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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판 스테이크 원조, 미소노 고베본점(みその神戸本店)

179. 효고현 고베시 추오구 미소노 고베본점(みその神戸本店)

by 초빼이

사족(蛇足)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하지만 일본은 더 이상 먼 나라가 아닙니다. 한해 일본을 찾는 우리나라 관광객의 숫자만 1천만 명을 넘을 정도로 일본은 우리에게 친숙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 국민 5명 중 1명은 이미 일본을 경험했다는 통계 결과처럼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일본 여행 트렌드를 보고 있자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듭니다. 수박 겉핥기식의 유명 관광지만 찾거나, 단체 여행객들의 TV맛집 순례, 그리고 SNS에 올릴 사진 몇 장을 위한 핫스폿만 찾는 내용으로 가득 찬 모습에 아쉬움만 한 가득입니다. 조금 더 재미있고 유익하면서도 나만을 위한 여행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그게 쉽지가 않나 봅니다. (나이 든 꼰대의 설레발일지도 모릅니다)


초빼이의 여행은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의 노포를 찾아다니며 우리의 노포와 지역의 이야기를 기록해 왔던 길이었습니다. 늘 새로운 음식을 찾아다니고 숨겨진 노포를 만나고 그들의 음식을 맛보는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누군가 정의했던 미식의 의미와 많이 흡사했습니다. '진정한 미식'은 '많은 대화를 나무며 식사를 하고,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위해 음식과 식재료에 호기심을 가지며, 새로운 음식과 식재료를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고 했다죠. 역으로 말하자면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들(Nomadic Gastronomy 또는 Gastronomy Nomad)이 진정한 미식가"라는 의미이기도 할 것입니다.


수 십 번의 일본 여행으로 흥미를 잃으신 분들, 제대로 된 일본의 음식을 맛보고 싶은 분들, 일본 각 지역의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 그리고 원래 미식 여행을 즐기시는 분들을 위해 재미있는 기록을 남기고 싶어 졌습니다. 그 목적지로 삼기에 일본은 너무나 매력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일본은 노포(시니세)의 천국입니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100년 이상의 노포 중 40%가 일본에 있으며, 세계 최장수 기업 10개 중 9개가 일본의 기업입니다. 심지어 1,000년 이상 운영된 노포 중 21개가 일본에 자리하고 있죠. 노포를 좋아하고 노포의 이야기 기록하는 초빼이의 입장에서 일본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숙명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일본의 노포를 찾아 그들과 그들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 재미있는 미식 여행의 기록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한국관광공사의 통계를 참조하여 초빼이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일본의 5곳'을 선정했고, 해당 지역의 노포를 찾아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25년 2월 '오키나와'를 시작으로, 4월 '간사이 지방과 나고야'를 들러 9월엔 '홋카이도'를 찾았습니다. 이 글을 쓰는 10월과 11월에는 규슈와 도쿄 및 간토 지방으로 취재를 떠날 예정입니다.


음식은 지역의 역사와 서사,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역사책'과 같습니다.

한 그릇의 음식에, 그 음식의 식재료에 지역의 역사와 풍습, 기후 그리고 그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음식을 오랫동안 만들어 온 노포에는 그 음식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줄 노포의 주인장이 있습니다. 노포 주인장의 손 끝에서 지역의 이야기와 역사는 실타래 풀리듯 슬슬 피어납니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 소재인가요?


초빼이의 일본 노포 기행은 관광 안내서의 맛집 소개보다는 노포와 음식에 대한 기록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려고 합니다. 각 지역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 틀에서 식재료를 바라보고, 음식과 노포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각 지역의 향토 음식은 어떤 것이 있고, 이 지역에서는 어떤 음식을 먹어봐야 하며, 이 음식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왜 만들어졌는지를 이야기로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브런치 초빼이의 노포일기 155회~168회에서는 이미 오키나와의 음식과 그들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간사이 지방과 나고야(중부지방)의 음식과 노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야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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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땅'에서 '아시아 최고의 정착지'로 격하된 개항장, 고베(神戸)


