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네 집은 멜론 농사를 짓는다.
어젯저녁 친구가 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엄마가 풀이 죽어 있더란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올해 멜론 농사가 잘 안 됐어......”라고 하더란다.
그러곤,
“멜론이 살기가 싫었나 봐. 다 죽어버렸어.”라고 하더란다.
오랜 세월 농사를 지어왔던 엄마에도 처음 겪는 일이었고, 자연이 하는 일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고 했다.
담담하게 말하는 친구 녀석의 말에 오히려 화가 난 건 나였다. 여름 내내 땡볕에서 일하고, 고생하고, 무엇보다 온갖 정성과 마음을 주었을 것을 생각하니, 화가 났다. 마음이 애잔하고 슬픈 것은 둘째 치고, 조금이라도 산 것들은 어떻게 해서든 팔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 오늘은 마음껏 슬퍼하고, 내일은 훌훌 털어버리세요.”
그리고 탓할 수 없는 자연이 자신의 위엄을 나타내기보다는 인간의 정성을 아울러주길, 보듬어주길, 인간이 하는 일에 노여워하기보다는 어리석은 자들의 마음을 감싸주길 바라본다.
십 년 전 이야기다. 올해 친구네 수박이 물에 잠겼다. 마을 입구가 잠겨 고립됐다. 아직 그런 곳이 많다. 비가 내리면 허리까지 잠겨 서둘러 집에 가야 하는 곳이 있다. 자연과 인간과 삶을 생각하게 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