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백만송이 꽃동산

백화원

백화원에 여명이 밝아온다. 수십 척 아름드리 장송 사이로 새벽이슬의 포말이 자욱하다. 침엽틈새로 일출 햇귀의 순살이 부서져 내린다.

농후한 솔향에서 어느덧 가을을 넌지시 느낀다.


꼬불꼬불 이슬 젖은 초록빛 잔디길을 걷는다. 회양목, 영산홍의 단아한 유선형 군락이 길손을 안내한다.

저만큼 여백 넘어 노각수

가지 사이로 꽝꽝나무의 둥그런 실루엣에 시선이 머문다.

몇 거름 다가서니 손톱만 한 섬세, 오묘한 비늘잎 수만 개의 군집이다. 수고가 열두 척이 넘을 듯 구체의 수형이 웅장하다.


삼복더위를 이겨낸 아침의 정원 숲이 유난히 푸르다. 불그스레 운치있는 반송수피, 다갈래의 줄기 사이로

언듯언듯 하트형 풀장이 보인다.


반짝이는 윤슬이 동공을 자극하고 시원한 연청 도색에 200톤 수량의 널따랗게 일렁이는 수면이 청량감을 준다. 여름내 많은 이의 더위를 달래주던 곳, 이 계절의 핫 플레이스다. 수영과 튜브, 물총놀이를 번잡스레 즐기던 선남선녀의 잔영이 아직도 남은 듯 눈에 아른거린다.


저 아래 연못의 폭포수 낙수소리가 배경음향으로 들린다. 점점 연못에 다가서니 뭔가의 기운이 느껴진다. 발자국 인기척의 미미한 울림에 수십의 생명체가 먼저 알아차려 물살을 가른다. 황금색, 붉은색 등 큼직한 비단잉어들이 먹이를 향한 반사적 질주를 하고 있다.


연못을 굽어보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하늘 반쪽을 차지했다.

수면에 드리워진 커다란 초록의 음영을 보노라면 심산유곡을 구현한 듯 비현실감을 느낀다.


연못 넘어 동선길을 벗어나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여울을 빠져나와 대해를 맞이하듯 시야가 확 트인다.

숲 속길을 벗어나 수천 평 푸르른 잔디벌판을 마주한다.

얼마 전 한 꼬마는 눈앞에 시원스레 펼쳐진 잔디구장을 마주 하는 순간 양팔을 높이 벌려 탄성을 질렀다. 야~아 !

아이의 순수한 표현은 그렇게 원초적인가 보다.


잔디구장을 병풍처럼 둘러싼 키 큰 나무들은 하늘을 닿을 듯 뻗어갔다. 여름엔 그늘을 드리우고 겨울엔 낙엽 되어 햇볕을 맞이한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꽃과 나무향기를 동시에 느끼고 즐길 수 있다.


철철마다 피는 꽃들이 다채롭다.

동산 철쭉군락마다 진홍색 영산홍과 분홍색 자산홍, 백철쭉, 산철쭉, 물철쭉, 아잘레아등이 피어나 꽃들의 향연은 정점을 찍는다. 초봄엔 개나리, 진달래, 백목련, 자목련, 매화, 벚꽃이 장관을 이루어 봄 동산을 현란케 한다.


여름엔 수국이 농염한 자태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계절이다. 그 풍성하고 화려한 꽃송이가 가히 압권이다. 큼직한 잎새와 꽃송이는 여분의 공간을 쉽게도 메워간다.


늦여름은 배롱나무꽃의 세상이다. 나무꽃이 귀한 이 쯤에 배롱꽃이 백여 일간 정원을 충실히 장식한다. 진홍색, 분홍색, 하얀색의 배롱나무는 기품 있는 자태로 찾는 이를 반긴다.


또한 곳곳에 제철이면 등장하는 꽃들이 있어 정원이 항상 새롭다.

때를 기다려 맘껏 단장한 얼굴을 빼꼼히 내밀 듯 수선화, 목단, 작약, 나리꽃, 원추리, 상사화, 꽃무릇, 불두화, 황매화, 목수국 등이 개화한다.


덩굴성 등나무꽃이 봄철에 수려하고 능소화와 인동꽃의 향기는 천상의 내음이다. 고목을 감싸고 올라앉아 얌전히 피운 인동꽃이 향기를 은은하게 뿜어낼 때면 길 가는 이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꽃의 여왕 장미는 물론, 커다란 나무수형의 동백꽃과 소동백 꽃인 고고한 산다화는 이른봄에 피어난다.


여기는 백만 송이 꽃들이 향연을 펼치는 동산, '백ㆍ화ㆍ원' ᆢ

언제 보아도 꽃이 있는 정원은 아릅답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장마철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