'개항장(開港場)'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에 국한된 것으로, 19세기 서구 열강의 확장기에 불평등 조약을 통해 개방된 항구를 의미한다. 일본과 중국은 우리보다 빨리 미국과 영국, 러시아 등 서양의 열강에 의해 개방되었고, 흥선 대원군에 의해 강력한 쇄국정책을 고수하던 우리나라는 오히려 일본과 청국에 의해 개항을 하게 된다. 1876년 '조일수교조규'(강화도조약)를 통해 부산, 인천, 원산의 3개 항구가 첫 개항장이 되었고, 이후 목포, 진남포, 군산, 마산, 성진, 용암포 등이 추가되었다.


일본의 개항은 미국의 페리제독이 '흑선(검은색 증기선)'을 앞세워 수교를 요구하며 1853년과 1854년 2회에 걸쳐 무력시위를 펼치며 막부를 위협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일본의 막부는 이에 굴복, 1858년 미국, 영국, 네덜란드, 러시아, 프랑스 5개 나라와 각각 조약을 체결하고 일본을 개방하게 되는데, 이를 '안세이 조약(安政五カ国条約)'라 한다. 일본 막부는 나가사키(長崎), 니가타(新潟), 하코다테(函館), 요코하마(横浜), 효고(고베, 神戸)등 5개 항을 개방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일본은 '막부시대'의 막을 내리고 '메이지 유신(1868년)'을 맞게 되기도 했다.


고베(神戸)는 고대에는 칸베(神戸, かんべ)로 부르던 땅이었다. 칸베(神戸, かんべ)라는 말은 고대 일본에서 '신의 문(神の戸)' 또는 '신사에 봉사하며 그 신사에 제물을 바치는 사람과 그들의 토지'를 뜻하는 행정단위였다. 일본의 고대 역사(신화) 속 여왕, 신공왕후(神功皇后)가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이쿠타 신사(生田神社)'가 있는 땅이다. 오랫동안 '칸베'라고 부르던 것이 시간이 흐르며 에도시대에 '고베'로 명칭이 변했고, 이것이 오늘날 고베시의 지명으로 굳어졌다.


고베(神戸)는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해와 같은 1868년 1월 1일, 해외 열강에 공식적으로 개방되었다. 이때부터 외국인을 위한 거류지가 생겨나고 다양한 서양의 문물이 고베를 통해 흘러 들어왔다. 고베는 외국인들을 위한 계획도시형 거류지가 조성되면서 "아시아 최고 수준의 계획 정착지"로 알려지는데, 외국인들이 몰려들며 다양한 서양의 문물도 함께 유입된다. 럭비와 같은 서양의 스포츠와 서양식 건축, 상업 은행, 우유와 빵 등의 서양 문물이 급속도로 확산된 것이 바로 이 시기다. 당시 외교관과 상인, 선교사들의 주택이 들어섰던 곳은 현재까지 '이진칸(北野異人館)'이라는 이름의 문화지구로 보존되고 있으며, 중국계 상인들이 진출한 '난킨마치(南京町, 차이나타운, 일본 3대 차이나타운 중 하나)'도 비슷한 시기에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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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 시장 전경 / 효고현 현립 미술관(안도 타다오)

덴무천황의 '육식 금지령'과 개항으로 인한 식생활의 변화


庚寅. 詔諸國曰. 自今以後. 制諸漁獵者. 莫造檻穽及施機槍等之類. 亦四月朔以後. 九月卅日以前. 莫置比滿沙伎理梁. 且莫食牛馬犬猿鷄之完. 以外不在禁例. 若有犯者罪之.(일본서기 권 29, 덴무 4년(675년))
경인(17일)에 제국(諸國)에 조를 내려 “금후 각종 어업, 수렵에 종사하는 자에게 금하노니 올무를 놓거나 함정을 파는 일, 기계를 이용한 창 놓기 등의 행위를 하지 말라. 또 4월 1일부터 9월 30일 이전까지 어린 고기를 잡는 것을 하지 마라. 또 소, 말, 개, 원숭이, 닭의 고기를 먹는 것을 삼가라. 이 이외에는 금례에 들지 않는다. 만약 이를 어기는 일이 있으면 벌을 내린다.”(출처 : 나무위키)

