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관상 그럴듯해 보이는 집 대신, 어리숙한 분칠을 하고 있어도 거짓이 없는 집을 바랐다. 덕분에 보이지 않는 곳에 많은 품이 들었지만, 진지해졌다.
살아있는 건 늙는다. 집도 늙는다. 마치 살아가는 것 같다.
외벽엔 주름 같은 흔적이 크게 남고 여기저기 손 쓸 수 없다. 노후주택에 새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은 힘들다. 좁은 골목의 열악한 공사 환경. 수십 년 된 건물을 보수하는 일은 구조 검토에서부터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사에 돌입하자마자 들이닥치는 각종 변수는 허탈하게 만든다. 집과 동네가 간직한 시간을 이어가는 일은 오랜 시간을 예고한다.
주인이 바뀌더라도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기를 반복하는 짧은 수명의 한국 모습이 아니라, 충분히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게 집의 역사가 기록된 노트를 만들어 전해주고 싶다. 나는 이제 이 집의 주인이 되었지만, 언젠가 다른 이가 이 집의 주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건물구조는 벽식 구조와 라멘 구조가 있는데, 내가 구입한 주택은 벽식구조이다. 라멘구조는 기둥을 세우고 있어 벽을 털면 되는데, 벽식구조는 벽 자체가 하중을 받치고 있어 함부로 허물면 안 된다. 그리고 내벽에는 세로로 균열이 나 있지만, 외벽에는 큰 균열이 가 있지 않다면 구조 안전상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내부에 세로로 아주 큰 균열이 있어 구조보강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견적을 요청한 업자 모두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내가 오히려 난감하다.
더욱이 시멘트 블록을 쌓아 지은 조적조 주택이다. 시멘트 블록조는 이미 벽체가 약해진 경우가 많아 구조 전체를 보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신축이나 개축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본다. 이 글을 읽고 있자니. 내 집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두려워진다. 나는 이곳을 살릴 수 있을까?
해월가는 정해진 기간에 한 번에 처리한 건이 하나도 없다. 단점이라고 하면 단연코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고, 장점이라고 하면 오래 보아야 예쁜 것처럼 집의 소리에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집 고치기의 시작인 철거부터 그랬는데, 하루는 적재되어 있던 물건 나르기를 하고, 다음엔 벽지를 뜯거나 안방 천장에 댄 부분을 뜯어내는 것과 같이 하루에 적은 분량을 상태를 보며 이어나갔다. 천장을 뜯어낼 때도 전체를 다 뜯은 것이 아니라 작은방의 천장을 뜯고 괜찮을 것 같으면 전실의 천장을 뜯는 식이었다. 어느 날엔 마루를 뜯고, 어느 날엔 보일러는 들어내고, 그러다 담장을 부수고 하는 식으로 하니, 철거를 하는 데에도 오랜 시일이 소요되었다.
지붕은 시멘트 기와로 되어 있는데 부서진 곳은 교체하고 금이 간 곳은 때우고 도색작업을 하기로 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색이 붉은색이어서 주황색 계열로 이야기를 했는데, 마을과의 조화를 생각하고 집 분위기를 고려해서 H(레모델링 업자)는 단연코 “블랙”이라고 했다. 대부분 나의 말에 따르는 편이었으나, 이처럼 확고한 면도 있었다. 기와가 오래돼서 그런지 도색을 한 뒤에도 색을 쫙 빨아들이고 더 늙은 것 같다. 추후 욕실과 같이 지붕이 없는 곳에 추가 지붕을 설치하니 그건 또 회색빛이 돈다. 그리고 알게 된다. 지붕은 새로 했어야 했다.
다음은 오폐수다. 오폐수 설치가 되어 있기는 한데 노후되어서 파내고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전기, 수도, 오수는 하기로 마음먹고 있는 상태였다. 다 고치고 났는데 녹물이 나온다거나 오폐수관이 말썽을 일으키면 빛 좋은 개살구라는 옛말을 현실로 만들어 버리는 꼴이 될 테니 말이다. 하면서 욕실 작업도 이어졌다. 수도, 오폐수 연결 시 기본 작업을 했고, 욕실 위 지붕 작업을 했으며, 타일 작업을 하고 도기를 모두 달았다. 그런데 어느 날에 보니 세면대가 마치 고양이의 할큄을 당하듯이 수도 없이 그어져 있었다. 살면서 노후가 되고, 상처를 입는 것도 안타까운데 아직 살아본 적도 없는 곳이 아픔이 생기면 마음의 쓰라림이 더 하다.
