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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Mar 07. 2024

초빼이의 노포일기[서울 남대문시장 닭진미(구. 강원집)

62년 노포의 '닭곰탕'에 대한 52살 초빼이의 욕망 보고서

지난달 갈치조림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 남대문 시장 갈치골목을 찾을 때였다. 지하철 역을 나오자마자 시작된 기라성 같은 노포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겨우 도착한 갈치조림 골목. 가늘고 긴 미로처럼 이어져 있던 골목 입구의 식당 하나 때문에 갈치조림을 거의 포기할 뻔했다. 오래된 절집의 입구에 있는 거대한 사천왕상보다 더 무서운 집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갈치조림 골목은 두 개의 작은 골목으로 나뉜다. 회현역 쪽에서 걸어오면 갈치골목이라는 간판이 붙은 작은 골목 두 개를 볼 수 있는데 그 입구에 오늘 소개할 집이 있다. 주황색 바탕 위로 '닭곰탕'이라 붉은색 글씨로  적어놓고 바로 아래에 '닭진미(구. 강원집)'이라 상호를 적어놓은 간판에서 이미 눈길을 붙잡는 데 성공. 자연스레 시선은 아래로 떨어지며 오래된 창틈을 사이로 식당 안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양은냄비 하나와 푸짐하게 닭고기를 올린 하얀 접시 하나. 그리고 소주 한 병. '대낮부터 닭고기에 소주라니?' 초빼이가 아니더라도 자연스레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몇 주가 흘러도 그 닭곰탕 집에서 어르신 한 분이 손에 들고 있던 그 '노란 닭다리'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섣부른 욕심이 아니라 심도 깊은 탐욕에 가까웠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인 조셉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속(Heart of Darknes)'에서 쿠르츠(Kurtz)가 드러내는 상아에 대한 탐욕보다 더 농도 짙은, 끈적끈적한 탐욕이었다. 결국 다시 서울로 향하는 1호선 전철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 모두를 움츠리게 만들었던 늦겨울의 추위가 숨 고르기에 들어간, 조금 따뜻한 날이었다. 


이 집을 처음 눈에 담은 후 이미 3주가 흘렀다. 다행히 갈치조림 집을 찾을 때보다 유혹을 견디는 게 훨씬 더 수월하다. 첫 번째 골목으로 난 문을 잡아당기니 문이 닫혀 있다. '어 왜 잠겨져 있지?'라는 생각에 가게 안을 보니 반대편 입구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서둘러 몸을 돌려 두 번째 골목으로 향했다. 가게 안에 줄을 선 사람들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가게 밖에서도 대여섯 명의 손님들이 추위를 견디며 대기하고 있었다. 



부러 점심시간을 약간 넘긴 1시 30분쯤 찾았지만 아직도 대기줄엔 5팀 정도가 남아 있었다. 매장 간판 사진을 찍느라 3~4분 정도 주위를 돌았더니 2팀이 더 늘어난 상태. 혼자 오신 어르신부터 30대 커플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그만큼 이 집 음식이 다양한 연령층도 즐길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고, 음식도 나쁘지 않다는 의미이기에 안심할 수 있었다. 다행히 식사만 하고 가시는 분들로 인해 금세 자리에 앉았다. 2명 이상 오신 분들은 2층으로, 혼자 찾아간 초빼이는 이 집의 '룰'에 따라 혼자 오신 분과 합석하기 위해 1층으로 안내받았다. 


사장님께 '닭곰탕'과 '고기백반'의 차이를 여쭤보니 고기백반은 접시에 닭고기를 따로 담아서 내는 것이라 하신다. 그런 차이라면 고기 백반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소화제'도 한 병 주문했다. 금세 빈접시 두 개와 양념장 그리고 고추장과 생마늘이 담긴 조그만 접시가 눈 앞에 놓였다. 이미 식사를 하고 있던 앞자리 청년에게 양해의 눈인사를 나누며 초빼이 쪽으로 그릇들을 당겨 정리한다. 테이블 위의 깍두기와 김치통에서 찬을 덜어 접시를 채우고 깍두기 한 조각 입에 넣는다. 약간 국물이 많은 깔끔한 깍두기가 입에 착 감긴다. 


