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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도에 가다

해저터널과  원산대교

안면도를 종단하여  백 리 길을 내달려 내려왔다. 섬 끝자락에 이르니 눈앞에 성큼 다가오는 구조물이 낯설다.  차창밖 양쪽에 드리워지는 사장교의 방사형  강선다발과 주탑이 위압적이다.

이것이 최근에 개통된 연도교 원산대교의 위용이다.  


이곳은 원산도를 육지와 연결하는  보령해저터널과 함께 또 하나의 대역사가 구현된 현장이다.

 

그동안 이곳은 한적하고 소외되었던 낙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곳 도서지역을 일약 주요 명소의 반열에 올려놓을 있는 대형 국책사업 중의 하나가 실현된 곳이다.


보령해저터널은 참으로 우리 건설사에 있어 야심 찬 계획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 환경은 달라도 영불해협의 유로터널에 비견되는 해저터널이라 말하고 싶다.

유로터널의 개통,  훨씬전에 카페리로 도버해협을 건넌 적이 있지만

그곳도  반대편 하얀 언덕이 보이던 그리 넓지 않은  해협이었다.

역시 대단한 기술과 자본력이 없었다면 실현되기 힘든 역사의 현장들이다.


불과 4,5십 년 전에는  우리의 주요 길조차도  구불구불 비포장으로 흙먼지 날리던 그곳들이었다. 참으로 우리 경제의 발전과 국력을 체감한다.


 원산도는 이제 서해안 끝단을 종축으로 달리는 국도 77번의 요충지가 되었다.

요즘은 다소 한산함이  느껴지는 시기이지만 피서철이 다가오면 상황은 반전될 것임에 뻔하다.


원산도가 이렇게 오늘날 각광받는  육로교통의 명소가 되었다.

그렇지만 원산도는 옛날에도 해로 운송의 요충지였다. 천수만 입구에 자리한 조건으로 한양으로 향하던 각종 조운선들이 잠시 들러 숨을 고르고 가던 포구가  위치한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산도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다. 나의 어린 시절, 섬  여행은 언감생심이었지만  이야기로 들어온  원산도의 추억이 떠오른다.

초등 4학년때 담임샘 친구분의 격지근무지가 바로 원산도였다.


따라서 담임샘은 친구분이 들려준 섬마을 학동들의 생활상을 가끔씩  좋은 입담으로 스토리텔링해 주었다.


우리는 바다를 가본 적도 본적도 결코 없었지만 담임샘이  섬마을 이야기를 들려줄때면   상상의 나래를 펴는 시간이 되기에 충분했다.


섬마을 아이들은 학교가 파하면 주로 바다로 나간단다. 썰물로 드러난 갯벌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밀물 때는 마을어귀까지 고깃배가 들어오는 한적한 섬마을 이야기가 흥미롭기만 했다.


그중에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저녁에 집에서 꾸중을 들은 한 아이가 작은 조각배를 타고 밤바다를 떠돈 이야기였다.


 다행히 마을어른들이  구해냈지만 섬마을에서는 가끔 있음 직한  일인 것 같다.

후 특정매체를 통해 접한 기사로써 남해안의  한 외딴섬에서도 그와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다.


한 소년이  더운 여름밤더위를 식히려고 포구에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 묶어놓은 작은 조각배를 풀어 타고 마을 앞 밤바다를  유유히 떠 다녔다.


소년은 조각배 위에 누워, 밤하늘 별을 감상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 소년은 잠이 들고 말았다.

시간이 흘렀을까, 잠에서 깨어보니

육지가 거의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였다.


후 상황은 심각하게  전개 되었다. 며칠 후 항행하던 외국 상선에 다행히 구출되어 상선의  기착지인 홍콩까지 가게 된다.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결국은 고향인 섬마을에 돌아왔다는 극적인 다큐의 해프닝이 있었다.


 이렇게 원산도를 난생처음 들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름 모를 포구 방파재에 우두커니 서서 이야기 속 추억의  섬마을을 상상하며 상념에 젖어도 보았다.


현재의 원산도와 추억 속의 원산도를 오갈 때 불편한 마음으로 스멀스멀 다가오는  무엇이 있다.  바로 그것, 개발과 보존이란 화두에 이르니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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