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글쓰기/문장 교실
글쓰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면
오후의 글쓰기
이은경
각 장마다 글쓰기 과제가 있다. 던져주는 소재가 불씨가 되어 적당한 크기의 불이 되는 경우가 있다.
과제를 해보면 이런 식이다.
드라마 '봄날'을 보고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가 있다. 주인공은 고현정인데, 드라마 모래시계를 끝으로 결혼을 하고 연예계를 잠정 은퇴한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이 이혼 후 찍은 첫 작품으로 많은 화제를 불러모았었다. 게다가 서른아홉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 20대의 조인성과 호흡을 맞춘다는 것에 질투심을 안고 봤었던 기억이 있다. 그 드라마를 십 년도 더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보고 있다. 그만큼 나이를 먹은 내가 다시 그 드라마를 보니 드라마 속 인물들은 DSM-5에 나오는 무수히 많은 장애들로 설명이 가능했다. 그런 면에서 명작이다. 작가가 DSM책을 보고 인물들을 구성한 것 같은 스펙터클한 드라마였다.
고현정: 극 중 이정은. 함구증
조인성: 극 중 은섭. 불안정한 애착으로 양육되었고, 어릴 적 엄마가 손목을 그으면서 자살 시도한 것을 목격한 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피를 보면 구토 증상이 올라옴.
지진희: 극 중 은섭. 교통사고 후 해리 증상
은섭의 엄마(은호의 새엄마): 경계선 성격장애, 의부증. 열등감
한고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에 2층 높이에서 뛰어내리기도 함. 밝은 성격으로 보이나 아픔이 있음. 은호의 소꿉친구이자 옛 연인.
당시에 볼 때는 고현정이 화장을 하지 않고 나왔네. 그런데 어찌 저리 이쁠까. 조인성 너무 멋지다. 라며 봤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에는 작품이 잘 만들어진 것 같네. 고현정의 연기가 그때가 더 나은 것 같네를 넘어 병리적인 특성들을 바라보면서 보고 있었다.
나는 직업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할 때만 내 직업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세상을 이 틀로 바라보는 버릇이 생겨버린 것 같다. 이게 좋은지 나쁜지 잘 모르겠는 감정을 안고 오늘 아직 다 보지 못한 드라마 봄날의 끝을 봐야겠다.
정은이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버려졌다. 버려진 정은이를 제주도 비양리의 보건소 의사가 데려다 손녀로 키웠다. 고집을 부리지 않는 아이였는데, 피아노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하지만 정은이를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피아노를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음을 이렇게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정은은 자신을 버린 엄마를 성인이 되어 찾아갔다. 슈퍼를 운영하던 엄마는 정은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가게 앞에서 알짱거리지 말고 가라고 했다. 그 뒤 정은이는 입을 닫았다. 말을 하면 의미를 두고 마음을 두고 갖고 싶어진다고 했다. 말을 하지 않음으로 욕심도 마음을 두는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살아가던 정은 앞에 은호가 나타났다.
은호는 의사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가 외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룸살롱에서 일하던 여자가 은호 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하고 은호의 엄마를 몰아내고 안주인 자리를 차지한다. 자신을 아내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는다고 하거나 은호의 엄마의 머리채를 잡아 내쫓는 등 기상천외한 일을 벌여 의사 사모님이 되지만, 자신의 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남편이 냉대하는 것은 아닌지, 바람을 피우는 것은 아닌지 순간순간 주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실로 확장해 나가면서 난동을 피웠다. 그런 가정에서도 은호는 밝게 잘 자랐다. 성인이 되면 엄마를 만나게 해 준다는 아버지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33살이 되어도 아버지는 엄마를 만나게 해 준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은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맺어준 제주도 비양리 보건소의 의사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정은을 만난다. 정은의 마음은 닫혀 있었다. 그런 정은에게 마음의 소리를 내뱉으라고 소리쳐주고, 피아노를 선물하며 다가온다. 은호가 떠나는 곳으로 정은이 달려간다. 그리고 가지마라고 말을 내뱉는다.
