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충동, 조각에서 인간 삶의 본질을 엿보다

조각은 인간 삶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부딪히는 충동이다

by 나디아

한 여름의 태양이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어느 날, 북서울미술관 <조각 충동> 전시회를 다녀왔다.


'조각 충동'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인 후 속은 텅 빈 상태를 시사한다. 21세기 우리들에게 조각은 과연 무엇인가. 조각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나는 전시회 제목에서 찾았다. 이 세상에 모든 것들이 블랙홀에 흡수되기 전 수많은 충동을 겪는 것처럼, 조각이 우리에게 인식되기 위해서는 인간 삶의 경계 속에서 무수한 충동이 일어난다.


KakaoTalk_20220720_105122847_08.jpg


금속 재료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사실 풍선과 같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미술관 내부의 기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전시 공간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조각은 더 이상 동떨어진 형상이 아니다. 미술관 전시품으로 존재해왔던 조각이 주변 공간과 어우러지면서 예술의 의미를 한 차원 끌어올리고 있다. 조각을 미술관의 기둥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예술과 일상의 이분법을 허물어 공간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KakaoTalk_20220720_105122847_09.jpg


조각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인간이 정해놓은 '공간'이라는 규범 안에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비틀고 뛰어넘는다. 더 이상 조각은 고정적인 형상이 아닌 것이다. 감상자의 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조각의 모양은 부분만 보고 모든 것을 통달하고 있다고 믿는 인간의 자만을 경계한다.


KakaoTalk_20220720_105122847_03.jpg


가까이서 보면 알루미늄으로 꼬여놓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멀리서 보면 여인의 초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인간이 자신이 갇어둔 자의식 속에서 얼마나 나약해질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KakaoTalk_20220720_105122847_06.jpg


가끔은 멀리서 볼 때 작품 본연의 모습이 서서히 다가온다. 가까운 관계라고 해서 모든 것을 완벽히 또 정확하게 아는 게 아닌 것처럼 조각도 멀리서 조망할 때 다가오는 느낌이 큰 경우가 있다.


KakaoTalk_20220720_105122847_10.jpg


우레탄을 발사하면 작가가 의도한 표적을 빗나가 엉뚱한 방향으로 흩어지는 이 모습이 정보화 시대에서 주체성을 잃고 객체로 전락한 현대인의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AI 추천 알고리즘이 마치 제 취향이라고 믿고 사는 21세기 우리에게 작가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일까.


KakaoTalk_20220720_105122847_11.jpg


젖은 흙으로 만든 작품이다. 조각은 고정되고 죽은 것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아직 마르지 않은 흙의 조각은 살아있는 듯한 생동감을 준다. 시간의 흐름이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생각. 감상자의 숨과 마르지 않은 흙의 숨이 한데 어우러져 작품에 숨을 불어넣고 있다.




난 이번 전시를 보면서 양자역학이 생각났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조각의 위치와 형상이 과연 그 본연의 모습일까. 어쩌면 우리가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은 완전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시간의 스펙트럼 속에서 과거, 현재, 미래 그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닐까.


그러니 진실이라 믿는 실체도 낱낱이 파헤치면 결국 하나의 표상이거든 눈에 보이는 대로만 믿지 말고드러나지 않은 기저에 놓인 것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간은 인문학에 대한 갈증을 느끼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