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 쌉쓰름한 자영업 분투기 30
막내를 낳을 때 내 나이가 서른일곱이었다.
작지 않은 나이인 데다가 위로 두 아들이 있었고
바인스앤틱과 바인스 리빙 가지가 두 개나 되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그 와중에 셋째라니.. 상황은 심각했다.
그래서인지 막내 출산 비디오에서 아기가 배 밖으로 딱 튀어나와서 모두가 환호하고 환의의 절정인 그 순간.
간호사들이 나보다 더 흥분해서 아이를 얼르고 대충 닦아서 내 가슴 위로 올려놓으며
정신은 멀쩡한데 눈 뜰 기운도 없어서 헤롱 거리는 나를 흔들어 깨우며
아기 보시라고 막내 '또 아들'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장면에서 정작 감동의 주인공인 나는
막내 준이의 등을 통통 두드리며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 비슷하게 울어대는 장면이 녹화되어 있다.
사실 나는 그 순간 인생의 어떤 꼭짓점 끝에 위태롭게 얹혀 있다가
인생의 건너편 내리막으로 몸이 살짝 기우뚱하고 넘어가는 순간을 경험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숨 가쁘게 때로는 숨 막히게 인생의 사다리를 올라온 사람이 마주하는 마침내의 순간 이리라.
막내를 낳던 날 나는 그 숨 가쁨의 정점에서 내리막의 시작점을 마주했던 것 같다.
가슴 철렁할 것은 없다.
내리막이라고 서럽거나 우울하지는 않다.
모양이 다를 뿐.
그 후의 인생도 나는 기운차게 밝게 사는 중이고
1편과 약간 톤이 다른 2편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여튼 그렇게 힘겹게 막내를 출산하고
출산 중에 터진 치질은 그 후로 나를 일주일간 지옥의 고통을 맛보게 해 주었다.
아... 그 고통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출산 직후니까 병원에 가지도 못하고. 가봐야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평상시 같으면 응급으로 수술을 해야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나 뭐라나
나는 쌩으로 치질의 고통을 견디어 내야 했는데 약국까지 걸어갈 주제도 못되어서
남편이 처방전 없이 구할 수 있는 간단한 진통제를 사다 주어서 그걸 먹고 바르고 겨우겨우 시간을 때웠다
실로 아이 낳는 고통보다 열 배는 진한 고통의 시간이었다.
평소에는 인식조차 되지 않는 척추 끝의 그 잠잠한 부위
배설이라는 어려운 일을 감당하지만 인간에게 자주 외면당하는 고독한 기관
하지만 거기가 탈이 난 순간.
그 부위는 인간의 모든 감각을 지배했다.
거기가 그렇게 아플 수도 있다니.
그 이전에 나는 정말 몰랐다.
자율 근육인지 지랄 근육인지 그것들이 모여있는 기관답게
내가 따로 힘을 주지 않는데 숨만 쉬어도 거기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서 엄청나게 아팠다.
티브이 리모컨을 집으려고 팔을 뻗고 리모컨 버튼을 누르는 동작을 마무리하고 나면
눈물이 펑펑 나올 정도의 어마어마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건 대장정이었다.
하루가 3년처럼 길었다.
근데 그때 남편 폰으로 돌려놓은 전화로 매장의 전화가 계속 울렸다.
교환이나 기타 문의는 남편이 대충 둘러내거나 리빙 매장의 실장님에게 돌려받도록 지시를 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어느 전화 한 통은 느낌이 달랐다.
아 저거는 주문전화다.
바꿔달라고 했다.
약간 망설이던 남편이 비스듬히 누운 내 귀에 전화를 대주었다.
다행히 단골고객이다.
아... 사모님 안녕하셨어요? 고객이 놀라지 않게 최대한 맑고 밝은 목소리를 낸다.
엉덩이는 최대한 하늘로 치켜든 상태로 머리를 아래쪽으로 두고 엎드려 있는 모습 그대로 전화를 받았다. 엉덩이 쪽으로 피가 안 몰리게 하려면 이 자세 외에 뭐가 있겠는가.
이사장 목소리가 왜 그래? 감기 걸렸어?
아니에도. 어제 아기 낳아서 그래요.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호호..
놀라는 고객을 내가 먼저 진정시키고. 나는 가구에 대해 설명을 하고 흥정을 했다.
손님도 놀라고 황송해하면서도 내가 괜찮다는데 어쩌겠는가. 웃기다고 하시면서도 전화를 끊지는 않았다.
괜찮아요. 애기야 입으로 낳은 게 아니니까 설명을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어요.
아이고. 어떻게 해. 아기 낳은 사람이 장사를 하면 어째.. 어휴... 하여튼 이사장도 억척이야.
아니예요. 아기 낳았으니까 더 장사해야죠. 이제 셋이에요. 셋.
그러니까 사모님도 깍지 마시고 그냥 사세요. 호호..
(다이나믹하게 얻은 막내는 나의 제일 좋은 친구가 되었다. 2017년)
장사치 똥은 개도 안 물어간다고 했던가.
나는 장사꾼으로 살면서 아... 이래서 장사하는 사람 속이 새카맣구나.. 하고 느낀 적이 많았다.
그렇게 억척을 떠는 것을 '먹고 살기 위해' '더럽고 치사해서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생각하면 참 슬픈 세월이 될 것이다.
아이를 낳고도 그 핏 자리가 마르기도 전에 물건을 팔아야 하는 팔자를
내 스스로 슬프게 생각하자면 얼마나 기구한 일인가.
예전에 밭 갈던 엄마가 산기를 느껴서 엉금엉금 집으로 돌아와 후다닥 아기를 낳고
그 길로 남은 밭매러 다시 나갔다던 괴기스러운 전설은
의학적으로 참으로 미련하고 안타까운 여성 잔혹사 그 자체이다.
하지만 자기가 좋다는데 어쩌겠는가. 좋아서 하는 사람 말리지 마라. 그 사람한테는 그게 더 힘들다.
모든 고생은 누가 시키면 슬픈 억압이 되고 내가 스스로 하면 용감한 도전이 될터.
나는 여하튼 그런 생각으로 살았던 것 같다.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오히려 숨차 했고. 나는 멀쩡했다.
장사의 흥망성쇠를 지나다 보면 이렇게 도드라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때는 모른다. 지나고 나서 어느 날 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모래밭에 반지처럼 눈에 딱 띈다.
돌아보니 그때가 나의 보석반지 시절이었다.
(앤틱을 누가 살까 20- 둘과 셋의 차이. 편이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