일본의 식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중요한 정책을 꼽으라면 675년 톈무 천황이 발표한 '육식금지령(肉食禁止令, にくしょくきんしれい)이다. 1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차례 육식 금지령과 도살 금지령이 발표되었고, 이로 인해 일본의 음식 문화는 동물성 단백질의 획득을 위해 '어패류'와 '가금류'를 위주로 발전하는 기형적인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모든 동물들을 잡지 못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일부 귀족계층에서는 편법이나 '의도된 오역'을 통해 몰래 육식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약(藥)'이라 주장하며 육식을 하기도 했고, '오리의 경우 [물갈퀴]가 달렸기 때문에 '고기'로 보지 않는다'는 등의 '의도된 오역'을 통해 육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육식 금지령'이 오랜 시간 무거운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다양한 육류요리가 발달하지 못한 것도 이의 영향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육식 금지령'은 덴무천황이 발표하고 1,200여 년이 흐른 메이지 천황 시대(1872년)에 이르러서야 해제되었다. 물론 이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육식 금지령'을 해제한 메이지 천황에 대한 수 차례의 암살 시도가 있었을 정도로 일본 국민들의 저항도 대단했다. 하지만 그 저항도 거센 시대의 흐름은 피할 수 없었다. 개항장에서 거주하기 시작한 서양인들의 육식 위주의 식생활은 일본의 음식 문화에 급속도로 스며들었고, 메이지 정부 또한 체구가 왜소한 일본인들의 신체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육식을 권장하는 정책을 펴며 변화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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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킨마치 로쇼키(부타만 원조) / 호코도 커피 본점(일본 최고(最古)의 커피점) / 니시무라 커피 본점

흥미로운 것은 고베(神戸)에서는 육식금지령이 해제되기 전부터(불과 몇 년 차이지만) 서양의 식생활이 일본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개항장의 역할이기도 했다.


서양인들의 빵과 디저트 그리고 카페 문화는 고베 사람들의 식생활에 빠르게 스며들며 빵, 우유, 양식 등의 소비를 촉진시켰다. 이런 변화를 수용하며 탄생한 것이 고베에 본점이 있는 프랑스 제빵 전문점 'DONQ(1905년)', 프랑스의 고프레를 일본식으로 만들어 출시한 '고베 후게츠도(凬月堂, 1897년)', 초콜릿과 치즈케이크 등의 서양식 디저트를 정착시킨 '모로조프(morozoff, 1931년)'와 커피의 유통 및 가공을 산업화한 'UCC(1933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점인 '호코도 커피(放香堂加琲, 1878년)'와 고베의 유명 커피 노포 '니시무라 커피(にしむら珈琲店, 1941년)'등이다.


개항 직후 외국 선원과 거류민의 수요로 인한 쇠고기의 식용이 본격화되며 일본 최고의 소고기로 인정받는 '고베규'의 시작도 이 시기 즈음 이뤄졌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식재료 9가지' 중 하나로 손꼽힌다는 '고베규'는 메이지 18년(1885년) 창립한 고베 스테이크의 원조 '모리야(神戸牛 ステーキレストランモーリヤ 本店)'와 철판구이 스테이크의 원조라는 '미소노(元祖 鉄板焼ステーキ みその 神戸本店, 1945년)', 고베 비프스튜로 유명한 '이토 그릴(伊藤グリル, 1923년)' 등의 노포들을 통해 현재까지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와 함께 개항 시기 몰려든 중국 상인들은 난킨마치(南京町)에 그 근거지를 마련하고 중국 음식의 대중화를 통한 확산을 이끌었다. 오늘날 고베의 '스트리트 푸드'로 가장 유명한 '부타만(ぶたまん, 돼지고기만두)'은 1915년 창업한 '로쇼키(老祥記)'의 대표작이다. 돼지고기만두는 밀가루 껍질로 고기를 덮어 눈에 보이지 않도록 함으로써, 육식에 거부감을 느끼던 일본인들이 고기요리를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도록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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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 스테이크 전문점들. 순서대로 모리야 본점(1885 창업), 아카노렌 본점(1906 창업), 스테이크 랜드 고베관