냉큼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는다. 

이 맛이다. 오십 대 중반 남자의 여유로움을 한 씬으로 보여줘야 한다면 아마도 이런 노포에서 여유롭게 혼자 점심을 즐기며 소주 한 잔 마시는 그런 모습으로 묘사할 수 있을게다. 금세 고기 백반이 나왔다. 음식이 테이블에 놓이자마자 다시 소주 한 잔을 마셨다. 이런 멋진 음식을 앞에 두니 솟아오르는 술욕심을 좀처럼 진정시킬 수 없다. 오랜만에 느끼는 초빼이의 본능이랄까? 거칠게 폭주하고 싶은 본능을 겨우 다독인다. 

   


소금 간을 한 후, 한 두 수저 국물을 떠먹다가 결국 냄비째 들고 마신다. 잘 고아낸 닭육수가 온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 같다. 절제된 기름기와 진한 닭의 체취가 닭곰탕 국물에 그대로 녹아있다. 잘게 썬 파의 향이 증폭기 역할을 하며 닭곰탕 국물의 감칠맛을 극대화시킨다. 온몸의 미세혈관까지 닭육수가 퍼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자 그제야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닭다리와 가슴살 두어 점을 집어 닭곰탕에 넣는다. 수프(Soup)의 어원 중 하나인 라틴어 수파(Suppa)는 '액체에 적신 빵'이라는 의미까지 들어 있으니 초빼이도 그 어원에 충실해 본다. 


오래전 기사를 검색해 보니 닭진미집은 1년 정도 키운 노계를 사용하여 음식을 만든다고 한다. 닭곰탕의 국물이 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도 '노계'를 사용한 것이리라. 우리가 비교적 자주 접하는 삼계탕집이나 치킨집에서 쓰는 닭은 2~30일 정도 키운 닭(연계, )이라 이런 육수가 나올 수 없다. 심지어 닭다리의 크기도 치킨집 닭다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항상 퍽퍽하다고 생각했던 가슴살도 식감과 맛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대신 이런 농도의 국물을 내고 노계의 질긴 살도 부드럽게 먹기 위해서는 오래 삶아야 한다.  


닭진미집 고기 백반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닭껍질'이다. 노란색이라 부르기엔 조금 어색한 감이 있는, 누런 닭껍질에 이제껏 경험해 본 적 없는 풍미가 담겨있다. 노계의 껍질이라 굉장히 질기고 기름기 가득할 것 같은 외향이지만 입에 넣는 순간 쫄깃함의 극에 다른 식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고소하다. 특히 닭곰탕 국물에 살짝 적셔 먹으면 촉촉한 식감마저 함께 느낄 수 있다. 초빼이는 미끈거리는 식감 때문에 닭껍질을 즐기지 않는 편이었지만 결국 이곳에서 닭껍질의 신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고기로 내주는 닭은 반마리가 조금 안 되는 정도의 양인 것 같다. 날개 부분과 닭다리 하나, 그리고 닭 가슴살 등을 볼 때 딱 그 정도의 양으로 보인다. 닭껍질은 천천히 먹기 위해 옆으로 제쳐두고 큼직한 가슴살에 소스를 묻혀 김치 한 조각과 함께 입에 넣는다. 탄탄한 식감의 살결이 입안에서 구르는 느낌이 좋다. 게다가 어린 닭이 아닌 다 자란 닭의 가슴살이니 그 볼륨감 또한 풍성하다. 그동안 우린 어떤 닭을 먹어왔는가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양은냄비의 국물에 밥을 말았다. 밥 한 공기가 외딴섬처럼 양은냄비 속에 둥둥 떠 있다. 밥을 풀어 전분을 녹이고 한술 뜨니 세상 이런 행복이 없다. 닭곰탕에 만 밥이 활짝 풀어지면 김치 한 조각, 깍두기 한 조각 그리고 채 썬 파까지 모두 자신만의 색상을 피운다. 어느새 앞자리엔 나이 많은 어르신이 자리를 했다. 그분은 고기백반을 주문하시더니 고기를 모두 냄비에 넣고 밥을 말으셨다. 그리고 양념장을 한 두 수저 첨가하여 간을 맞추신다. 모두가 자신만의 길이 있는 법. 그 끝은 항상 포만감과 행복감으로 향해 있을게 분명하다. '만류귀종(萬流歸宗)'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각자의 먹는 법은 달라도 그 끝이 지향하는 곳은 같으리라. 


