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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다미로 Nov 25. 2021

장난

교실 안의 말 #1.

장난

:주로 어린아이들이 재미로 하는 짓. 또는 심심풀이 삼아 하는 짓.



"장난으로 그랬어요."

"장난인데요."


아이들은 억울하다. 장난인데, 장난친 건데 왜 혼나야 하는지.

태우(가명)도 늘 억울했다. 장난으로 한 일인데 울어버리는 친구가 미웠다. 같이 장난을 해놓고선 내가 하니까 선생님께 쪼르르 달려가서 일러바치는 꼴이 보기 싫었다. 친구보다 더 밉고 싫은 사람은 선생님이었다. 담임 선생님, 체육 선생님, 교장 선생님 너나 할 것 없이 선생님은 항상 태우만 혼을 내거나 걱정을 했다.


"정우도 같이 했다고요! 왜 저만 뭐라고 하세요!"

"정우는 장난친 거고. 네가 한 건 장난이 아니잖아."

"저도 장난친 거예요!"

"친구가 우는데, 그게 장난이냐?"


같이 놀면서 했는데 누구는 장난이고, 누구는 왜 장난이 아닐까?

어디까지가 장난이고, 어디부터 장난이 아닌 걸까?


| 장난은 장난을 받아주는 사람이 불쾌함을 느끼는 순간 끝난다.


장난과 폭력을 구분하는 선을 결정하는 주체는 장난을 시작한 사람이 아닌 장난을 받아줘야 하는 사람이다. 장난의 상대를 '장난을 당하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당한다'는 말 자체에 이미 강제성이나 폭력성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장난을 받아준다고 표현하기로 했다.

 나도 재미있고 너도 재미있어야 장난이다. 서로 웃으면서 적당히 즐길 수 있을 때는 장난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재미있는데 너는 재미없고 불쾌해지는 순간 장난은 폭력이나 괴롭힘이 된다. 비록 시작은 장난이었지만 적당한 때에 마치지 못하면 폭력으로 변하는 것이다.


| 장난이 뭐 어때서?


 맞다. 장난이 마냥 나쁜 것은 아니다. 괜찮은 장난은 받아 줄 수 있고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나도 친구들과 장난을 주고받으며 자랐고, 지금까지도 친한 친구들과는 시시콜콜한 농담을 던지면서 장난을 치니까. 하지만 아이들을 만나는 사람이라면, 아이들을 만나게 될 사람이라면 '장난'에 대해 한번쯤은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다. '장난'이라는 말로 품을 수 있는 곳은 어디까지일까.
 어린애들 장난치는 걸 가지고 뭘 그렇게 진지하냐 핀잔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학교폭력, 성폭력의 시작에는 장난이 있었다. 장난 삼아 신발을 숨기고, 장난치면서 타인의 몸을 만졌고, 장난으로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이런 사건들도 '어린애들 장난이니까', '그럴 수 있는 거니까'하며 눈감아 줄 수 있는가.


| 장난으로 그럴 수 있지, 장난이잖아~ 너무 예민하게 그러지 마~


 장난으로 그럴 수 있다는 말, 예민하게 그러지 말라는 말에 숨은 폭력성과 강요는 더 심각하다. 타인의 경계를 넘는 불쾌한 상호작용을 장난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장난이라는 침범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을 융통성이 부족하고 예민한 사람으로 치부하면서 피해자가 소리 내지 못하게 입을 틀어막는다. 이런 점에서 아이들이 하는 '장난이잖아' 보다 어른들의 '장난이잖아'가 갖는 말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장난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친구가 장난친 건데, 네가 조금 봐줘.'

'아이들끼리 장난친 건데, 뭘 그걸 갖고 그러니.'


 장난으로 상처 입은 아이들이 이런 말을 들었다면, 특히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선생님이나 보호자였다면 아이들은 어떤 마음일까. 나를 지켜주리라 믿었던 사람들이, 위험한 일이 있으면 도움을 청하라고 했던 사람들이 내가 겪은 고통과 괴로움을 '아이들이 재미로 하는 일'로 치부했을 때 느껴질 배신감과 세상에 대한 불신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의 장난에 더 깨어 있어야 한다. 무엇이 장난이고 무엇이 장난이 아닌지 세심하게 살펴서 정확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장난이 아닌 일에 '장난이잖아요'라고 말하는 아이에게는 단호하지만 친절하게 장난의 의미를 새로이 알려주어야 하고, 장난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에게는 따뜻한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태우도 주변 아이들과 다툼이 있어 상담을 할 때면 늘 '장난이었어요'라는 말을 했다.

"태우야, 네가 그렇게 했을 때, 그 친구도 재미있었을까?"
"아니오"
"태우야, 장난이 뭘까?"

태우 눈을 내리 깔며 말했다.

"재밌는 거요."


"태우 말이 맞아. 장난은 재미있는 거야. 그런데, 친구도 재미있고 태우도 재미있어야 장난이라고 할 수 있는 거야. 태우는 재미있지만 친구는 불편하다면 장난이 아닌 거야. 친구는 재미있지만 태우가 불편해도 장난이 아닌 거고."


"알겠어요. 그런데 갑자기 화내면서 우는데 어떻게 해요."


"친구가 화를 냈다는 건 이미 불편했다는 뜻이겠지? 그럴 때는 바로 그만둬야 해. '나는 장난인 줄 알았지만 네가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해. 내 잘못이야.'라고 사과하면서 말이야. 물론 친구가 불편한 마음이 들기 전에 그만두면 제일 좋겠지. 예를 들면, '그만해'라는 말을 했을 때 멈춘다면 가장 좋지."




장난

: 주로 아이들이 서로 재미있어서 하는 짓. 서로 즐거우려고 하는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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