전기는 이전 것을 사용하면 화재 위험이 있을 것 같아 새로 하기로 했다. 전기 콘센트도 넉넉하게 내준다고 했는데, 전실에는 한 개도 없고, 작은 방에는 한 개 뚫어놓았다. 더욱이 한 번에 하면 좋으련만 몇 번을 나누어하는 건 지. 전기 배선 작업, 조명을 달기, 창고 전기 선 작업 하기, 또 안 한 곳 다시 하기 등 여러 번 했다.
조명은 내가 조명가게에 가서 직접 골라서 사 왔다. 나는 뭐든 현실화하는데 미적거리는 편이다.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인지 간단한 것도 하지 않고 미루는 습관이 있다. 그래도 조명은 필요하지 않은가. 비가 많이 오는 날, 조명가게로 갔다.
고른 것이 어떤 조화를 이룰지 감이 안 온다. 그래도 사야지. 주로 펜던트 조명으로 했다. 전실 앞부분은 키가 낮아 부착형식으로 했다. 펜던트, 부착등, 레일 등과 같이 조명의 형태와 전구의 밝기를 배운다. ‘다 알아서 해주세요’ 보다는 그림을 그리고 진행해 나간 편이라서 내가 알고 있어야 하는 지식도 늘어갔다. 각 방에 하나밖에 설치가 안된다고 해서 전구를 가리지 않는 조명갓을 주로 선택하고 와트도 10와트 정도로 했다. 큰방, 작은방, 복도, 전실 2, 내부 창고, 외부 창고 2, 부엌 등 펜던트 조명과 전구를 샀다.
조명을 달면서 전기 하는 업체에서 누가 조명을 골랐냐며 너무 이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다행히 실제로 달고 보니 기우를 뿌리치고 잘 어울렸다. 보통 책방에나 상점에 가면 무수히 많은 조명이 달려 있다. 주로 레일에 조명을 연결해서 하는데, 사실 누구나 3평 남짓한 공간에 얼마큼의 조명이 설치되면 충분한지 정도는 알고 있다. 남들이 많이 하니까, 나도 많이 달기보다는 3구 전구 형식으로 하나만 달았다. 전구를 백열 계통으로 했다. 분위기에 안 맞게 왜 이러냐고 하겠다만 분위기가 필요하면 벽부등을 몇 개 추가로 콘센트에 연결해서 필요할 때 쓰면 된다.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책을 볼 때 눈의 피로도도 신경 썼다. 덕분에 더 볼품없고 적나라해지기는 했지만 그것이 이곳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상수도는 설치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본디 상수도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집이었다. 지하수 펌프가 마당 밖에 있는데 오래되어서 사용이 어려울 것 같았다. 오폐수관을 할 때 상수도를 설치할 수 있는 관을 함께 설치했다. 그리고 논산시청 상수도과에 전화해서 설치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의하고, 가서 서류를 작성하고 실사를 나오고 설치를 하게 되는데, 오래 걸렸다. 실사 나오는데만 한 달이 넘게 걸렸다(집 안에 관은 직접 하고 집 밖은 개인이 할 수 없어요). 전화하면 담당자는 실사를 나갔는지 없는 날이 많았다. 논산에 상수도가 설치되지 않은 집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내 돈 주고 견적을 봐서 해야 하는데도 오랜 시일이 걸린다는 것이 의문이었다. 그 뒤로도 연락이 없어 다시 전화하니 설치업체가 10개 정도 되는데 그중 한 개로 지정되어 설치하는데 또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시설업체는 설치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식이라서 마감도 여러 번 이야기해야 나오고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해월가 경우는 주변에 집들이 붙어 있어 다행히 상수도 견적비가 100만 원 정도 들었지만 멀리서 끌어와야 하는 경우는 공사해야 하는 길이가 길어져서 걷잡을 수 없이 많이 들기도 한다고 한다. 그 사이 욕실을 먼저 공사했는데, 물이 얼마나 잘 나오지를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답답함을 넘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는 곤욕이 뒤따라서 애를 먹었다.
