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자유?

안락사를 위한 여행

by 아이린

친구 아버지가 여러 해 전에 돌아가셨다. 병으로 앓다 돌아가신 것도 아니다. 그분이 택한 죽음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가족들에게 상처로 남아 있다. 특히 배우자 되는 친구 어머니는 남편의 죽음을 경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성격이 바뀌었다는 것이 아니다. 잘 웃고 생기가 넘치며 건강한 편이셨는데 , 온갖 신경성 질환을 앓더니 지금은 골절로 휠체어 신세를 지신다. 그 가족은 가톨릭 신자다. 원칙대로라면 가톨릭 묘지에 매장될 수 없는 분이지만 , 사망 전의 상태를 질병으로 봐주신 덕인지 장례 미사도 드리고 묻힐 수 있었다. 아저씨의 마지막을 예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평상시 비판 적인 성향이 좀 있는 것은 알았지만, 개인택시 운전하시는 분이 무슨... 가족들의 거부로 아저씨 매장 과정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일은 막았다.


뉴스에 스위스행 안락사를 위해 떠난 이를 경찰이 비행기를 세우면서 까지 막았다는 기사에 맘대로 죽지도 못하냐는 비난 댓글이 달린 것을 보았다. 죽을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화제의 비행기에 탄 사람은 60대 남성으로 폐 섬유종 진단을 받았단다. 치료 법도 없고 고통을 겪다가 세상을 떠나는 병인 것은 알고 있다. 그에게 그래도 열심히 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을 위해 떠나는 과정에서 남은 가족에게 이별의 예의를 지킬 순 없었을까?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가족과도 제대로 이별한 후 떠나지도 못할 만큼 힘들었을까? 만약 그 지경이면 혼자 비행기 못 탄다. 산소호흡기 없이 비행기를 타고 긴 여정을 혼자 간다고? 혼자 비행기 탈 수 있을 때 떠나려고 했나?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그 집의 사정은 모른다. 하지만 기사 밑의 폭력적인 댓글을 보고 , 이건 아닌데 싶어서 적는다. 오랫동안 동물 운동을 했고 , 내가 키우던 아이나 단체 아이들을 안락사시키기도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고 아직도 내가 보낸 아이들이 생각난다. 정말 최선이었나 몇 번씩 묻는다. 그러나 더 이상 삶을 연장시킴이 고통을 주는 것이 분명해서 아이들을 보냈다. 그 문제로 단체를 탈퇴한 이들 나와 관계를 끊은 이들도 좀 된다. 백정이라나.. 안락사 문제 늘 고민을 주는 이슈다.


삶에의 소망이 완전히 끊어졌고 연장이 고통뿐임이 분명할 때는 떠남을 결정할 수는 있다. 그리고 떠나게 해줘야 한다. 그러나 최소한 주변 정리는 제대로 하는 것이 남는 이에 대한 예의 아닐지.. 과거 개그 우먼의 모친과의 동반자살 또 더 전에는 루프스 병으로 고통받던 당시 여성운동가? ( 그녀를 뭐라 정의해야 하나)가 남편과 동반해서 삶을 버린 것 등등을 볼 때 과연 그들이 남은 사람들과 제대로 인사는 하고 떠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씁쓸했었다.


나 역시 몸이 많이 안 좋다. 아마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상태와 싸워야 할 거다. 과거 나와 같은 상태의 산소호흡기로 연명하게 된 딸의 산소호흡기를 떼버린 아버지 사건이 있었다. 고통받는 딸의 모습을 견디기 힘들었다는 아버지를 그 아내가 고발했다. 나는 과거 동일한 상태로 점점 숨 쉬고 움직이는 일도 힘들어질 거라 진단받았다. 내 나이 서른이 조금 넘어서 일이다.. 기적처럼 상태가 멈춰 이십 년 넘게 약간 불편한 상태로 살았다. 지금 다시 재발했지만, 다행히 아주 속도가 느리다. 조금씩 조금씩 힘들어지는 일이 늘고 있다. 오늘 지팡이를 사고 싶다고 어머니에게 말했다가 혼이 났다. 아직은 붙잡을 것만 있으면 일어나고 약간 비틀거리고 절지만 걷는다. 손은 글쎄 끈에 매달려 움직이는 인형이 된 듯 뻣뻣하지만 사용할 수 있다.


가끔 겁이 난다. 과거에 엄마 아버지보다 하루라도 먼저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가 호되게 혼나고 정신을 차린일이 있다. 지금보다 더 나빠져서 산소호흡기 신세를 지는 날이 올 때를 위해 연명치료 거부 신청은 해뒀다. 장기야 쓸만한 데가 없을 것 같아 시신 기증만 신청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기독교인이기에 열심히 살기로 했다. 그것이 크리스천의 본분 이어서다.


인사를 하고 정리하고 떠날 사람이 없는 나도 떠날 준비를 한다. 그 60대 남자분도 정리를 하고 정말 더 견디기 힘들 때 조력을 받아 마지막 여행을 떠나기 바란다. 고통을 겪으면서도 삶의 소망을 놓지 않는 분들이 많다. 그들도 끝이 멀지 않음을 모를까? 미련하게 삶에 집착한다고 생각하나? 어떤 아이가 이제 그만 아파도 되냐고 엄마에게 묻고 투병을 끝냈다는 이야기를 읽은 일 있다. 나 역시 의사 진단보다 질기게 10년을 더 열심히 살아낸 반려견이 마지막에 의식이 오락가락할 때 그만 아파도 된다 수고했다고 말하며 보냈다. 누구나 죽는다 조금 먼저 가느냐 아니냐 차이다. 살고 싶어도 떠날 때가 되면 가야 한다. 정리를 해두고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너무 힘들 때 주변인에게 그만 아프고 싶다 도와달라고 말하면 안 될까? 이것도 이기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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