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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인 Apr 14. 2020

앤틱을 누가 살까 16 -셋째가 생겼어요

벌써 20년!!!  달고 쌉싸래한 자영업분투기 27

2007년 여름 나는 셋째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계획에 없던 (또!!) 임신이지만  낳게 되면 첫째 둘째처럼 소중히 잘 키워야지...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초가을에 예정된 출장이 문제였다. 

우리 셋째가 2008년 1월 초 생이니까 그때가 거의 6-7개월에 들어서서 제법 배가 불룩할 무렵이었다.      

그전에도 해외를 많이 다녔고 특히 일하면서 지구를 몇 바퀴를 뱅뱅 돌고 또 돌았을 테고 이미 위로 아이 둘을 낳았지만 임신한 상태에서 비행을 시도한 적은 없었다.      

뭐 대단히 어려운 일도 아니고 태교여행이라고 다들 잘 다니니까 당연히 문제가 없을 줄 알고 영국행 비행기를 예약을 하고 출장 날을 기다렸다.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일이 꼬이려고 그랬는지 다른 일로 항공사와 통화를 하다가 무심코 제가 임신을 해서요...라고 말을 흘렸다. 

그런데 상대방에서 갑자기 펄쩍 뛰더니. 어머. 임신 상태이시면 비행이 안되십니다. 하고 잘라 말하는 게 아닌가.      


엥? 이게 무슨 말인가. 

아마 임신 몇 개월부터 몇 개월까지는 비행이 안되고 어쩌고... 그런 이야기도 들은 것 같긴 한데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줄 생각도 안 하고 이 상담원은 나한테 절대 비행기 못 태운다고 바득바득 그 얘기만 반복했다. 

황당했다.      

아니. 우리나라 수많은 여성들이 임신한 상태에서도 비행기 잘만 타더구먼. 

말하지 말고 그냥 펑퍼짐한 원피스 같은 거 입고 들어갈걸

도대체 왜 안된다고 하는 것인가.

황당하고 기가 막혔다. 


안 그래도 애기가 태어나면 당분간 출장은 어려울 것 같아서 이번에 가면 영국 앤틱 가구 시장을 아예 싹쓸이를 해와야지... 작심을 하고 있었는데 싹쓸이는 고사하고 내가 나가지도 못한다니. 어호... 상황이 심각했다.      

이 업종이 특이해서 남이 해다 준 물건은 어쩐 일인지 영업이 잘 안되었다. 

수많은 물건들 중에 나랑 취향과 코드가 맞는 아이들이 선택되어 내 컨테이너에 실리는데 그게 이쁘건 밉건 고급 이건 저급이건 판매자인 나와 궁합이 맞는 아이들인 것이다.  

손님들도 나랑 스타일이나 안목이 비슷한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나 말고 딴사람이 자기 취향껏 구매해온 물건은 내가 팔 수가 없다. 

그건 마치 나랑 입맛이 전혀 안 맞는 주방장을 데리고 음식 장사를 하는 거랑 비슷해서 사사껀껀 문제가 되던지 장사할 맛이 떨어지던지 여하튼 그렇게 골치 아픈 상황이 될 것이 눈에 뻔해서 섣부르게 누구 다른 사람한테 바잉을 맡길 수도 없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내가 못 간다는데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다들 나가는데 그 여자들은 부른 배를 숨기고 떠나는 것인가.

말하지 말걸. 괜히 일을 키웠다고 자책을 해보고 다른 비행기로 다시 예약을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이이 불러오기 시작한 배를 검색대 통과할 때마다 숨길 수도 없었다 

그렇게 찝찝한 상황에서는 출장을 갈 수가 없었다.      

근데 오히려 나중에 임신 9개월 무렵에는 아이들 다 데리고 출산 전 마지만 동남아 여행도 다녀왔으니 지금도 잘 이해가 안 되는 항공규정이다. 


아마도 항공사마다 다르던지 그런 이유가 있겠지만 이제 임신할 일 없으니 다 남의 일이 되었다.      

여하튼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는데

솔직히 당장 출장을 못 가는 것도 문제지만 

출산 이후에도 모유수유니 모니 한동안은 꼼짝 못 할 것이 분명했고 적어도 3개월에는 한 번씩 나가서 물건을 해와야 하는데 얼추 계산해도 앞으로 최소 1년은 출장이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건 심각한 문제였다.      