은호는 엄마를 만나고 정은에게 돌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엄마를 만나고 다시 공항으로 가는 도중 교통사고가 난다. 당시 운전하던 엄마는 즉사하고 은호는 의식을 읽는다.
한편 기다리던 은호가 오지 않고 소식도 없다. 그러던 중 은호가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은은 무턱대로 서울로 간다. 가서 은호 간병을 한다. 그러다가 은호의 동생 은섭을 만나게 된다.
은섭은 아버지가 무서워 의사가 됐지만, 어린 시절 엄마가 손목을 긋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을 목격한 뒤로 피만 보면 자신의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공황 증세가 나타난다. 구석에 숨어 벌벌 떨며 구역질을 하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은섭이 누워있는 동안 은정과 은섭이 자주 마주치게 된다. 어쩌면 처음부터 은섭은 은정이 신경 쓰였다. 그리고 형의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은정도 은섭을 향한 마음이 처음부터 있었다는 것을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은호를 향해, “당신은(은호 씨는) 나를 울게 하는데, 당신 동생은(은섭 씨는) 나를 웃게 해요”라는 말로 복선을 나타낸다.
사람은 모두 특별하다. 자폐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려고 내원한 만 5세 남자아이의 아버지가 아이에 대해 “우리 아이가 좀 특별해요.”라는 말을 여러 차례 사용하였다. 다른 아이들과 다른 행동 증상을 보이는 것에 대해 특별하다는 말로 표현하는 부모는 처음 만났다. 특별하다는 말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지 않은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문이 열리고 닫히는 모습을 하루 종일 지켜보고 있다거나 중문을 열고 닫는 행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특별하다고 표현하지는 않잖은가.
그런데도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의 증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 아이는 특별하다는 말을 먼저 사용하였다. 아버지가 단어의 뜻을 모르고 사용했을까? 수많은 단어를 고민하다가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특별하다는 단어를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게다. 부정적인 것에도 좋은 의미로 말하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특별하다는 말이, 이 드라마를 보면서도 떠올랐다. 장애가 있다고 그 사람이 특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은 존재만으로도 특별하다.
누군가에게서 내가 잘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지 못하게 칭찬을 받는다면, 그 말을 잊을 수 있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그 말을 곱씹지 않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이십 대 후반에 근무하던 시골의 작은 병원에서 원장은 나에게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고 했다. 그리고 몇 차례 글을 써온 후, 원장은
“선생님은 수필을 쓰시면 잘 쓰실 거 같아요.”라고 강아지풀처럼 부드럽고 조용한 말투로 말했다. 그때 알았다. 내가 수필에 어울리는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물론 이 말은 독후감을 수필처럼 써왔다며 에둘러 표현한 것이겠지만, 나는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10년이 넘게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성장을 멈추고 고단한 세상의 껍질을 쌓아갔다. 그러다 약 1년 전, 친구와의 독서모임을 계기로 다시 독후감과 수필이 결합된 글을 가끔씩 쓰고 있다.
누군가 내게 글을 써달라고 부탁한 적 없어도 왠지 뭐라도 계속 써야 할 것 같다. 이 길을 계속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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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교실: 글쓰기는 귀찮지만 잘 쓰고 싶어
하야미네 가오루 지음
책 제목과 더불어 [글쓰기는 귀찮지만 잘 쓰고 싶어/한 문장도 못 쓰다가 소설까지 쓰게 된 이상한 글쓰기 수업]이라고 쓰여 있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면 어서 이 책을 읽어보세요’라는 흥미를 유발하기 딱 좋은 홍보글이다. 맞다. 소설! 그래서 소설이 아닌 수필이나 말 그대로 글 쓰는 실력을 키우고 싶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스노볼이라는 고양이가 가르쳐주는 내용들은 이미 안에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일기나 독후감을 쓰고 있다.
독서나 필사를 하고 있다.
라고 한다면 딱히 더 이상의 가르침은 없다.
반면, 글쓰기가 정말 싫다/간단한 편지도 쓰기 힘들다/글을 잘 쓰려면 책을 읽어야 된다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라면, 그런데 자꾸만 몇 줄이라도 글을 써야 되는 일이 생긴다면? 읽기에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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