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물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냐 May 16. 2024

부스러기

아침의 빵가루

책을 읽으며 베이글을 베어 먹은 자리에 빵가루가 떨어집니다 패티스미스가 아기를 낳고 학교를 그만둔 후 뉴욕에 와서 노숙을 하던 이야기 사이에 그것들이 모여 있습니다 책을 세워 빵가루를 털고 검지손가락으로 살금 모아 두니 손에서 빵냄새가 납니다


전에 어떤 이와 연필 깎는 이야기를 하며 마음이 무거운 날 새 연필을 꺼내 열 자루고 스무 자루고 그렇게 연필을 깎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런 날이 내게도 있었다고요


“세상에 의지할 게 연필밖에 없다니! “


그녀와 나는 탄식했습니다


지금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나는 오늘 아침 빵가루에 겨우 기댑니다 애를 쓰고 놓치지 않으려 참아오던 일에 아무런 보람도 기쁨도 없는 날, 다음에 올 것을 거부하지 못하고 미리 걱정이나 하며 두려워하는 모난 마음이 겨우 조그만 빵가루들에 놓입니다

보잘것없이 작은 것, 먼지까지 뭉쳐져 흐릿해진 빵가루와 빵가루의 사이에 더 작고 작아진 마음을 슬쩍 섞어 놓아 봅니다 냄새가 좋다고 생각하면서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아요


어제의 비가 오늘은 씻어놓은 햇빛을 가져왔습니다

아이를 불러 아침을 먹여야겠어요 빵가루 사이에 숨어 있는 소심한 기분을 깨워 햇빛 속으로 들어가려고요 풀이 죽어 있는 감정에 그것들을 끼워 넣어야겠어요 빵가루처럼 모여 있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