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 걸까
앓느라 가을이 온 것을 몰랐다. 제주의 세 밤과 낮은 여름이라 할만했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부터 나는 아팠다.
따뜻한 맹물을 삼키면서 거실에나 나왔다 들어가면서 열흘쯤 지냈다. 몸이 조금 낫자 앓던 시간에도 나는 옛 동네의 가을이 궁금했다. 늘 내게 계절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던 곳이라 도서관의 책을 대출받겠다는 핑계를 대고 옛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주차장 입구의 벚꽃들과 산책로의 마로니에나무, 아동공원의 단풍들이 모두 아직 파랗다. 이미 겨울 찬 바람이 부주의한 얇은 옷을 파고드는데 내가 이름 지어 부르던 “나의 앞마당 ”은 단풍 없이 나뭇잎들이 세찬 바람에 떨어져 아무 볼품이 없다.
이게 뭐라고 속이 상한지.
나는 오래 쏟아지던 벚꽃 속에 서서 유모차를 끌고 가는 아이 엄마였다. 공원 한편에 쌓여있던 나뭇잎 더미에 아이를 앉히고 맞은편 벤치에 카메라를 맞춰놓고 아이 옆으로 달려가는 엄마였다. 머리가 땀으로 다 젖도록 노는 아이를 불러 얼음물을 먹이던 엄마였다.
나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내려갔다가 너무 추워 이를 딱딱 부딪치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렸었고 한밤중 검은 비닐봉지에 사들고 오던 캔맥주를 꺼내 컴컴한 나무 아래에서 꿀꺽꿀꺽 마시기도 했다.
나는 거기 서서 조그만 아이가 자전거에 우산을 씌우고 제 엄마를 기다리는 것을 보았고 마로니에 열매를 발로 차며 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보았다. 떨어진 은행잎이 가을비에 젖어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걷던 여자를 보았다.
그동안 이렇게 푸른 단풍은 없었다. 칠엽수도 푸른 상태로 떨어져 내리고 단풍과 은행나무 아래도 푸릇한 잎들이 떨어져 말라가는 중이다.
우리는 어쩌면 머지않은 때 “옛날엔 단풍놀이라는 걸 했었지”라는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11월 초까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다 하룻밤새 추위나 영하의 기온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말뿐 아니라 사과도 감도 도토리도 잘 여물지 못하는 가을을 맞았다. 아니 곧장 겨울을 떠안아버렸다.
몸이 아직도 가뿐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파랗게 물이 들지도 못한 나뭇잎들처럼 바뀐 계절에 적응하지 못해서 일지 모른다. 오십여 년 내 몸도 여물 지 못해 제대로 달리지 못한 가을 밤송이처럼 앓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내년은 다를까, 올 겨울엔 미세먼지가 극성일 거라고 하던데 내년 몸에 벚꽃은 개나리는 제 때에 필 수 있을까.
쓰레기통을 비우면서 이 많은 것을 어디에 또 묻고 태워야 하나 무서운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