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둡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다. -소포클레스
10년 뒤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어슴푸레한 모습은 상상이 되지만 '과연 그렇게 될까?' 생각해 보면 바라는 대로 될 가능성이 희박할 것으로 느껴진다.
내년에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10년 뒤보다는 조금 더 명확하게 1년 뒤의 내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가족 구성원, 거주 환경, 경제적 여건, 계절의 변화, 올해와는 뭐가 달라도 다를 것 같은 내 모습을 10년 뒤보다는 명확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럼 내일은?
당장 오늘 저녁은?
먼 곳에 잡히지도, 그려지지도 않는 나를 쳐다보느라 정작 살아내야 하는 '오늘'을 무의식적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숨이 쉬어지니까 쉬고, 배가 고프니까 먹고, 굳은살처럼 박혀버린 책임져야 하는 것들을 위해 마치 전원이 들어오면 톱니바퀴가 물려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기계처럼.
그나마 입력한 값대로, 톱니바퀴의 크기대로 돌아가는 기계처럼 살아내면 다행이다.
입력값과는 다르게 행하고 맞물려야 하는 톱니바퀴보다 작은 틈에 또는 큰 틀에 맞춰 보려는 생각과 행동은 어제와 같거나 그도 못한 '하루'라는 결과를 내어 놓는다.
매일은 모르고 지나갈 수 있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을 살아냈을 때.
지금보다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막연하게 품고 있다면 그때마다 역풍을 맞는다.
미련, 아쉬움, 후회, 좌절, 비하 등의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에게 말이다.
그저 살아지니까 살아낸 수많은 어제의 기억은 없다.
내가 뭘 했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지는,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고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왔는지에 대한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지난날 중에 하나였을 뿐이니까 말이다.
'오늘'을 잘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욕심내지 말자.
욕심을 부리면 그 하나 때문에 '만족'하지 못한다.
실행하자.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것. 미루고 미뤄도 결국 '내가' 해야 한다. 외면하면 더 늘어날 뿐이다.
하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것. 하나라도, 1분이라도 '생각'말고 움직이자.
'하나라도' 스스로 칭찬하자.
누군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실망 말고, 칭찬해주지 않는다고 시무룩하지도 말자.
타인에겐 '그깟 거'라고 치부될 수 있어도 안 하던 것을 해낸 것에 대해 자화자찬하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사랑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먼 곳을 바라고 비추느라 정작 그 밑에는 어둠이 깔리는 등잔 밑.
어둠에서 시작하는 오늘이지만 잘 살아낸 하루는 좁고 답답하고 어두운 등잔 밑에서 넓게 비추고 밝게 보이는 빛에 나를 비추는 날은 맞이하게 할 것이다.
오늘, 잘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