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효고현 고베시 주오구 하나바시(お好み焼 花菱)
일본에서 자주 쓰는 표현 중 'B급 구루메(B級グルメ)라는 말이 있다.
B급 구루메는 일본인들의 독특한 언어습관이 만들어 낸 신조어로, 원래 일본의 쇼와시대 영화 공연 포스터에 쓰던 '저예산, 서민용 등급(等級)'을 의미하던 'B급'이라는 단어와 80년대 후반, 미식 열풍이 불자 일본의 잡지와 TV에서 사용되던 프랑스어 차용어 '구루메(グルメ / Gourmet)'라는 말이 결합하여 생긴 말이다. 'B급'이라는 말은 '저예산 또는 고급이 아닌'이라는 뜻에서 '값싸고 친근한 서민들의~'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품으며 'B급 구루메'는 '값싸고 소박하지만 맛있고 지역성이 강한 음식'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1990년대 일본의 공중파 TV나 잡지는 'B급 구루메' 열풍의 주역이었다.
TV 도쿄의 'TV Champion'같은 프로그램이 'B급 구루메' 열풍을 확산시켰던 대표적인 프로그램. 이를 이어받은 일본의 유수 잡지(dancyu나 オレンジページ(오렌지 페이지))들이 지역적 특성이 강한 소박한 일상의 음식을 소개하며 B급 구루메의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런 열풍을 감지한 일본의 지자체들은 한술 더 떠, 지역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B1 그랑프리(B-1 グランプリ)'라는 지역을 대표하는 'B급 구루메 경진대회'까지 개최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B급 구루메는 가격도 저렴하고 지역성을 담고 있었으며, 노동자, 시장, 항만, 공단 주변에서 발전한 서민적인 음식이었고 지역의 노포들과도 관련이 많았으니 지자체 입장에선 이런 훌륭한 소재도 찾기 힘들었을 터. 게다가 나이 든 사람들이나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정착해 사는 사람들에겐 이만큼 고향을 떠 올리게 하는 소재도 없을 터. B급 음식에는 자신이 고생했던 시절의 추억을 절로 떠올리게 하는, 그런 마력까지 스며 있다. 바야흐로 'B급 구루메 = Soul Food'라는 공식이 틀린 말은 아닌 상황.
이런 과정을 통해 발굴한 일본 각 지역을 대표하는 'B급 구루메'들은 엄청나게 많다.
오사카의 서민음식 이카야키(いか焼き, 반죽 사이에 오징어를 넣어 철판에 굽는 스낵), 도쿄의 모츠야키(もつ焼き, 미군이 버린 곱창을 재활용해 만든 음식), 일전양식(오코노미야키, 몬자야키 포함), 후쿠오카의 모츠나베, 추부(중부)의 야키소바, 토야마의 블랙 라멘, 하치노헤의 센베이 지루(八戸せんべい汁, 밀이나 곡물 센베이를 국물에 넣어 끓인 음식), 기타큐슈의 야키카레, 홋카이도의 수프카레까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고베의 '소바메시(そばめし)'는 전국적으로 각인된, 고베 지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B급 구루메'로 자리 잡고 있다.
추운 겨울 보온 도시락이 없었던 시절(1950년대 초) 고베의 신발과 고무 공장에 다니던 노동자들은 차갑게 식은 밥을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아주 오래전이니 공장의 구내식당은 어불성설에 가까웠던 시절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 '궁(窮)하면 통(通)하고 구(求)하면 찾아지는 법.' 사람들이 고민하며 찾은 방법은 인근 싸구려 오코노미야키 집에 들러 '야키소바'를 반찬으로 주문하고 그것과 함께 차가운 밥을 철판에 볶아 도시락 밥에 온기를 더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고베시 나가타구의 오코노미야키 식당 아오모리(青森)의 당시 1대 사장이었던 '아오모리 아키코(青森章子)'씨는 노동자들의 부탁대로 철판에 밥과 야키소바를 함께 볶기 시작했다. 한정된 점심시간, 소바를 조리하는 시간만으로 밥과 소바를 동시에 데우고 먹을 수 있었으니 시간도 절약할 수 있었다.
일본 고베시 나가타구에 있는 '아오모리(青森)'는 1957년 창업해 지금까지 4대를 이어오는 오코노미야키집이다. 이 집의 2대째 사장이 '소바메시(そばめし)'라는 이름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메뉴에 올리며(1985년) '아오모리'는 소바메시가 시작한 집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소바메시(そばめし)라는 근사한 이름도 붙었지만, 원래 이 음식은 메뉴에도 올리지 못했고 심지어 딱히 부르는 이름도 없었던 그런 음식이었다. 그저 인근 공장에 다니던 단골들이 찾아와 요청하면 만들어 주던 '비밀메뉴' 수준의 음식으로, 워낙 푸짐한 양에 입소문을 타며 조금씩 찾는 사람이 늘게 되었다. 심지어 원래 이 음식을 시작한 곳은 이 집보다 몇 년 더 일찍 창업한 '야요이(やよい, 1953년 창업)'라는 집이지만 이 집에선 현재까지 '소바메시'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굿 라이스'라는 메뉴명을 사용한다.
