거야."
기대하며 고른 만들기 중 2가지만 선택하라니, 선생님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그래도 만들기를 하려면 장바구니에 담은 것 중 몇 가지는 포기해야 했다. 아이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만들기를 찬찬히 살펴보고, 포기하더라도 아쉽지 않을 만한 것을 하나씩 빼 나갔다. ‘이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저번에 돌봄교실에서 했어요.’ 각자 그럴싸한 이유를 대며 많은 만들기를 포기한 끝에 가장 마음에 드는 만들기 2가지를 선택했다.
아이들은 직접 고른 만들기를 다 가지고 싶었지만,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었다.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없다면 일부를 포기하고 내려놓아야 한다. 손에 쥐고 있는 하나를 놓아야 다른 하나를 쥘 수 있듯, 열 개가 넘는 만들기 중에서 2가지만 남기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포기란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라며 포기하지 말자고 격려하는 말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경험한 ‘포기’는 좌절이나 실패의 경험은 아니었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없을 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고르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의 과정이었다.
택배 왔어요?
처음으로 만들기를 고르고 주문한 다음 날, 아이들은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와선 “선생님! 만들기 해요!”라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러나 만들기가 없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실망했다. 그동안 아이들은 내가 준비해둔 만들기 재료를 이용했기에 어제 고른 만들기 재료도 당연히 준비되어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실망한 아이들을 앉혀놓고 '왜 만들기가 없는가'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주문, 배송, 택배 등의 단어를 써가며 설명하는 상황이 웃겼지만, 아이들은 진지하게 설명을 들었다. “만들기 회사는 어디 있어요?”, “택배는 언제 와요? 내일 와요?”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질문이 쏟아졌다. “만들기 회사는 조금 멀리 있어. 그래서 시간이 필요해. 2~3일 정도 기다려야 하고 그것보다 더 많이 기다려야 할 때도 있어.” 대답을 들은 아이들은 만들기가 도착하면 곧바로 알려주겠다는 다짐을 받아낸 후에야 제 교실로 돌아갔다. 그날 오후부터 만들기가 도착하기 전까지 나를 본 아이들의 인사말은 “택배 왔어요?”였다.
기다리는 일은 설레고, 두근거리며 기대되는 일이다. 그러나 어떤 기다림은 지루하고, 답답하다. 아이들이 경험한 기다림은 주로 후자였다. 먼저 말하고 싶지만 말 차례를 기다려야 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서서 참고 기다려야 했다. 견디기 힘든 기다림의 시간과 달리 아이들이 만들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거나 답답하지 않았다. ‘택배 왔어요?’하고 물을 때 기대에 찬 표정, 교실에 들어오며 만들기가 도착했나 싶어 분주하게 움직이는 눈동자를 보면 아이들이 ‘기다리는 즐거움’을 한껏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 시작한 ‘만들기 고르기’는 월중행사가 되었다. 선택하는 즐거움과 기다리는 맛을 알고 나서부터 선생님이 골라주는 만들기는 성에 쉽게 차지 않았다. 예전에는 “얘들아, 우리 만들기 뭐할까?”하고 물으면 “몰라요”, “아무거나 해요.”라고 말하던 아이들이 ‘고르는 재미’를 알고 난 뒤로는 두 녀석이 동시에 의자를 끌고 오며 말한다.
일단, 만들기 뭐 있는지 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