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 달고 쌉쓰름한 자영업 분투기28
리빙 아이템을 수입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내가 하는 대답은 딱 하나인데
수입 먼저 할 생각하지 말고 어디 취직해서 판매를 먼저 배워라.
작은 잡화점이든 큰 백화점이든. 판매를 목적으로 고객과 만나는 최전선에 서서 일하다 보면
고객이 원하는 것. 사람들이 찾는 것. 술술 잘 팔리는 것.
그런저런 경험들을 하게 된다.
어떤 아이템은 참 잘 나갈 것 같은데 의외로 잘 안 팔리는 물건들도 많고
어떤 것은 팔리긴 잘 팔리는데. 반품이 많거나 판매 후에 추후 관리와 배송이 어려워서 고객관리가 어려운 아이템. 등등. 생각지 않은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된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과정 중에 아... 이런 걸 수입해서 팔아보면 시장에 흔하지 않은 아이템 중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아이템이 이런 게 있겠구나.. 생각이 떠오른다.
아무리 오래 일을 해도 아무리 장사를 해도 이런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는 사람은 사실 스스로 아이템을 개척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판을 벌리기 전에 접는 것이 판이 커진 다음에 주워 담는 것보다 훨씬 쉽다.
큰애 친구한테도 길고 정성스러운 문자에 짧게 답하는 것이 참 미안했지만.
얘야. 아줌마가 생각하기에는 처음부터 수입해서 사업을 직접 하지는 말고. 어디 적당한 데서 1-2년이라도 경험을 쌓고 그다음에 수입업을 직접 뛰어들어도 좋겠구나...라고 답을 해주었다.
경험을 뛰어넘는 노하우는 없다.
점점 배가 불러오고 있었기 때문에 바인스 리빙 매장을 내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분당에서 가까우면서도 젊은 신혼부부가 많은 지역으로 매장을 알아봤다.
적당한 곳이 바로 나타났다. 굳이 메인 도로일 필요도 없고. 사람들 눈에 띌 필요도 없다.
필요한 사람은 다 찾아 오더 라라는 믿음도 있었지만 사실 다른 매장을 더 알아보고 어쩌고 할 시간이 없어서
쫓기듯이 계약을 했는데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쫓겨서 무슨 일을 저지르면 꼭 나중에 후회를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게 쫓기는 결정인지 잘하는 결정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 걸 미리 눈치챌 수 있다면 우리가 인생에서 실수를 왜 하겠는가.
웹 디자인을 할 줄 아는 여직원도 한 명과 매장에서 손님 응대를 담당해줄 조금 나이 어린 여직원도 한 명 더 고용했다.
프랜차이즈 계약을 한 가구 회사에서 초도 물건이 들어오고 바인스 리빙이라는 이름의 브랜드고 신규로 사업자를 냈다.
바인스 앤틱과 바인스 리빙. 두 브랜드를 하나의 포탈에 묶어서 보여줄 수 있도록 사이트도 개편을 했다.
가구들이 들어오고. 1층 메인 위치에 앞뒤가 훤히 보이는 매장이었기 때문에 디스플레이에도 신경을 쓰고 남들 보기에 이쁜 매장을 만들려고 나름 애를 많이 썼다.
1층 매장이라고는 하지만 큰길 대로변에서 한 칸 뒤로 물러 앉은 건물이었기 때문에 사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많이 유입이 되는 위치는 아니었다.
가구가 지나가다가 가구나 하나 살까? 하면서 사는 아이템이 아니니까.
여하튼 정신없이 오픈 준비를 하고 바인스 리빙 브랜드의 뚜껑을 열었다.
배는 불러왔고 뱃속의 아이도 덩달아 바쁘고 정신없었는지 입덧도 별로 없이 조용한 임신기간을 보냈다.
지금은 세상 똘똘이인 우리 셋째 아들인데 당시에는 얘가 이렇게 뱃속부터 고생을 해서 제대로 여문 아이는 나올라나.... 걱정을 무지했었다.
나오자마자 에구구구.... 뱃속에서 엄청 힘들었다고 한탄부터 하겠다고 혼자 생각하고 킥킥 웃곤 했다.
죽전이랑 원래 있던 신현리 앤틱 창고는 46번 국도를 타고 약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이 두 사이는 하루에도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참 바쁜 시간을 보냈다.
리빙에 있으면 앤틱에서 날 찾고 앤틱에서 장사하고 있으면 리빙에서 내가 필요하고.
아.. 이래서 사업장들을 하나로 모으는구나... 싶었다.
리빙에는 직원이 둘이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주로 앤틱 사업에 신경을 썼는데. 리빙 쪽에 인건비 지출이 늘다 보니 앤틱에는 아르바이트 인력도 쓰기가 어려웠다.
배송이나 정비 일이 항상 있는 것도 아니고 리빙 매장처럼 앤틱 창고를 굳이 하루 종일 오픈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사람 쓰기가 더욱 애매했다.
자연히 그냥 나 혼자 할랑할랑하지 뭐... 하게 되었는데 그 혼자 살살한다는 것이 말이 쉽지 그렇게 만만치가 않았다. 아무리 작아도 가구는 가구라 요기서 조기로 옮기는 것도 허리에 우지끈 힘이 들어갔다.
만삭의 임산부가 혼자 낑낑거릴 일이 애당초 아닌 데다가 당시 우리 창고 바닥을 어디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쓰고 버리는 중고 카펫을 구해다가 깔아 놓는 바람에 1센티도 밀어서 옮길 수는 없었다.
당시 내 주 판매루트는 온라인 쇼핑몰이었다.
상품을 하나하나 사진 촬영을 해서 쇼핑몰 사이트에 올리고 고객이 연락을 해오면 전화로 상담해서 판매를 했다. 앤틱을 처음 구매하는 고객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단골 고객들이라서 판매를 생각보다 수월했다 하지만 가구를 촬영 공간까지 일일이 옮기로 정비하고 이쁘게 꾸며서 찍는 것이 다 일일이 손이 가는 일이었다.
배 부르다고 일을 안 할 수가 없어서 매장에 어슬렁 거리고 어슬렁 거리다 보면 일이 눈에 보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부른 배에 가구를 지탱하며 또 옮기고 있었다.
배가 무슨 이동 거치대도 아니고 나도 모르게 자꾸 배에 기대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런 철없는 엄마를 봤나.
엄마 잘못 만나서 니가 고생이 많구나. 중얼거리면서 위험한 일을 계속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뭘 모르니까 용감하고 그래서 위험한 날들이었다.
한 번은 좁고 긴 가구를 혼자 2층에서 1층으로 내린다고 낑낑거리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서 가구랑 배불뚝이 내 몸이랑 떼굴떼굴 굴러버린 일도 있었다.
그 일을 당하고도 배가 괜찮은 것이 신기한 일이었다.
그저 건강한 몸과 건강한 아기르 주신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출산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도 그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했던 것 같다.
셋째의 탄생과 함께 나는 한 단계 더 화려한 카오스(혼돈)의 세계로 진입하게 될 줄 그때는 정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