고베규(神戸牛)_철판 스테이크(鉄板焼き) 역사의 시작, 미소노 고베 본점(みその神戸本店)


개항 이후, 고베를 찾은 외국인들은 효고현(兵庫県)의 전통적인 농우(農牛)였던 '타지마규(但馬牛)'를 먹어 본 후 그 맛을 극찬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유명해진 고베의 소고기는, 이후 고베항에 입항하는 선박들이 고기의 공급을 요청하기 시작하면서 '고베비프(神戸ビーフ)'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오늘날 고베비프는 '타지마규'에서도 '거세수소'나 '미경산 암소(출산을 하지 않은 암소)'에서 선별하고 마블링 등급 No.6 이상(No. 1~12 등급 중)을 받은 소고기로, 효고현 지정 도축장에서 도축한 소'에만' 붙일 수 있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역 브랜드다.


고베규를 사용해 정통 스테이크를 내는 '모리야 본점(モーリヤ 本店)'과 최초로 철판 스테이크(테판야끼, 鉄板焼き)를 만든 '미소노 본점(みその 神戸本店)'을 두고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해야 했었다. 두 집 모두 고베규를 재료로 만든 스테이크를 내는 집이지만 정통 스테이크와 철판 스테이크는 만드는 방식과 음식을 내는 방식에서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 게다가 두 집 모두 여행객의 입장에선 음식값이 만만치 않은 곳이라 두 집 모두를 찾기엔 조금은 부담스러운 점도 없지 않아 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초빼이는 오랜 역사를 포기하고, 세계 최초로 '철판 스테끼(鉄板焼ステーキ)'를 만들었다는 상징성에 좀 더 높은 가치를 두기로 했다.


이쿠타 신사(生田神社)(여러 신사가 한 곳에 몰려 있는 곳으로 3세기 초반(201년)에 지은 이쿠타 신사(生田神社)가 가장 유명. 각종 문학작품에도 등장할 만큼 오래된 곳이며 고베라는 명칭의 기원이 되기도 함)와 고베 시내 요리식품 관계자들이 건립한 식칼총(包丁塚), 그리고 초빼이가 가장 잘 좋아할 것 같은 '마쓰오 신사(松尾神社, 오오야마쿠이를 모심. 주조(酒造)와 농공업의 신)'를 구경하다 점심시간을 조금 넘긴 시간에 워크인으로 찾았다. 미소노는 워낙 유명한 곳이라 사전 예약이 필요한 곳(구글예약 가능)이었지만 평일 낮 시간이라 '혹시나'하는 마음에 무작정 찾았는데, 운 좋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내가 안내받은 곳은 8층의 고베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을 가진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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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찾은 이유는 런치 메뉴가 저녁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편이었기 때문(사실 그렇게 큰 차이는 없다). 고베규 런치(神戸牛ランチ)는 세 포함 23,100엔, 와규 런치는 A5 등급은 13,750엔, A4 등급은 12,100엔이었고, 이보다 저렴한 메뉴인 A, B, C 런치는 일본산 소고기를 제공하는 저렴한 메뉴로 각각 7,370엔, 5,720엔, 3,850엔 정도의 가격이었다. 때마침 출국 전, 월간지 여성동아에 기고했던 기사의 원고료가 입금되어 그 돈을 고베규의 맛과 맞교환하기로 했다. 점심 식사에 곁들인 술 몇 잔까지 더하니 점심값만 무려 25만 원. 아마 초빼이 인생에 가장 비쌌던 한 끼 식사가 아니었을까 싶었지만 고베에 왔으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베규는 꼭 한번 경험해 보고 싶었다.


