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견디게 해 준 것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붙잡았던 이야기

by 하얀 오목눈이

살다 보면

앞으로 나아가는 힘보다

그 자리에 서 있는 힘이

더 필요한 날들이 있다.


의욕은 쉽게 닳아버리고,

이해받지 못하는 순간은 반복되고,

괜히 나만 뒤처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그럴 때 나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을 견디게 해주는 이야기를 찾게 된다.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은

그런 순간에 만난 이야기였다.


이 드라마는

현실을 미화하지 않는다.

불합리는 그대로 있고,

권력은 여전히 강하며,

정직한 사람은 자주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더 믿을 수 있었다.


조장풍은

세상을 단번에 뒤집는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여러 번 밀리고,

이미 한 번 꺾인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포기하지 않는 법을 다시 배우는 사람이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종종

‘끝까지 버티는 사람’을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말한다.


한 번 무너졌어도,

다시 돌아오는 사람도

충분히 강하다고.


이야기 사이사이에 흐르는

육중완의 〈RUN〉은

그 메시지를 더 분명하게 만든다.


이 노래는

“더 빨리 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멈추지 말자”고 말한다.


그 차이가

지금의 나에게는

아주 컸다.


현실을 견디게 해준 건

희망찬 결말이 아니라,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였다.


드라마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하나씩 드러내며 말한다.


이건 네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구조가 잘못된 거라고.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게 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용기를 주기보다

외로움을 덜어준다.


“너만 이런 게 아니야.”

“너의 분노는 정당해.”

“그래도 아직 끝난 건 아니야.”


그 말들 덕분에

나는 다시 하루를 버텼다.


현실은 여전히 거칠고,

내일이 갑자기 나아질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오늘을

무너지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면,

그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현실을 견디게 해 준 건

대단한 성공담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그 이야기를 기억하며

다시 한 걸음,

아주 느리게라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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