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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냐 Jun 05. 2024

운수 좋은 날

그녀가 웃었다

어떡하지?

그녀는 아침부터 앱지도에 목적지를 넣고 자동차와 대중교통을 번갈아 가며 검색했다


이십 대 초반, 태어나 젤 잘한 일이 한글 깨친 것과 운전 배운 것이라며 늘 웅변해 왔던 그녀 엄마의 강권으로 딴 면허만으로 보면 그녀는 삼십 년이나 된 베테랑 운전자였다.

결혼하고 곧 아이가 생겼고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생각보다 차가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늘 늦는 남편을 대신해 열이 끓는, 어느 날은 우유를 분수처럼 토하는 아이를 태우고, 또 어느 날은 잡기 놀이를 하다가 넘어져 이마가 쩍 벌어서 피를 철철 흘리는 형제를 태우고 그녀는 달렸다.


혼자서 할 때는 괜찮았는데 시아버지를 모시고 어딘가를 가는 내내 손끝만으로 길을 가르쳐주는 혼란한 상태에서 겨우 볼 일을 마친 시아버지를 다시 태우고 집으로 가는 길에 기어이 돌아 나오다 보도블록경계석을 휠로 긁고 말았다

별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주의가 산만하다는 나무람이 댁에 모셔다 드릴 때까지 계속됐다. 카시트에 앉아 조용히 잠든 형제가 다 고마웠다.

괜찮아, 안 다쳤으면 됐지

남편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어딜 가든 운전대를 주지 않았다


할 수 있겠어?

차선에 너무 붙었잖아

뒤에 오는 차를 늘 보고 있어야지

아, 옆에 차 들어온다고 깜빡이 켰잖아

그냥 내가 할게


그때부터였나

그녀는 운전이 두려웠다

운전을 하려고 생각만 해도 앞에서 차선을 넘어 달려오는 차와 충돌하거나 그녀 자신이 옆 차선의 차나 구조물을 피하느라 가드레일을 넘어 옆 차선으로 돌진하는 그림이 머릿속에 내내 그려졌다

차키를 들고 내려왔다가도 괜한 짓으로 남과 자신을 다치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그대로 버스 정류소로 걸어가곤 했다


그녀의 아이들은 커서 각자의 자전거를 타고 학교도 학원도 다니고 그녀는 집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고 배달을 시켰다. 차를 타고 이동할만한 “생활”이런 것이 그녀에겐 없었다. 극장도 백화점도 걸어갈 수 있었다. 일 년에 서 너 번 김장과 제사 때 시댁에 차를 몰고 가는 것 정도로 그녀는 운전과 멀어졌다. 무엇보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천성도 한몫했겠지만 시간과 비례해서 그녀의 운전공포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당연히 오랫동안 운전을 하지 않고 지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운전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던 작가의 북토크가 지방의 작은 책방에서 열리고 있었다. 몇 년 만에 신작을 낸 작가가 사생활 이슈로 인해 많은 독자를 잃고 그 일이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진 뒤에도 오랜 기간 슬럼프에 빠져 일상생활조차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꼭 눈을 맞추고 그를 오해하지 않고 기다려온 독자가 있다는 것을 직접 말해주고 싶었다. 대중교통으로 다녀오면 저녁 늦게 끝이 나는 북토크 후 작가를 가깝게 마주하는 시간까지 함께 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몇 번이고 경로를 검색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초여름의 날씨는 초록 그 자체였다. 시내를 빠져나와 국도에 들어서자 지나는 차들이 드문드문했다. 속도를 크게 내지 않는 그녀의 차 앞으로 몇 대의 차들이 앞질러 갔다.

운전이 익숙해지자 내비게이션을 힐끔 거리며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아 저게 뭐야

도로에 무언가 떨어져 있었다. 스티로폼박스였다.

급히 핸들을 꺾었다, 속도를 줄이는 것은 잊었다.

그녀의 차가 가드레일을 타고 올랐다 쿵하고 떨어졌다.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잡았는지도 모르겠다.

멈춘 차에서 바라보니 텅 빈 도로에 스티로폼 조각들이 뒹굴거리며 날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고 그녀는 나직이 혼잣말을 했다.

삽 십 년 동안 수 천 수만 번 반복해서 상상했던 일이 드디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밀린 숙제를 끝낸 기분으로 휴대전화를 들었다.

분명히 웃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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