미소노(みその 神戸本店)의 역사는 1945년(소화 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기 전 카페와 커피 원두 도매업을 하던 '후지오카 시게츠쿠(藤岡重次)'는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후, 고베 항만의 조선소에서 배를 만드는 철판을 구해 오코노미야키를 판매하며 식당을 시작했다. 당시 단골이었던 무용수들이 점령군(미군) 장교들을 자주 데리고 왔고, 후지오카 씨는 '타지마규(但馬牛)'를 구해 스테이크 요리를 냈다. 주걱을 가지고 야채와 고기를 구워내는 현란한 몸짓은 미군들의 눈에 요리 과정까지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보였던 것 같다. 이에 반한 무용수와 미군 장교들 사이에서 빠르게 인기를 얻으며 입소문을 타 미국까지 회자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의 매장을 찾은 미국 기자와의 인터뷰 도중 '데판야끼(鉄板焼)'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요리를 소개하며 세계적인 명성과 '원조 데판야끼 스테이크집(元祖 鉄板焼ステーキ)'으로 인증받게 되었다. 올해(2025년)로 딱 80년째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했던 데판야끼가 이 집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중년의 셰프가 철판 앞에 서서 음식을 만들 준비를 했다. 작은 접시에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밑간을 준비한 후 철판에 불을 올린다. 철판이 적당한 온도로 달아오를 때까지는 기다림의 시간. 간단히 자신의 소개를 한 후,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와따시와 간코쿠진데쓰"라는 말에 깜짝 놀라며 일본식 영어로 다시 물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오랜 세월 몸에 밴 격식과 예의가 고객의 마음을 든든하게 만들어줬다. 이런 셰프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음식 또한 그러할 것이다. 예의와 격식이 기초를 단단하게 받쳐주는 그런 음식이 될 것이다. 최상급 고베규를 다루는 사람이니 절대 실수하지는 않을게다. 스테인리스 주걱을 쥔, 셰프의 손등에 보이는 힘줄과 핏줄들이 그의 지나온 경력만큼 도드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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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규 런치는 철저하게 순서대로 조리되었다. 초빼이가 혼자 온 이국의 손님이라고 절대 허투루 대하지 않았다. 신중한 그들의 행동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철판에 굽는 채소들을 준비하는 동안, 내 앞에는 신선한 야채샐러드가 놓였다. 젓가락을 쥔 손으로 샐러드를 뒤적이지만, 초빼이의 눈은 철판 위를 떠나지 못했다. 소금을 뿌리고, 그 위에 후추를 보태고 버섯, 단호박, 양파와 가지 등 5종의 야채를 올리는 작은 동작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경건함이 범상치 않았다. 서툰 조급함으로 음식의 격을 잡아먹지 않았다. 채소 하나하나 소중히 다루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요리에 대한 태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80여 년 전 미군들의 눈에 '쇼(Show)'처럼 보였던 셰프의 손놀림은 초빼이의 눈엔 '예술가의 작업'처럼 보였다. 위대한 걸작을 만들어내는 숭고한 행위였다. 5종의 채소에 좋은 올리브 오일을 흩뿌리고 소금과 후추로만 간을 한 샐러드의 맛조차 너무나 기품 있었다. 우리의 무와 다른 맛의, 일본 무가 색다른 식감으로 입 안의 청량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철판 위에서 익어가는 채소들의 간은 채소를 다 익힌 후에나 했다. 소금과 후추가 채소 속으로 녹아들어 가 문과(文科) 생들은 절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케미스트리'를 만들어냈다. 이 채소들과 소금, 그리고 후추 또한 최상급의 제품일 것이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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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연인처럼 어느새, 샐러드 접시는 허전해졌고 그 빈자리를 셰프님이 잘 구워낸 채소들이 다시 채웠다. 이런 음식에는 '나마(生)'보다는 '빈(瓶ビール)'이 더 잘 어울린다. 풋풋한 신선함보다는 시간이 만들어 낸 성숙한 맛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떠나버린 샐러드를 생각하며 맥주 한잔을 쭉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연인을 만나듯 구운 채소를 온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생 채소의 파삭함은 사라졌지만 잘 익은 채소의 깊은 맛이 더욱 도드라졌다. 소금과 후추가 제 역할을 했다. 소금만 뿌려 익히는 야채와 오일을 뿌려 익히는 야채가 따로 있었다. 스테이크 캡으로 씌워 철판의 높은 열과 그 안에서 대류 하는 공기의 열기가 채소의 안과 밖을 고루 익히며 채소 본래의 맛을 지켰다. 눈으로 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실제론 무척이나 어려운 작업이다. 감각과 시각, 그리고 후각이 제대로 된 합(合)을 이뤘을 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맛이다.


