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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냐 Sep 04. 2023

손길이 마음길

돌봄 받는 시간

며칠 전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다녀왔다. 얼마 전부터 아이는 원내생진료라는 이름으로 환자를 보고 있다. 환자의 대부분은 아이의 고등학교 친구들이고 가끔 일반 환자들도 있다. 주로 하는 것은 스케일링이다.

어느 날은 고맙다고 공부하느라 힘들겠다고 손을 쓰다듬어 주시는 할머님의 격려를 받았다고도 하고 교수님 말을 단번에 알아듣지 못해 속상했다고 시무룩해하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는 언제 올 거야” 라며 채근하기에 “꼭 가야 하냐 ”라고 발을 뺐는데 여자친구 엄마는 벌써 다녀가시며 점심도 사주셨다고 서운해하는 듯했다.

여하튼 그런고로 바로 다음 주로 예약을 하고 예약일날 억수로 오는 비를 헤치고 병원에 도착했다. 로비층에 마중 나와 있던 아이가 미리 접수를 끝내놓아 영상 촬영 후 바로 진료실로 내려갔다. 진료의자에 누운 얼굴에 초록천이 덮이고 입을 아 벌린 상태로 아이가 하는 스케일링을 받았다. 성격처럼 조용조용 설명을 하면서 잇몸을 살피고 기구들을 사용해 부드럽게 치아 사이를 긁어냈다.

한 시간 가까이 아이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이가 태어난 때부터 지금도 가끔은 내 차지였던 자세. 보살피고 보호하는 자의 모습인 아이는 처음이었다. 낯설긴 해도 돌봄 받는 기분이 생각보다 편안했다.

아이 나이를 세어보다가 나도 깜짝 놀라곤 하지만 지금 내 나이가 이 아이를 낳아 우리 엄마가 할머니가 돼버린 때와 다르지 않으니 이제 차례가 살살 올 때도 된 것 같다.

지금도 등짝을 때리며 잔소리할 일이 천지인 철없는 남자애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그럴싸했다.

야구하는 걸 좋아해서 그 손으로 어떻게 환자들을 보려나 굳은살 박힌 손이 무뎌지면 어쩌나 혼자서 했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목소리와 손놀림만 있던 잠시의 시간, 아이의 부드러운 성격이 내게 그대로 전해졌다. 사람의 손이란 성정과 그렇게나 닮아 있다는 걸 알았다.


밥을 사주고 다시 병원에 아이를 내려주고 창경궁과 광화문을 지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걸리적대는 것이 없이 매끈한 잇사이를 자꾸만 혀로 만지게 된다. 새것을 처음 받은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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