소바메시가 일본 전국으로 퍼져 나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고베 대지진'때문이었다.
오코노미야키 노포로도 널리 알려졌던 아오모리가 고베 대지진의 피해로 영업을 중단했다가 몇 달간의 복구 작업 후 영업을 재개하는 장면이 일본 전국 TV에 방영되었다. 그 화면에 잡힌 것이 바로 '소바메시'를 재개업 첫 음식으로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장면이었던 것. 일본 전국에 방영된 이 장면 하나로 '소바메시'는 전국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고, B급 구루메 '소바메시'의 발상지로 일본 전국의 식도락가들이 몰려들게 되었다.
이렇게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탄 소바메시는 음식 자체로도 약간의 변화를 가지게 되었다. 가장 처음 생겼을 때는 단순히 흰쌀밥과 야키소바를 섞어 함께 볶는 형태였지만, 소바메시라는 이름이 붙고 시간이 흐르며 이 음식을 내는 곳이 고베시 전체로 확산되었고 '소의 힘줄(스지)'같은 고기도 첨가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일어난 변화는 관광객들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가게들에선 '고베규나 와규'와 같은 고급스러운 식재료를 함께 올리며 고급화하거나 냉동식품 또는 밀키트 형식으로 만들어 전국화하는 실정. 실제 우리나라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도 고베규나 와규를 소바메시에 올리는 것으로 유명한 집이다.
노포의 오래된 음식을 찾아다니는 초빼이로서는 당연히 이런 유형의 집을 피했다. 소바메시 자체가 고베의 노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음식인데, 150g에 1~20만 원씩 하는 고베규나 와규는 아닌 듯했다. 소바메시가 고베 시내로 퍼져나가는 시기에 창업한(여사장님께서 올해로 정확하게 창업 64년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고베시 산노미아 쇼핑가에 자리한 '오코노미야키 하나비시'라는 가게였다.
연 이틀을 이 집 앞을 왔다 갔다 하며 분위기를 살폈다. 낮에는 동네 사람들이, 저녁에는 셔츠를 입거나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드는 것을 보니 이 집이 마음에 들었다. 사전 조사 없이 그야말로 현장에서 즉석으로 찾아간 집이다. 음식은 먹어보지 않았지만 가게를 채우는 손님들과 그들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 손님들의 표정을 보고 이 집으로 낙점했다. 초빼이가 이처럼 치밀하다.
조금 이른 시간에 찾았다.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보다 이른 시간이라 매장엔 손님이 없었고, 연세 드신 사장님 내외만 보이길래 잠깐 망설이다 발걸음을 옮겼다. 옛날식 미닫이 문을 옆으로 밀면, 오래된 가게 특유의 침착함이 공기 중에 은은히 묻어 나올 것 같았다. 초빼이는 그런 분위기가 매우 즐기는 편이다. 현대식으로 잘 꾸며진 최신식의 매장보다, 오래되었지만 잘 관리되어 사람의 향이 묻어있는 곳, 잘 차려입은 관광객들보다는 동네 사람들이 목이 늘어난 흰 티에 반바지를 입고 '쓰레빠' 질질 끌고 오더라도 자연스러운, 그런 분위기를 가진 가게를 더욱 선호한다. 'B급 구루메'인 소바메시는 왠지 그런 곳에서 먹어야 참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렌'을 한쪽으로 밀며 가게로 들어섰다.
크지 않은 조용한 목소리로 할아버지 사장님이 반겨주신다. 동네 사람이라고 더 반기거나 외국인이라 더 날을 세우지 않을 것 같은, 그런 평온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편한 곳에 앉으라는 말과 함께 얼음 가득한 시원한 물 한 잔과 매일 삶아 깨끗이 세탁했을게 분명한 '시보리(おしぼり)' 하나를 무심하게 올려놓고 가신다.(고베를 취재하던 기간이 올해 4월이었다.)
