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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태민 Aug 21. 2023

잊지 못할 작년 내 생일

22년 8월,


뜨거웠던 작년 8월의 여름. 입사 5개월 차였던 나는 정신없는 업무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낯선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 새롭게 마주하는 일들에 익숙해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잠깐 숨을 돌릴 겸 보았던 휴대폰에는 아빠의 부재중이 와있었다. 짧은 신호음에 이어 아빠의 짧은 이야기가 전해졌다.


'아들, 엄마 검사 결과 나왔는데... 혈액암 이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대충 통화를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뜨겁고 습한 날씨 때문에 괜히 더 어지러웠다. 앞으로 어떤 일들을 마주하게 될지 막막하고 무서웠다. 엄마가 걸린 병은 '다발골수종'이라는 혈액암의 일종이었다. 암 중에서도 재발 가능성이 높고 또 치료비가 많이 드는 고액암이라고 한다. 왜 하필 우리 엄마였을까?




사실 내 기억 속 엄마는 늘 아픈 사람이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 엄마는 밥만 먹으면 화장실에서 토를 했다. 그 장면이 당시 나에게 꽤나 충격적이었는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이미지가 머릿속에 아주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 엄마가 아파서 몇 주, 몇 달간 입원을 했던 적도 있다. 중 고등학생일 때도 마찬가지. '신부전증'이라는 질병을 앓았던 엄마는 10여 년간 약을 달고 살았고, 약 부작용 때문에 몸이 늘 부어있었다.


아픈 엄마의 이미지가 익숙해서였을까? 아니면 지난 긴 세월 동안 장남으로 자라왔던 환경 때문일까?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슬픈 감정과 동시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흔들리지 않으려 했다. 아픈 엄마가 불쌍했고 많이 가여웠다. 하지만 앞으로 마주하게 될 힘들고 고통스러울 순간들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물을 꾹 참고 정신을 더 바짝 차리기 위해 오히려 더 현실적인 문제들을 자꾸 떠올렸다. '엄마가 치료를 잘 받고 건강을 되찾으려면 앞으로 어떻게 준비를 하고 대처를 해야 할까?' '내가 엄마와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면 뭘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문득 생각해 보니 난 어렸을 때도 비슷했다. 엄마가 아프거나 집안에 크고 작은 일들이 있을 때면 난 슬픔에 오래 머물러있지 않으려 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흔들리지 않고 초연한 모습이려 했었다. 울지 않고 씩씩하게.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여동생의 든든한 오빠이고 싶었다. 슬픔에 오래 머물러 있는 건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다.




잠깐 바람을 쐬며 정신을 차리고 다시 회사 사무실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루일과를 마무리했다. 슬픈 티를 내고, 다른 사람에게 위로를 받는 건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슬픈 현실과 아픈 내 마음을 다른 사람과 나눈다고 한들 달라지는 게 없으니까. 엄마가 아픈 게, 없던 일이 되는 게 아니었으니까.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와 아빠가 저녁 준비를 하고 계셨다. 아빠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다. 두 분 다 애써 밝은 목소리로 나를 맞아주었지만, 평소와 다른 분위기와 행동들은 어색하기만 했다. 답답한 공기가 견딜 수 없을 만큼 불편했다. 부모님과 저녁을 함께 먹으며, 오늘 병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전해 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치료를 받을 것이며, 어떻게 생활할지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 나누었다.


엄마는 자꾸만 울었다. 우는 엄마를 대신해 아빠가 이야기를 계속 이었다. 음식은 식어갔지만 차마 손을 델 수가 없었다.


길었던 부모님과의 이야기를 끝내고, 서울에 혼자 살고 있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미 동생도 대충 이야기를 전해 들은 눈치였다. 애써 담담하게 전화를 받는 동생에게 '다 괜찮을 거야'라는 말 말고는.. 해줄 말이 없었다.


동생과의 통화를 다 끝내고 나니 이미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어가 있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고 힘들었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현실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엄마가 무사히 치료를 잘 받을 수 있을까?'

'우리 가족들의 일상은 많이 달라지겠지?'

'고액암이면 치료비는 얼마나 들까? 엄마가 보험을 들어놓은 게 있을까?'


생각과 걱정은 눈더미처럼 자꾸 불어 만났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을 잠시 덮어두고 전화기에 쌓여있는 연락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평소보다 연락이 많이 왔다. 모두 내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다. 고마웠지만 나는 내 생일을 축하할 수 없었다. 애써 감사한 척 애써 행복한 하루를 보낸 척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좀 자고 싶었다. 오늘 하루를 빨리 끝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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