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청년이 군대에서 타락하는 과정
넷플릭스가 공개한 드라마 <D.P.>는 “당시가 기억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불러일으킨다”는 반응을 얻을 만큼 소름 끼치도록 현실적으로 군대의 속살을 묘사했다. 그러나 이 호평은 비단 현실적인 묘사만으로 완성된 것은 아닐 것이다. 드라마 전반에 깔린 묵직한 메시지는 군을 경험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철조망 바깥에 있는 모든 이에게도 무겁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군복을 입은 죄
군대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서 한 달여의 훈련 기간으로 강력한 지휘체계를 형성하는 독특한 집단이다. 드라마가 전하는 메시지는 이 특성과도 맞닿아 있다. <D.P.>의 메인 포스터는 민간인 복장과 군복을 입은 사진이 절묘하게 맞붙어 있는 모양새다. 영외에서 주로 활동하는 ‘D.P.’ 병사를 묘사한 거겠지만, 이 포스터는 ‘악의 평범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는 미국의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언급한 개념이다.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는 광신도가 아니라, 상부의 명령에 순응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의한 것임을 설명한다. 드라마 초반에 잠깐 등장하는 윤일병 사건도 마찬가지다. 선임병이 앞장섰고, 후임병들이 동조하면서 참사로 이어졌다. 군대의 지휘체계는 개인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고, 상명하복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기 때문에 ‘악의 평범성’ 사례가 나타나기 쉽다.
드라마는 헌병대장 천용덕 중령을 내세워서 이 개념을 공고히 한다. 에피소드 제목에서도 언급한바 조석봉을 ‘군견’에 비유한다. 대장은 특임대를 출동시켜 군견을 사냥하기에 이른다. 특임대원들도 같은 기간병일 뿐이지만, 그들에게는 명령을 거스를 권리가 없다. 이처럼 군대는 명령이라는 참 쉬운 약속으로 폭력의 대물림, 그 순환고리를 형성한다.
군복과 계급이라는 껍데기
위병소 앞 경계선은 군대와 사회를 구분 짓는 최후의 관문이다. 군대는 이 선을 경계로 군인과 탈영병을 규정한다. 철조망 안의 군인에게는 모두 동일한 군복과 계급을 제공한다. 상하관계를 규정하고 ‘폭력’까지 묵인할 수 있는 이 계급이라는 권력은 단지 시간만 흐르면 얻어지는 훈장이다. 이 무책임한 껍데기는 국가가 부여한 신성한 의무이기도, 악의 근원이기도 하다.
문제는 누군가 정해놓은 ‘군인상’이다. 부대에 신병이 전입을 오면 며칠 간 평가에 들어간다. 평가의 기준은 철저히 노동의 효율성에 근거한다. 그 틀에 꼭 맞는 사람은 소위 ‘A급’, 모자라거나 어설픈 사람은 ‘폐급’이라는 꼬리표를 얻는다. 그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심한 경우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기 파괴성: 그 불편한 질주
조석봉 일병도 ‘악의 평범성’을 증명하고 폭력의 순환고리에 탑승한다. 극의 즐거움을 결정하는 주동인물과 반동인물의 갈등이 형성되고, 황장수의 파멸을 지켜보는 것은 쾌감을 선사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조석봉의 광기는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의 복수는 마치 가시가 안쪽을 향하는 선인장과 같다. 표면적으로 황장수를 향하는 칼날이지만, 정작 파괴되는 것은 조석봉 자신이다.
“죽인다고 끝나냐? 사람이 죽을 때 되면 반성할 것 같냐?”
군탈 담당관의 말대로 석봉의 방식은 올바른 복수가 아니다. 석봉은 누가 봐도 선한 인물이다. 폭력의 대물림을 끊겠다 다짐하고, 영창에 갇힌 준호에게 초코파이를 건네기도 한다. 그런 그가 불 보듯 뻔한 파멸의 길로 들어서니 복수는 더이상 복수가 아니게 된다.
‘D.P.’의 존재 이유: 최후의 완충지
군대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공존할 수밖에 없는 집단이다. 황장수처럼 밀림의 왕으로 군림하는 자도, 한호열처럼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도 있게 마련이다. 그곳에서 탈영은 중한 범죄다. 탈영병을 붙잡기 위해 병사들을 파견할 만큼 군은 탈영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한 가지 모순이 있다. 정작 그들의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그들의 탈영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들에게 탈영은 최후의 보루였음을 설명한다. 더는 숨 쉴 공간이 없어서 살기 위해 도피하는 것임을 마음으로 이해한다. 세 번째 탈영병 치도는 그런 면에서 아름다웠다. 결국 호열이 그를 보내주는 것을 보면 ‘D.P.’는 어쩌면 단순한 추격자가 아니라, 가혹행위의 끝에서 푹신한 완충지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결말: 수많은 방관자 중 한 명
드라마는 두 번째 시즌의 여지를 남기며 의미심장하게 마무리한다. 앞서 두 개의 대열에 서 있던 병사들이 우측으로 전진하고, 자연스럽게 대열에서 탈락한 준호는 반대 방향을 향한다. 직관적으로 보면 군탈 담당관이 앵글 밖에서 준호를 부르는 목소리. “안준호 빨리 안 와” 두 번째 시즌에서도 여전히 ‘D.P.’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는 기대를 남긴다.
하지만 장면으로 전하는 메타포는 더욱더 의미심장하다. 준호 앞에 서 있던 대열은 부조리를 지켜보기만 했던 방관자들이다. 그들의 뒤를 따르는 것은 준호도 수많은 방관자 중 한 명일 뿐이라는 암울한 결말이리라. 역시 준호는 반대편을 향하고 베레모를 벗어 던진다. 군인에게 모자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영내에서 베레모를 벗는다는 것은 금기 같은 일이다. 홀로 떨어진 준호의 이 행동은 ‘군대가 강제하는 모든 관습과 억압을 벗어던진다’라는 의미기도 할 것이다.
첫 화의 한 장면도 결말과 맞닿아 있다. 준호 역시 첫 임무에서 술을 마시며 방관하다가 억울한 인명 한 명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자신을 방관의 길로 내몰았던 선임병 성우를 무차별 폭행한다. 여기서 돋보이는 연출이 있다. 짧은 몽타주 기법으로 성우의 얼굴과 준호의 얼굴이 교차 편집되는 것이다. 이 장면은 준호의 굳은 의지를 보여 준다. 군대에서 방관자가 되느니 차라리 자신을 파괴하겠다. 이런 강한 의지다. 준호에게 그날의 기억은 문신처럼 새겨졌을 거고, 두 번째 시즌에서도 그 의지는 이어질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D.P.’(2021)
연출: 한준희
출연: 정해인, 구교환, 김성균
장르: 웹드라마
국가: 대한민국
군대가 갖는 폭력성의 실체를 파고든 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