매장을 채우는 모든 것들이 아주 오래된 물건들이라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아주 오래되었지만 지저분하거나 혼잡스럽지 않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하나씩 들어 손으로 먼지를 훔쳤을 것이 뻔하다. 어지간한 '바지런함'으론 이 정도로 관리가 힘들다는 것을 조금 살아보니 알겠다. '마디마디 굵어져 제대로 펴지지도 않는 손가락과 조금씩 굽어버린 사장님 내외의 허리'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시원한 생맥주(なま)를 주문하고 기다렸다. 주방에서 남자 사장님이 주문이 들어오면 조리를 시작하고 조리가 끝나면 여자 사장님께서 테이블로 서빙을 해 주신다. 주방 저 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치열함이 포렴을 뚫고 홀까지 나온다. 거기에 구수한 '간장 타는 내'는 덤으로 한 다리를 걸친다. 사장님의 연륜과 주문 후 조리라는 시스템의 조합은 음식이 나오기까지 다른 가게들보다 조금 더 오랜 시간을 담보한다. 그렇다고 조금 더 길어진 기다림이 심심하진 않다. 주방과 홀을 가르는 오래된 포렴에 눈을 두다가 바로 옆에 우뚝 선 대나무 발에도 한 번씩 눈길을 준다. 뜨거운 열기에 흥분해 살짝 고개를 든 갈라진 테이블 표면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쳤을까 하는 의심에 까맣게 탄 속을 드러낸 '테이블 일체형 철판' 위로 손바닥을 몇 번이나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면 이내 음식은 내 테이블에 도착해 있다.
말로만 들었던 소바메시를 처음으로 대하는 순간. 기대와 달리 유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숙주와 양배추를 넣고 양념을 해서 볶은 야키소바의 모습과 별반 다를 건 없었다. 야키소바용 주카면은 굉장히 드라이하게 볶아진다. 밥을 먹는데 불편하지 말라고 철판구이용 주걱으로 소바의 면을 짧게 짧게 끊어놓은 것과, 간장소스를 잔뜩 머금은 볶은밥까지 평범한 모습이다. 이 집은 야끼소바의 재료를 그대로 사용하는지 짧게 끊어진 소바면 사이사이로 작은 삼겹살 조각과 얼은 몸을 가볍게 풀어낸 칵테일 새우도 한 두 마리씩 눈에 띈다. 적어도 소바메시라고 밥을 첨가하니 다른 재료를 빼 버리는, 그런 치사함도 없다. 소바메시의 정석에 충실하다. 마지막 마무리로 일본식 청김(아오노리)를 잔뜩 올렸다. 청김을 뿌리는 것만이 내가 맡은 역할이었다.
앞 접시에 소바메시를 한 움큼 덜어 수저를 들었다.
수저 위로 소바메시를 가득 올려 시간을 씹기 시작했다. 한 번씩 느껴지는 삼겹살과 새우살의 색다른 질감을 입으로 받아들이며, 이곳 구두공장과 고무공장 노동자들의 쫓기는 점심시간도 오롯이 느껴보고자 했다. 음식에 담긴 사연이나 역사를 알지 못하면 그냥 단순히 야키소바와 밥을 한데 볶은 양 많은 한 끼의 식사에 머물렀겠지만, 소바메시가 만들어진 사연을 알고 난 후였기에 식어버린 도시락에 새로 불어넣는 온기를 느꼈다. 거기에 자투리 점심시간, 볕 잘 드는 곳을 잡아 잠시라도 쉬고 싶었던 노동자들의 본능적인 욕망도 읽혔다. 고베규나 와규를 올렸다면 느끼지 못할 온기였고, 삐까번쩍한 매장의 화려한 철판 퍼포먼스를 택했다면 알아채지 못할 욕망이었다.
국민학교 시절 조개탄을 떼던 난로에 올렸던 양철 도시락 생각도 났고, 고등학교 시절 3교시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해치우고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달려갔던 농구장 생각도 떠 올랐다. 절실함이라는 감정은 시간과 장소만 다를 뿐 언제나 세상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물론 그 절박함의 강도에는 차이가 있다. 단지 내가 전쟁을 겪지 않은 조금 더 평화롭고 물자가 풍족한 시절에 태어났을 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 고유의 물성(物性)을 품고 있듯, 사람의 감정은 그 감정을 세상밖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고유의 '추억'을 품고 있다. 그래서 감정에 충실한 이들이 좋다. 감정에 충실한 이들은 추억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목이 메었다. 자리에 앉으며 주문한 생맥주는 이미 바닥을 비운 상황. 이렇게 추억이 잔뜩 화가 난 복어의 배처럼 부풀어 오를 땐, 독한 술이 좋다. 쇼추를 주문했다. 물론 좋아하는 고구마 소주를 주문했다. 더운 날씨를 핑계로 평소처럼 언더록(オンザロック)으로 요청했다. 독주는 구강을 지나 식도를 거쳐 위로 내려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독주를 마시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지금 술이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강한 독주 한 모금이 잠시 꿈틀대더니 가슴과 목 사이에 걸렸던 '무언가'를 뱃속으로 끌어내렸다.
