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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태민 Aug 23. 2023

시간이 약이라


한동안은 집도 마음도 허전했다.


유난히 아들을 좋아했던 엄마. 엄마 눈에는 다 큰 내가 아직까지도 그저 어린아이로 보이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잘 잤니 아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니 아들?', 고단했던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편하게 푹 잘 자 아들~' 늘 따뜻한 사랑으로 말해주던 엄마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컸다. 엄마의 온기가 가득했던 집이 이제는 공허한 한숨 소리로 가득 찰 뿐이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엄마의 짐과 텅 비어버린 엄마의 공간 때문에 유난히 한숨소리가 더 크게 느껴지곤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쓸쓸함과 외로움은 나와 오래 함께 가지 못했다. 회사의 신입이자 막내인 나는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매일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고 덕분에 슬픈 감정에서 조금씩 무뎌질 수 있었다. 조금씩 나의 일상을 되찾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퇴근 후 내 삶에서도 슬픔과 걱정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사실 조금의 틈도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더 바쁘고 더 열심히 매일매일을 살았다. 힘들고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엄마를 위해. 가족의 생계를 위해 더 바쁘게 일하는 아빠를 위해. 가족들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고 있는 동생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잘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평범했으니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어제보다 오늘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살아가는 것뿐이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엄마가 서울로 올라간 지도 몇 주가 흘렀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질수록, 방해받지 않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들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사실은 오래전부터 독립을 꿈꿔왔었다. 누구나 가지는 자연스러운 마음이겠지만. 나 또한 성인이 되고 나서는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왔다. 하지만 대학과 직장 모두 본가와 크게 멀지 않아서, 굳이 나와 살면서 안 써도 되는 돈들을 쓰는 게 맞는 일일까?라는 생각에 계속 미뤄만 왔었다. 결국 30살 가까이 자취 한번 하지 않고 계속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뒤늦게 얻은 혼자만의 시간들이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졌다. 내가 하는 일들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새로운 것들을 배우기 위해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거나. 혹은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경험의 시간들을 나에게 선사해 주었다. '매일 열심히 살아보자!' 다짐했었던 나에게 더없이 완벽한 순간들이었다.


아빠와 대구의 본가에서 함께 생활하고는 있었지만, 무뚝뚝한 부자지간은 어쩌다 한 번씩 함께 밥을 먹을 때 말고는 대화를 잘 나누지 않았다. 아빠도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아서 함께 밥을 먹는 날도 사실상 많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각자의 일을 하고, 각자만의 시간들을 보내는 일상이 아빠와 나에게는 편하고 자연스러웠다. 바쁘고 꽉 찬 하루하루가 많아질수록 가족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그 대신 흐릿한 나의 미래가 조금씩 더 선명해지길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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