한번 가면 보름은 내가 없는데 당시 초등학교랑 유치원을 다니던 첫째 둘째도 안 그래도 엄마가 너무 바빠서 항상 맘이 쓰였는데 거기에 신생아까지 하나 태어나면 그나마 필리핀 이모님이 항상 상주를 하며 나를 돕고 있지만 애 셋을 알아서 커라... 하면서 밖으로 돌 자신이 없었다. 

엄마로서 그건 너무너무 미안한 일이었다.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는 듯했다. 

 

                                            (나중에 셋 다 데리고 떠났던 영국,벨기에 출장)



나는 항상 속으로 생각했던 계획을 조심스레 꺼냈다. 

매번 출장을 가야 하고 매번 새로운 물건을 마케팅해야 하는 앤틱 판매는 사실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드는 일이고 취미같이 일하기는 좋지만 사업적으로 키우기는 참 어려운 형태였다. 

그래. 일반 가구업을 하자.

특이한 앤틱 팔만큼 팔아 봤으니 미련 갖지 말고 정리하고. 

일반가구를 수입해서 팔아보자.   

   

제아무리 이쁘고 잘나도 상품이 딱 한 개씩 밖에 없는 오리지널 앤틱은 아무래도 마케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주인 만날 때까지 비싼 물건들 끌어안고 버티는 것도 지겹고. 

그래. 애들 핑계지만 이때가 타이밍이다. 앤틱 비즈니스를 벗어날 때다. 

생각은 오래 했지만 지금이 적기라는 판단이 서니까 오히려 행동이 가뿐해졌다.      

나는 결심했다. 

일반 가구를 수입해서 팔아봐야지.     

근데 마음을 다부지게 먹은 거에 비해서 내가 아는 게 너무 없었다. 

일반 가구를 파는 노하우가 내게 전혀 없었다. 

난감했다. 


시작을 영국 앤틱으로 하다 보니 영국 가서 앤틱 구해오는 어려운 기술은 자다가도 일어나서 해치울 수 있는데 

막상 중국산 인도네시아 산 이태리산 일반 가구는 어디서 구해서 어떻게 파나 난감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우리나라 가구 대리점을 하나 우선 택일해서 1-2년 운영을 해보고 

뱃속에 셋째가 아장아장 걸을 때쯤 되면 내가 나가서 수입도 하고 그렇게 가게를 키워나가면 될듯했다.      

그때 한창 인기 있던 스타일이 약간 화이트나 그레이톤으로 칠을 한 밝은 가구들이었는데 나는 대구에 본사를 둔 로**라는 가구 브랜드의  용인 수지지점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직접 수입을 해보기 전에 브랜드 대리점을 좀 하면서 시장 상황도 좀 배우고 나중에 어떤 아이템으로 수입하면 좋을지. 알아보고 싶었다. 

덮어 놓고 아무거나 수입했다가 재고로 쌓이면 골치 아프니까 남들은 어떤 것을 수입해서 어떻게 파나... 미리 경험해보려는 의도였다.    


작년인가 올해인가 큰 아이 학교 친구가 뜬금없이 나한테 연락을 해왔다. 

큰 아이가 미대 입시 준비를 할 때 같은 입시 준비반에서 엄마들끼리 애들 수발하면서 인사도 하고 같이 차도 마시고 한 사이라 그 딸래미하고 지나가며 인사하는 사이였기에 연락이 반갑기도 하고 뭔 긴한 얘기가 있어서 나한테 전화 씩이나 하나 무척 궁금했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장황한 인사로 시작한 장문의 문자는 요약하자면 앤틱 빈티지 사업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하면 좋은지. 어떻게 수입을 하는지 궁금하다는 내용이었다.      

수입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참 많이 받는다. 

나도 수입을 좀 해서 돈을 벌고 싶은데 어떤 나라 어느 시장을 가야 하느냐. 

어디 가서 뭘 수입하면 돈도 되고 겸사겸사 여행도 하기 좋으냐. 

우리나라에서 수입 통관을 도와주는 업체는 어디를 쓰느냐.    

이런 것들을 궁금해하는데 사실 수입통관 걱정까지 하는 사람은 이쪽 일을 좀 아는 사람이고 대부분은 어디서 뭘 수입해야 하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   


앤틱을 누가살까 17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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