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좋겠다
너 안 쓰는 가방 있으면 엄마 줘, 엄마가 돈 줄게
무슨 가방이요?
미니가방, 옆으로 메는 거. 가죽으로.
내가 그런 게 어딨어. 사다 드릴게. 어깨부터 크로스로 내려오는 끈 긴 거?
아니, 살 거면 말고. 너 안 쓰는 가방 중에 달라고. 엄마가 십만 원 줄게.
안 쓰는 가방 없어, 무슨 색?
아니 사지 마 그럼, 난 너 안 쓰는 거 있음 달래려고 했지. 검은색 닥스 꺼. 지난주 교회 가니 모권사가 들고 왔는데, 이쁘던데. 그래도 사지 마.
먹던 아침을 대충 정리하고 애인한테 전화를 했다. 효도쇼핑 가자고, 오랜만에 백화점에 가니 매장마다 봄이라고 가방이며 블라우스며 얼마나 알록달록하고 예쁜지. 더 좋고 비싼 브랜드에서 환하고 예쁜 색의 가방을 사고 싶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엄마눈에 권사님 검은색 가방이 들어와 버렸으니 꼼짝없이 검은색 닥스가방으로 골랐다. 무겁지 않고 크기도 적당한 것을 매장에 부탁해 바로 엄마주소로 보냈다.
온 김에 애인은 봄옷을 장만하고 나는 새 골프화를 하나 샀다. 국수를 먹으면서 속이 너무 들여다보이는 서로의 친정엄마들을 얘기했다.
오늘 오후에 배송알람이 뜨고 바로 엄마의 카톡.
어머 맘에 쏙 든다, 얼마 줬어. 십만 원짜리 사지.
가방 십만 원짜리가 어딨어
얼마 줬어? 엄마가 보낼게. 십만 원짜리 사지.
제가 사 드릴게요, 그냥 쓰셔.
(숨도 안 쉬고) 그래 고마워, 어버이날선물로 받을게.
하하하하
우리 엄마 귀엽다. 어버이날이 언제라고, 또 어버이날엔 어버이날 선물이 있다는 걸 다 알면서.
엄마는 좋겠다.
뭘 보는 대로 갖고 싶다 이야기할 내가 있어서.
아 뭘 얘기하면 바로 사다 주던 사람이 나도 있었지. 나이키운동화, 이선희 첫 콘서트티켓부터 양털무스탕잠바, 비싼 가방까지.
공강이라 학교 안 가는 미대오빠 밥 해주고 집에 있다가 작업실 간다기에 오후 늦게 나와 정동에서 신세계 본점까지 걸었다. 들락날락하며 구경하다가 계획에도 없던 여름샌들을 샀다. 퇴근한 남편을 백화점에서 만나 애처럼 산 것을 보여주고 정동에 와인을 마시러 가자고 졸랐다. 차를 놓고 다시 걸어 삼성본관 언덕을 넘어 고려삼계탕에서 밥을 먹고 정동교회를 지나 와인바에 들어왔다. 테라스가 좋아서 자리를 잡고 와인을 주문하고 밤바람을 쏘인다. 담장에 고양이와 눈을 맞추고.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조를 사람이 있구나, 이 남자가 이젠 내 차지로구나.
남편이 담배 피우러 간 사이 새삼스런 생각으로 앉아 있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금요일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