셰프님이 고베규와 슬라이스 마늘이 놓인 접시를 눈앞에 놓았다. 초빼이가 채소를 좋아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고베규는 또 다른 문제다. 워낙 귀한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고베규'는 효고현에서 생산된 타지마규 중에서도 일본에서 가장 까다로운 품질 기준을 충족하는 엄선된 소에만 '고베규'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A5나 A4 등급의 와규와도 다르다. 고베규는 '고베규'로만 표기한다. 생고기에 찍힌 '노지기쿠(のじぎく, 들국화(데이지))'가 고베규의 인증마크다(사진 참조). 한해 약 5,000마리만 인증을 받으며, 일본 소고기 소비 유통량 중 0.16% 정도만 차지하는 그야말로 희소성이 높은 고기다.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식재료 중 하나에 들어간다는 것이 충분히 이해 간다.


초빼이에게 허락된 고베규는 딱 150g. 우리나라 삼겹살 1인분보다 조금 모자란 양이지만 점심시간, 밥과 함께 들기에는 적절한 양이기도 하다. 그렇게 까탈스럽던 초빼이의 취향도 이렇게 비싼 고기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기만 한다. 구운 채소를 간장에 찍어 하나씩 입에 넣는다. 일본식 간장의 진하고 달콤한 맛이 채소에 또 다른 맛을 한 겹 입힌다. 다시 맥주 한잔. 밥도 함께 했다. 일본의 쌀은 정말 감탄할 지경이다. 우리나라의 쌀도 꽤 맛있긴 하지만 일본에서 먹는 좋은 밥의 맛을 따라가기엔 아직은 조금 모자란 점이 있는 듯한 느낌이다.

깔끔한 구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소츄 한잔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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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번 사진 고베규(神戸牛), 3번 사진 고베규 인증마크(사진 출처 : 미소노 웹사이트)

구운 야채를 다 먹어가자 셰프님이 고기를 들어 정성껏 설명해 주셨다. 모든 말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눈빛에서 보이는 신뢰감 하나로 모든 설명을 대신했다. 무대 위로 가장 먼저 발을 들인 것은 고베규가 아닌 슬라이스 마늘. 슬라이스 마늘을 양껏 올리고 그 위에 오일을 붓는다. 우리 식으로 치자면 마늘 기름을 내, 고기를 구울 때 쓰려는 듯하다. 셰프가 그리는 큰 그림의 일부일까? 기름에 구워낸 마늘칩마저도 정말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고베규가 가운데 무대로 나왔다. 이미 뜨겁게 몸을 달군 철판이 친절하게 고기를 반겨준다. '치지직'거리는 소리가 마치 천상의 나팔소리와 같다. 이내 잔뜩 육향을 실은 흰색 연기가 봉화처럼 솟아오른다. '곧 내 육체와 정신을 침범할 시간이 올 것이니 조심하라'는 신호처럼 읽혔다. 고기로 피워 올리는 봉화라니. 엄청나게 비싼 봉화이자 신호다. 옛날 봉화는 연기를 잘 보이게 하기 위해 잘 마른 동물성 분뇨를 함께 태웠다지만, 오늘 초빼이의 봉화는 무려 '고베규'를 태운다.


