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태민 Aug 22. 2023

동생의 퇴사

며칠 뒤, 엄마의 소식을 들은 동생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회사에서의 일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많이 힘들고 지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우리 가족들은 모두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서울에서 모든 치료과정을 받게 될 엄마를 위해 그리고 나와 아빠를 위해, 동생이 내린 어려운 결정이었다는 것을.


이유는 잘 모르겠다만, 엄마가 받게 될 항암치료는 입원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오직 통원치료만 가능했고, 그러기 위한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었다.


1. 대구-서울 통원치료

2. 동생의 서울 자취방에서 생활하며 통원치료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쉽게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


나와 부모님을 위해 힘든 결정을 내려준 동생에게 많이 고맙고도 미안할 뿐이었다. 가족들의 복합적인 심정을 눈치챘는지 동생은 계속 괜찮다고만 말했다. '오빠랑 아빠는 대구에서 일하니까 어차피 서울로 오기가 힘들 거고, 나라도 서울에 살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 그리고 엄마 항암치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혼자 씻는 것도, 옷 갈아입는 것도 힘들 텐데 내가 같은 여자라서 엄마한테도 덜 부담일 거야.'


앞으로 항암치료가 진행되면 엄마 혼자서 생활하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장을 보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일. 집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는 일.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 일. 이부자리를 펴고 정리하는 일. 병원에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러 가는 일. 약을 챙겨 먹고 병원 서류를 정리하는 일 등. 누군가의 손길과 도움이 항상 필요했고 그 '누군가'의 역할을 동생이 자처하기로 한 것이다.


애써 좋게, 밝게 이야기하던 동생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더 나은 선택지를 줄 수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동생의 결정이 우리 가족에게는 최선이었다. 그저 동생의 젊고 아름다운 나이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동생이 기꺼이 포기한 것들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걸 잘 알지만 떠나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동생의 직장생활, 인간관계, 연애, 젊고 아름다운 나이. 그 모든 것들을 지켜주지 못해 참 많이 씁쓸했다.


직장생활을 위해 서울에서 혼자 살았던 동생의 자취방.

이제는 한동안 엄마와 함께 지내게 될 집이다. 퇴사를 마친 동생은 좁은 자취방을 정리할 겸 필요 없는 본인 짐들을 대구 집으로 들고 왔다.


엄마를 오랜만에 만난 동생은 가득 챙겨 온 짐들을 정리도 하지 못한 채 엄마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집 현관에서 엄마와 동생은 그렇게 한참을 끌어안고 울기만 했다. 출근하는 마음과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뒤죽박죽 섞여있었다. 앞으로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낼 것이다. 어쩌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아프고 힘든 순간도 생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무섭고 두려웠다.


무섭고 두렵지만 매일 슬퍼하고, 매일 울 수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는 중심을 잘 잡고 정신을 차려야 했다. 나라도 슬픈 감정에 동요되지 않고 흔들리지 않아야 했다. 기약할 수 없는 긴 시간 동안 걱정하고 슬퍼하는 일을 끊어내고 싶었다. '앞으로 가족을 걱정하느라 슬픈 감정에 계속 사로잡혀있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나의 노력으로 바꿔갈 수 있는 것들에 더 집중하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게 내가 가족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동생의 희생과 엄마의 건강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생각했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결정된 일이니까.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도저히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하루종일 걱정하고 슬퍼하는 건 내 인생에 그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 내 몸과 정신을 갉아먹을 뿐이었다. 언젠가 내 일상조차 망가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난 가족들을 위해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동생이 엄마 옆에서 간호를 하고 모든 일들을 돕고, 말동무가 되어주는 것처럼. 나는 우리 가족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길게 고민할 필요 없이 내 스스로 답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루하루 조금만 더 열심히 살아서 내가 원하는 '성공'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뤄보자.

돈을 많이 벌자. 그래서 가족들이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내가 만들어주자.


예전부터 늘 바라고 그려왔던 나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아프지만 내 인생을 좀 더 잘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가족에 대한 생각과 슬픈 감정들은 조금 제쳐두기로 했다.

작가의 이전글 잊지 못할 작년 내 생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