애매하게 남은 밥과 닭고기, 그리고 술에 잠깐 고민을 한다. 술을 추가하기엔 음식의 양이 너무 적고 그렇다고 닭고기나 통닭을 추가하기엔 음식의 양이 너무 많을 것 같은 느낌. 순간 뒤편 어느 자리에서 "닭껍질 하나 주세요"라는 말이 들렸다. '닭껍질?' 순간 올려다본 메뉴판에선 찾을 수 없는 메뉴였다. '아! 메뉴에 없는 단골들만의 무언가가 있구나'싶은 생각에 손을 높이 들며(왜 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국민학생도 아니고) 다급하게 "사장님 저도 닭껍질 하나요"라 외쳤다. 순간 안타까운듯한 사장님의 눈길. 주방에 물어보고 다시 확인하시더니 "닭껍질이 다 떨어졌어요"라고 하신다. 사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단호한 듯 안쓰러운 눈길은 초빼이의 애원하는 눈길과 어긋나 있었다. 


'오늘의 호사는 여기까지 인가 보다'라는 생각에 '급' 우울해졌다. 마지막 남은 술을 소주잔에 부어 아쉬움을 달랬다. 저녁 무렵 다른 중요한 약속이 있는 것에서 애써 위안을 찾으려 했다. 서둘러 양은 냄비를 비우고 아껴둔 닭껍질 하나를 소중하게 씹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음식 맛에 몸과 마음이 편했다. 그리곤 '다음에 올 땐 꼭 닭껍질을 먼저 시키겠다'라고 혼자 되뇐다. 계산을 하는데 사장님의 말씀에 한 번 더 가슴에 상처를 입었다. "아이고 어쩌죠? 바로 전에 주문하신 분까지가 마지막이었는데. 닭껍질을 못 드시고 가시네요." "다음에 다시 와서 먹으면 되죠"라며 대인배처럼 덤덤히 대답했지만 속은 쓰리다. 


닭진미집의 식사와 반주에서 '오십 대 남자의 여유로움'을 보여주려다 닭껍질 한 접시에 숨어있던 '쪼잔함'까지 들켜 버렸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살던 대로 살아야 하는 것 같다. 어울리지도 않는 여유로움보다는 맛있는 닭껍질 한 접시에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이 더 소중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다른 이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조금은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세상의 닭껍질이 모두 없어지기 전까지.  




[추가 팁]

1. 주차장은 별도로 없다. 남대문 시장 인근의 공영 및 민영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지하철 4호선(회현역 5번 출구)이 가장 접근하기 편한 대중교통이다.

2. 월~토 07:00~21:00 / 일요일 정기 휴무

3. 참고

   - 식사시간을 조금 지나 방문하는 것이 좋다. 식사시간에는 대기줄이 길다.(평일도 대기줄 있음)

   - 단골들만을 위한 비밀의 메뉴 '닭껍질'은 반드시 먹어봐야 한다. 일찍 소진될 수 있다. 

4. 여행 및 관광정보

   - 인근 노포 : 희락갈치, 중앙갈치식당, 은호식당, 막내횟집, 진주집, 장영숙 토종순대국밥, 부원면옥, 

     가메골손왕만두, 한순자 손칼국수집 등

   - 남대문(숭례문)이 인근에 있다. 

   - 서울로 7017은 봄과 가을에 걷기 좋다. 회현역 5번 출구 바로 앞에 시작점이 있다.

   - 남대문 시장 관광도 좋다. 특히 초빼이는 수입품 상가와 안경 상가를 찾는 것을 즐기는 편. 

     웬만한 안경테는 거의 다 구할 수 있고, 수리도 가능하다.

   - 인근 명동으로 가기도 쉽고 시청 쪽으로 방향을 잡고 산책도 좋다. 한국은행 본점과 신세계 백화점 본점 

     등 일제 강점기 시절 세워진 건물들을 볼 수 있다. 서울의 오래된 거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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