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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냐 Jan 09. 2024

오늘의 소란

명랑한 할머니 되기



어제 엄마가 이가 좀 시려서 병원에 가야겠다고 하셨다. 치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시린 윗니는 아무렇지 않다고 치료를 해주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데 아래 어금니가 썩었다며 신경치료 후 크라운을 씌워야 한다고 한다며 오십만 원이나 든다고 했다.

치아관리도 얼마나 깨끗하게 했는지 우리 엄마는 팔십이 거의 다 되도록 예전에 치료한 이 말고는 충치하나가 없다

저녁에 아이가 왔길래 얘길 했더니 자기가 치료해드리고 싶다고 한다. 엄마도 그걸 더 좋아하실 것 같아 전화해서 그러시라 했더니 아프지도 않은 어금니를 왜 치료해야 하냐고 계속 이상하다고 한다. 그래도 치료하는 게 좋겠다고 하니 서울까지 가서 치료받기가 번거롭다고 계속 치료를 받지 않겠다 한다

그럼 한 번만 오실 수 있게 신경치료를 받고 애가 있는 병원으로 모시고 가겠다고 했다

오늘 아침에 다시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어제 치료해야 한다고 했던 어금니를 괜찮다고 돌려보냈다는 거다.

“거봐 내가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잖아”

엄마는 치료하지 않아도 될 이를 치료한다고 했다가 손자한테 간다고 했더니 뭔가 제 발이 저려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나 보다.

“이제 여기 안 올 거예요” 하고 그냥 오셨다는 거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엄마한테 병원이름을 물어 전화를 했다.

우리 엄마는 한 짝귀는 거의 못 듣고 다른 쪽 청력도 많이 약하다.

전화받은 간호사가 설명하기를 엄마가 왜 아프다는 이는 치료하지 않고 아프지 않은 이를 치료하라고 하냐고 계속 그러시니 시리다는 윗니만 다시 보고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렸다는 것. 그걸 듣고 아랫니를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다시 엄마한테 전하니 잘 못 알아들은 것이 무안하셨는지 이제 안 온다고 한 말이 부끄러우셨는지 이젠 한사코 이 치료를 안 하시겠단다. 나중에 아프면 하겠다고.  나중에 치주염이 되면 더 아플 거고 고생한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질 않는다.

어제 내가 보냈던 이 치료비도 다시 돌려보냈다.

점심을 먹고 엄마 맘이 좀 누그러질 때를 기다려서 다시 전화를 했다. 병원에 전화해 놓았으니 가서 나는 안 아파서 괜찮은데 우리 딸이 하라고 하니 왔다고 말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알겠다곤 하는데 사실 정말 병원에 가실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엄마는 순하고 착하다. 세상에 우리 엄마처럼 바보스러울 만큼 자신 말고 남 생각을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귀가 잘 들리지 않은 뒤로 가끔 혼자 오해하곤 무안한 마음을 뭉쳐서 고집을 부린다.

나는 조금 걱정이 된다.

저렇게 착한 엄마도 나이가 들고 몸이 불편하니 고집 센 노인이 되어 가니 엄마보다 훨씬 못된 난 어떤 노인이 될 것인가.

우리 애들 귀찮게 하지 않는 명랑하고 귀여운 노인이 되고 싶은데.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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