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돌리기 12,13,14

by 윤경

12

삑, 삑, 삑.

까먹을까 봐 적어두는 기억들은 온데간데없고, 잊으려고 버려둔 기억들이 해수면 위로 몰아칠 때가 있다. 일자로 선 선수들이 신호에 맞춰 운동화로 경기장 바닥을 지진다. 썰물처럼 밀려들어온 기억은 묻혀있던 것들까지 끌어올린다. 좁은 경기장의 소리들은 천장을 뚫고 날아가지 못하고 세연에게 달려든다. 불쾌한 셔터 소리가 들린다. 숨을 쉬는 방법을 잊었다. 분명 머리 한 구석에 적어뒀는데 아무리 뒤져봐도 깜깜하다. 달려든 소리들은 세연의 주위를 돈다. 머리에 단 한 가지 생각만 남았다. 세연은 반복해서 신호를 뱉는 스피커의 코드를 뽑는다. 모두가 죽어버린 스피커와 세연을 바라본다. 이제 분명 죽었을 텐데, 숨이 남은 소리가 세연을 괴롭힌다. 발로 죽은 스피커를 밀어버린다. 완전히 죽어버린 존재도 소리를 내던가. 반복해서 일자를 그리던 선수들이 이젠 세연의 주위를 감싼다. 가운데에 선 세연, 어딘가 돌려지고 있을 자신의 존재를 죽이고 싶다.


사진 지워.


세연이 뱉은 말은 걷는 방법을 까먹었는지 닿지 않는다. 죽어버린 소리들 사이에서 소리 내는 방법은 악을 지르는 것뿐이다. 지우라고, 다 지워. 다 갈라진 소리가 모두에게 향한다. 부서진 스피커에서 마지막 소리가 들린다.



13

열두 시가 지났다.
한민혜 여사의 생일이 끝났다.

민혜가 만든 수건은 그 무엇도 축하하지도 못한 채로 우유에 젖어들었다.



14

죽어버린 존재가 어떤 소리를 낼 수 있을까. 개수대의 뿜어대는 물에 머리를 녹인다. 뇌를 꺼내 씻어내는 상상을 한다. 주름 하나하나 생긴 곰팡이를 지워내고 락스를 뿌린다. 지워낼 수 있다면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세연은 박스에서 수건을 하나 꺼내 얼굴을 닦는다. 닦아낼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문지를수록 번져가는 것들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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