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추억의  타임머신

가족소설  제1장

  솔잎의 효능을 잘 아는 탓에 상훌은 솔잎과 솔순 여린 것을  고향에서 맘껏 따보겠다고  이번에도 작정해 본다.

그동안 그는 고향구옥에 들렸다가도 그냥 떠나기 일쑤지 마을 뒷산에 오르기란 또 다른 맘가짐이 있어야 했다.


산마루 꼭대기 부근에는 솔잎 따기에 적당한  어릴 적 상훌의  키보다도 나지막한 어린 소나무가 지천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큰맘 먹고 그는 뒷산에 올랐다. 앞을 연달아 가로막는 잡목을 헤치며  정상부근에 막 이르렀을 때였다.  상훌은 잠시 망연자실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그리고 우두커니 서서 앞에 펼쳐진 낯선 광경을 한동안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자잘하게 봉우리를 감쌌던  그 시절 어린 소나무들은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 대신 회 붉은 배를  드러내고 어른키 두세 배를 넘을듯한 장송들만 빽빽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상훌은 그곳에 도달하는 순간까지도 오르지 추억 속에 마음이 갇혀서  지나가버린  수십 년의 세월을 까맣게 망각하고 있었다.  또한 매 순간 변하고 자라는 생물의 물성까지도  잊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 그는 잠시 그곳에 털썩 주저앉아 회한에 젖을 수밖에 없었으니  이제는 정신을 가다듬어  수십 번의 봄, 가을이 지났음을  곰곰이 헤아려 봐야 했다.


​그때 상훌의  기억 속 타임머신은  수십 년을 순간순간 넘나들고 있었고  주변은 너무도 변해 있었다.

문득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옛이야기를 떠올렸다.

한 처사가 신선들의 바둑놀이 구경 후 동굴밖을 나왔을 때의 바로 그 심경이랄까.


​그는 산등성이를 내려오며

어릴 적 반들반들했던 산길이 잡목무성한 숲길이 되어 당장에 길 찾아가는 것도  힘겨워했다.


 하지만 이러한 수십 년간의 산천의 변화가 오랜만에 상훌을 더욱더 옛 시절 동심으로 이끌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산길을 내려오며  마주한 그가 태어나고 살았던 재너머 옛 집터는 잡초와 잡목으로 뒤덮인 상태였지만 추억을 되살리기에는  충분했다.  


어린 시절 그렇게도 많았던 과일나무 꽃나무들이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고향생각을 할 때마다  추억이 서린 꽃과 나무, 바람소리, 옛 향기를 전해주는  추억의 장소로 여전히 남아있었다.


 반세기 전에는 고향집 뒤편 언덕길을 자주 오르내렸다. 오르막 오솔길을 한동안 가다 보면 고갯마루에 다다른다. 그러면 재너머 아래로 큰 마을과 이십여 리 확 트인 들판이 시원스레 눈앞에 펼쳐졌다.


​그가 초등학생이 되기 한두해 전쯤부터 재너머 큰 마을 넘어가는  고갯마루의 넓은 잔디밭은


그와 친구들의 놀이터였고 만남의 장소였다.

사람들은  고갯마루를 이곳방언으로 `말랭이`라 불렀다.


또한 그 고개는 높은 산 저쪽부터 연달아 내려온 능선에 위치해 있으므로 오늘날에 생각해 보면 중요한 생태통로였던 것이다.


​따라서 한밤중에 산짐승들이 오갔던 흔적을  어느 겨울 눈 내린 날 아침에 본 적이 있었다.

한 번은 대낮에도 산짐승이 출몰했다.  상훌네집 수탉이 암탉들을 이끌고 그곳까지 올라가 먹이활동을 하다가 대낮에 살쾡이의 공격을 받았던 것이다.


​고갯마루 주변에는 병풍같이 두른 큰 장송 소나무와 참나무들 그리고 봄에 연두색 잎이 파릇하게 나오는 쭉 뻗은 낙엽송들이 항상 길손을 지켜보는 곳이었다.


​또한 그곳은 재너머 동네를 빤하게 내려다볼 수도 있었다. 여닐곱 가구수의 집들과 앞에는 산으로 답답하게 막힌 상훌의 동네에 비하면 재너머 동네는

좀 더 큰 동네였다. 게다가 시커먼 콜타르먹인 목재 전봇대가 서있는 전기불이 들어오는 개화된 곳으로까지 생각되었다.


​종종 그곳 말랭이에 오르면 항상 귀에 들려오던 다양한 소리들 바람결의  내음이  아직도 상훌의 기억 속에 신선하고 생생하게 떠오른다.


 새소리, 바람소리, 숲내음을 배경으로 저 먼 곳 넓은 들판에서 들려오는 농기계소리 방앗간 발동기소리 차량소리 등이 혼합되어 웅웅 거리던 다양한 소음들이 들렸다.


​그때는 거기에 올라와야만 들리는 왠지 기분 나쁘지 않은 희망에 찬 건강한 소리처럼 여겨졌다.


​ 그럴만하게도 당시에는 공장글뚝의 뭉게구름 연기나 건설현장의 망치소리가 개발의 상징으로 표현되던 때였다.  공해나 오염이란 말조차도  거의 통용되지 않았다.


물론  60년대에  미국에서 카슨이 그의 저서 '침묵의 봄'을 통해  환경오염을 경고한 적이 있었지만  개도국인 우리에겐 먼 나라 얘기였다.


 고갯마루는 여러 개의

오솔길들이 겹치는 십자로여서 사람들의 발길이 빈번해  풀들이 거의 나지 않을 정도로 항상 반들거렸다.

​또한 멀리 돌아서 경유해야 하는 신작로 대용의 지름길이었다.


따라서 일 년에 한두 번 칠월칠석이나 명절 즈음에는 동네 어른들이

삽과 가래를 가지고 오솔길 정비작업을 연례행사처럼 하였다.


​말랭이 잔디밭에는 봄에는 토끼풀을 뜯고 소에게 플먹이러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는 길목도 되었다.


상훌네 집의 드넓은 텃밭이 고갯마루까지 인접해 있어

그곳까지도 그의 가족들 생활공간에 들어와 있었다.


또한 윗 밭에 참외와 수박을 심기라도 하는 해에는 원두막까지 그곳에 세워져 인적이 더 빈번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집 주변에는 다양한 과일나무들까지 있어 제철이 되면 상훌의 형, 누님 친구들이

자주 원두막에 오가곤 했다.


 그곳 말랭이에는 아름드리 왕소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둘러쌓고 있었으며 한쪽에는 다른 산과는 좀 이색적인 큰 낙엽송과 곰솔이 서 있었다.  


초봄에 새잎이 나기 전 물오른 낙엽송가지를 꺾어 비틀면 호 뜨기 피리를 손쉽게 만들어 불 수 있었는데  ​그 낙엽송은 일본 잎갈나무였으며  재너머 함석집아재 부친이 일제강점기 심은 것이라고 했다.


그곳 말랭이 주변에는 그 집안 조상묘지들이 운집해 있어 지역의 유지였던 그 부친은 다른 산들이 헐벗고 민둥산이 될 때에도 그곳 만큼은 나무를 심고 잘 관리해 왔던 것이다.


다음편   2장 ㅡ


작가의 이전글 원산도에 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