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태민 Aug 25. 2023

하... 미친놈

힘들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혼자 속앓이 하지말고 꼭 전화하라고 했다.

그날 이후, 동생의 전화는 점점 잦아졌다. 그만큼 힘들고 속상한 일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그때마다 내가 해줄 수 있는건 늘 똑같았다. 위로해주고 달래주고 희망을 주는 것. 하지만 매번 동생과 통화할 때마다 동생과 엄마의 삶이 나에게 조금씩 전염되는 느낌이 들었다. 내 기분과 감정, 일상들이 조금씩 물들어가고 있었다.


속상하고 슬픈 감정들은 수시로 내 일상에 불쑥 찾아와 나를 힘들게 했다. 나의 일상을 자꾸만 흔들었다. 회사에서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일상에서 한숨이 점점 늘어만 갔다. 걱정과 고민 때문에 밤에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뜬 눈으로 밤을 세는 날들이 많아졌다. 우울감과 무기력. 피곤함과 스트레스가 스멀스멀 나를 휘감고 있는게 온 몸으로 느껴졌다.


점점 혼자 있고 싶어졌다. 다른사람과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게 힘들었다. 웃는게 힘든건 또 처음이다.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쉬는것도 힘이 들었다. 힘들게 끊었던 담배에 다시 손을 대고 말았다. 엄마가 암 때문에 아파하고 있는데. 우리가족이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는데. 머리로는 '내가 지금 이러면 안된다'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다. 하지만 답답한 마음과 우울한 일상은 자꾸만 도피처를 찾으려 했다. 쓰레기통을 뒤졌다. 전날 버렸던 담배갑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붙혔다.


'하... 미친놈'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정말 모르겠다.



동생의 힘든 전화에 익숙해질 만큼, 또 시간이 많이 흘렀다. 멍하게 의미없이 보내는 시간들이 점점 늘어났다. 이제는 반복되는 우울감과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담배를 쉽게 끊지 못하는 한심한 내 모습이 너무나도 끔찍했고 혐오스러웠다.


지금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저 빨리 잊어버리는 것 뿐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현실을 부정하거나, 가족들을 모른척 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나에게 처해진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가슴 아픈 현실들이 나를 잡아먹지 못하도록, 빨리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 애를 쓸 뿐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고,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회사 업무에 도움이 될 만한 학원에 새롭게 등록했다. 퇴근 후 집에 들리지 않고 바로 학원으로 향했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지식들을 자꾸만 접했다. 나에게 틈이 보이지 않도록 쉴 새 없이 자꾸만 채워넣었다. 운동도 더 열심히, 부지런히 다녔다. 어쩌면 미련하게 운동을 했다고 말하는게 맞는것 같다. 몸이 찢어질 듯 아프게 매일 운동을 했다. 토를 할 만큼 강한 강도로 운동을 했다. 몸은 정말 힘들었지만 참 감사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힘든 현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복잡한 마음과 머리가 쉴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가족에 대한 걱정, 슬픔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불분명한 나의 미래와 조급한 일상에서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내 기분과 일상이 쉽게 흔들리지 않도록 조금 더 독하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 내 인생을 조금만 더 잘 살아보기 위해, 가족의 아픔을 조금만 덜 나눠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작가의 이전글 나까지 울면 안 되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