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
고모가 달걀 두 판을 보냈다. 반숙란으로...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다. 어머니나 나는 구운 계란은 먹어도 반숙란은 안 먹는다. 계란 프라이도 노른자를 익혀야 먹을 수 있다. 다음 주 이맘때 이사 가는데 이 반숙란을 냉장고 어디 두며, 누가 먹냐고... 큰 웍을 꺼내 더 삶았다. 소금이랑 식초 더 넣고.... 처음부터 내가 삶은 게 아니라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단계에서 하나를 꺼내 껍질을 벗겨보는데 찬물에 담가도 잘 안 벗겨진다. 그래도 속은 익었길래 건져서 달걀 60알을 다 깠다. 음식장사 하는 사람도 아니고 이게 왠...
달걀 장조림을 만들어 동생네 주고 우리도 먹자. 간장 설탕 올리고당은 집에 있는데 청양고추랑 마늘이 없어 집 앞 슈퍼에 가니 할인상품 마늘과 청양고추를 마침 판다. 간장에 물 붓고 설탕 올리고당을 넣어 끓이다가 달걀 60개 청양고추 한 줌 마늘 한 줌을 넣어 색이 변할 때까지 끓였다. 지켜보고 서 있다가 저어서 달걀 위치를 바꿔 줬다. 다리가 천근 만근이다.
간장물이 졸아들고 달걀에 색이 고루 입혀져 불을 껐다. 달걀장조림 넣어둘 통을 찾으니 없다.ㅠㅠ 허접한 플라스틱 통을 버렸더니 이게 왠... 어찌어찌 넣었는데 열 알이 남는다. 조카가 유치원 다닐 때 내게 생일 선물로 사준 시리얼 그릇에 열 알을 챙겨 냉장고에 넣어두는데 신경질이 확 난다.
반숙이 뭐가 더 좋은지는 모르나 집의식구들이 안 좋아할 수도 있잖아. 우리 아버지도 달걀 즐기지 않는다고... 껍질 까느라 손 아프고 양념장 재료 사느라 계획 없던 돈 쓰고 오래 서있었더니 내 몸이 비명을 지른다. 빨리 치우려고 다된 장조림을 냉장고 넣어두는데 어머니가 안 식은걸 그냥 넣는다고 뭐라 하시기에 또 버럭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내가 설거지하는 소리가 크다고 티브이 소리 안 들린다고 야단이시고 잠자는 시간 외엔 하루 종일 티브이만 보시는데 그깟 옛날 드라마 그리고 같은 스크립트 반복하는 뉴스 좀 못 보면 어때서...
이래 저래 짜증 가득이다. 그래도 장조림은 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