고기가 적당히 익으면 불을 조정하고 그 위에 '스테이크 캡'을 씌운다. 철판의 높은 열과 그것에 의해 데워진 공기가 그 좁은 공간에서 대류를 일으키며 육즙을 고기 속에 가둬둔다. '미디엄 웰던'으로 구운 고기의 식감은 초빼이가 좋아하는 익힘의 정도. 스테이크 캡이 '웰던'을 도드라지게 한다. 철판구이 스테이크를 개발한 것 외에 미소노가 이룬 또 하나의 업적은 '캡(Cap)'이라 부르는 '스테이크 커버'의 개발이었다. 스테이크를 굽는 과정에서 기름과 육즙이 심하게 튀며 손님의 의상에 묻는 경우가 생기자 궁리를 통해 만든 방법이 고기를 구울 때 프라이팬으로 덮는 것이었다. 이후 캡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육즙을 보존하며 스테이크를 더 맛있게 익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의 모든 철판구이 집에서 사용하는 스테이크 캡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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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밥 위에 고베규 한 덩이를 올리고 입에 넣는다. 밥알 사이사이로 스며든 기름은 한 입 크기의 밥맛을 한껏 풍성하게 만들었고, 진한 육향과 어우러진 쌀밥의 향은 최고급 향수보다 더 치명적으로 후각을 자극했다. 요즘 친구들의 표현으로 하자면 '미쳤다'라는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소금을 올리기도 했고, 찬으로 나온 갓나물(タカナ, 타카나)을 고기에 매칭하기도 했다. 고기부터 채소까지 음식을 즐기는 동안 무엇 하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소고기를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초빼이가 먹어본 소고기 중 최상의 소고기임은 분명했다. 초빼이가 소고기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였던, 피 냄새 같은 것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이 정도 수준의 소고기를 얻으려면 도대체 소를 어떻게 키우고, 어떤 먹이를 주고 어떻게 잡아서 보관하는 걸까? 소고기의 육향이 좋다는 경험은 정말 태어나서 처음 가진 느낌이었다. 부드럽고 고소한 소고기의 맛이 너무나 감동적이고, 채소들의 그 생생한 향과 맛이 잊히지 않았다. 거기엔 철판구이를 해 주는 셰프의 입담도 같이 녹아들어 오랜만에 최상의 식사를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괜히 비싼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경험의 과정이 그 식사비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또 깨닫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8층의 모든 좌석이 손님들로 가득했다. 다양한 인종의 손님들이 다양한 언어로 데판야끼를 즐기고 있었다. 이들도 최상의 음식과 식재료의 경험을 해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와 이 집을 찾은, 진정한 미식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어떤 느낌으로 이 집의 음식을 느끼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고기와 채소를 모두 미운 후 디저트를 즐기며 다른 좌석에 앉은 손님들의 표정을 읽어 나갔다. 언어가 달라 그들의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얼굴로 내비치는 감정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라는 말은 아마 이럴 때 쓰라는 말인 듯하다.


80년 전통의 미소노에서만 체험이 가능한, 농후하고 깊은 맛의 고베규 데판야끼 만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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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팁]

1. 매장명 : 미소노(元祖 鉄板焼ステーキ みその 神戸本店)

2. 주소 : Hyogo, Kobe, Chuo Ward, Shimoyamatedori, 1 chrome-1-2 みその ビル7・8F

3. 영업시간 : 월~일 11:30~13:40, 17:00~22:00 / 가끔 영업시간의 변동이 있으니 방문일 당일 확인 필요

4. 주차장 : 주차장은 별도로 없음.

5. 참고

- 예산 : 1인당 10,000엔 이상.

가. 고베규 런치(神戸牛ランチ) 세 포함 23,100엔

나. 와규 런치 : A5 등급 13,750엔, A4 등급 12,100엔

다. A, B, C 런치 : A런치 7,370엔, B런치 5,720엔, C런치 3,850엔

- 카드 가능

- 연락처 : +81-78-331-2890

6. 이용 시 팁

- 예약

가. JPNEAZY 사이트

나. 구글 예약 가능(구글맵에서 메뉴를 들어가면 예약 사이트 링크 있음)

- 산노미야역 근처에 있음.

- 영어 메뉴판도 있으니 일본어 메뉴판이 어렵다면 따로 요청할 것.

- 추천 메뉴 : 고베규 런치, 와규런치


https://maps.app.goo.gl/5uiTMB1HsWwKfwet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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