상수도관 바로 앞에는 작은 포도나무 한 그루가 있다. 처음 집을 샀을 당시에 무수히 많은 풀들이 점령하고 있었는데, 일부는 해와달이가, 나머지는 업체에서 철거하며 나무 두 그루를 포함하여 대부분을 없앴는데, 이것만은 살려놓았다. 나는 포도나무인지, 이것을 왜 살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수도업체에서 왔을 시에 뽑아 버리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는데, H가 일부러 살려놓은 거라며 좋은 거라고 한다. 여태 안 죽고 살아있는 것도 신기하고 마치 집의 상징 같아 볼품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풀뿌리 하나를 남겨두기로 했다.
전체 미장을 비용에 넣었는데, 페인트 작업을 하려는데, 부엌 한쪽 벽면이 으스스 가루가 떨어진다. 미장은 벽이나 바닥을 고르게 시멘트를 얇게 펴 바르는 것 정도라고 보면 된다. 분명 전체 미장을 했다고 했는데, 부엌의 한쪽 벽, 천장을 뜯어내고 나온 옆 벽면만을 해 놓은 것이다. 추가 미장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추가 비용을 내라고 한다. 한참 실랑이를 했지만 추가 비용을 내고 마감했다.
해월가는 오래된 한옥집에 시멘트 작업으로 고친 듯한 집 형태로 나무 마루가 있었다. 나무 마루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멍 때리고 있는 것이 풍경적으로는 얼마나 아름답겠냐만은 실제로는 마루 바닥으로 기어 다니는 벌레들을 방치하고 아래를 청소할 방법이 딱히 없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래서 마루를 걷어내고 콘크리트 작업을 하기로 했는데 견적에 들어 있는 레미콘을 들이지 않고는 아무 말이 없다. H는 꼼꼼하기는 하나 마치 이번 공사가 인생 최대 큰 공사를 처음 맡기라고 한 듯이 물어보면 그건 해야 한다는 식이다.
샷시도 기존의 샷시를 하기로 했는데, 추가 비용이 들게 됐다. 시공을 하다 보면 이런 것은 날벼락이 아니라 애교 수준에 이른다. 연일 찾아온다. 기존 샷시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맞게 하면 될 것을. 전실 지붕을 새로 하고 보니, 기존의 샷시가 들어가기에는 5cm 정도가 낮다고 했다. 그러면 지붕을 블랙을 했으니, 샷시 색도 맞출 수 있냐고 했더니 그러면 비용이 더 들어서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할 때는 블랙으로 달려 있는 아이러니. 고지식함에 억지로 융통성을 집어넣어야 하는 사태가 이어진다.
이런 식의 큰 장기를 교체하고 나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샷시의 빈틈을 메꿔야 한다든가. 환풍기 구멍을 내야 한다는지, 계단 옆의 미관을 위해 미장을 해야 한다는지, 빗물받이 통을 달아야 한다는 식의 일들이 계속 이어졌다. 언제 끝나려나. 처음에는 이번주 수요일이었는데, 그다음에는 다음 주 수요일...... 공사를 시작한 지 3달이 넘어갔다. 그래도 집을 구했고, 어떻게 고칠지 정했고. 지금 진행이 되고 있으니, 멈춘 듯이 보여도 조금씩 숨을 쉬고 있으니 그걸로 된 거려나.
집은 도로보다 지대가 약간 낮다. 원래부터 그런 것인지 오랜 시간 사람이 살지 않으면서 그 사이에 아스팔트를 깔고 고친 도로가 상대적으로 높아져서인지는 알 수 없다. 비가 오면 마당으로 진득하게 물이 고이기 일쑤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 해월가 전실에 앉아 밖을 내려다보면 낡은 앞집 한쪽 벽면도 아름다워진다. 낡은 가옥과 색이 바랜 외벽과 모래의 질감이,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50년을 버틴 시멘트기와의 처연함이, 한적한 골목에 울려 퍼지는 기차소리가, 책들을 깨운다.
곳곳에 식물들이 자라는데 상추, 배추 같은 책방과는 어울리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있다. 집에서 삼십보 정도만 나가도 앞집할머니가 일구는 채소들이 있다. 정갈한 화분, 화초가 아니어도 충분히 싱그럽고 산뜻하다는 걸, 어디에는 어울리고 어디에는 그렇지 않은 자연은 없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다. 일부러 비껴가는 듯한 이 동네의 어수룩한 공기가 좋다. 나는 이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