조금 부족한 감이 들어 이까네기(イカネギ)도 하나 부탁드렸다.
일반적인 오코노미야키와는 다른 이까네기는 음식을 먹다 배가 8~90% 정도 찼을 때, 그냥 가기엔 '아쉽고' 무언가를 더 먹자니 '부담스러운' 그 상황에 딱 좋은 음식이다. 철판에 얇게 반죽을 깔고 그 위로 잘게 썬 파를 잔뜩 올린다. 다시 그 위에 올리는 토핑은 고객의 선택. 초빼이는 이까(イカ)를 선택했다. 그래도 뭔가 씹을 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반죽 얇게 반죽 한 번.
이까네기가 나오기 전, 동네 사람들로 보이는 한 가족이 들어왔다. 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이 집의 단골로 지냈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그들도 소바메시와 오코노미야키를 주문해 먹다가 짬이 난 여자 사장님과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듣기 반 추측 반으로 요약해 보면 그 집의 딸이 이번에 결혼을 하게 되어 오랫동안 교류했던 이 집의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러 왔던 것. 이런저런 축하의 말이 오가는 중 주방에서 남자 사장님이 나오시더니 기름 묻은 손으로 앞치마에 접어 넣었던 봉투를 꺼내 건넸다. 예비 신부는 몇 번을 거절하더니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그 봉투를 받았다. 그러더니 남자 사장님은 예비 신부에게 한마디를 건네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무뚝뚝함의 결정체다.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90년대 정도까지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이런 모습은 어렵지 않게 봤던 것 같다. 이런 모습을 2025년의 일본에서도 볼 수 있다니, 역시 일본은 '멀지만 가까운' 나라이기도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런 이유 말고도 이 집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그중 가장 중요한 이유 하나는 이 집의 사장님은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초빼이를 일본인으로 대해줬기 때문이다. 큰 머리와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덕에 초빼이는 한국, 유럽, 미국, 일본 심지어 중국에서조차 중국인들이 '니하오'라며 말을 건다. 별거 아니라 넘어가긴 하지만 이게 은근 스트레스다. 가장 심한 예를 들자면 베이징과 상해에서는 중국 시골에서 대도시 관광을 온 자국 여행객들이 초빼이에게 길을 물었던 적도 있었다. 심지어 "난 중국인 아냐"라고 대답하면 의심의 눈초리로 계속 노려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고베의 '대표적인' 오코노미야키 노포인 '하나비시'의 사장님은 초빼이의 '스미마셍' 한마디만 듣고서 손에 쥔 외국어 메뉴판(한국어와 영어)을 뺏고 일본어 메뉴판을 건네주신 은인과 같은 분이다. 심지어 외국어 메뉴판을 뺏어 가시며 "왜 일본인이 외국어 메뉴판을 보냐"며 타박까지 하셨다. 중국에 대해 혐오나 억한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국인으로 취급받는 게 싫었던 내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이 집의 사장님은 빛과 소금 같은 분이었다. 실제로 이 집을 방문한 이후에는 아주 가끔씩 일본인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왠지 이 집에서는 추억이 볼모로 잡혀 모든 것들에 감정이 울컥거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취재로 일본의 각지를 떠돌며 정말 많은 음식점을 다녔지만 이렇게 다양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집은 경험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까네기를 조금 찢어 입에 넣고 다시 쇼추 한 모금을 들이켰다. 조금만 더 오래 앉아 있으면 눈물과 콧물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두려워졌다. 남은 음식을 게눈 감추듯 입으로 털어 넣고 쇼추잔도 얼음만 남겼다. 급하게 "계산해 주세요(会計お願いします)"를 외쳤다. 그래야만 했던 집이었다.
[추가 팁]
1. 매장명 : 오코노미야키 하나비시(お好み焼 花菱)
2. 주소 : Hyogo, Kobe, Chuo Ward, Sannomiyacho, 3 Chome-8-3 大華ビル
3. 영업시간 : 월~일 11:30~20:00
4. 주차장 : 별도의 주차장은 없다.
5. 참고
- 예산 : 1인당 1,000~2,000엔.
- 연락처 : +81-78-391-0915
6. 이용 시 팁
- 현금 결제.
- 오코노미야키, 소바메시, 이까네기, 야키소바 등 어떤 메뉴를 주문해도 실패는 없다
- 여자 사장님과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눴는데, 올해로 정확하게 64년이 되었다고 하셨다.
- 소위 말하는 현지인들의 맛집. 관광객은 거의 없는 편이다.
- 주문 후 조리를 하시기 때문에 손님이 조금 많을 경우에는 음식을 받는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
https://maps.app.goo.gl/UZnkwqcub354FGU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