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그런 안내가 되어 있어요?
짐을 부치는 중이었다 멀리 몸이 반쯤은 공항직원에게 넘어가 있는 여자가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직원이 시키는 대로 짐을 올리고 무게를 확인하는 동안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높아졌다
20분 전에 와야 한다는 안내가 어디 있냐고요 휴대폰화면을 직원의 얼굴 앞에 대고 그녀는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금속성의 목소리가 너무나 거슬려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여자는 물러서지 않고 계속 소리치고 있고 옆에는 동행인듯한 머리숱 적은 흰머리의 남자가 서 있었다
다들 찡그린 얼굴로 이젠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지르는 그녀를 보고 있는데 아무 표정 없이 정물처럼 서 있는 남자는 시간여행자처럼 낯설었다
출국장을 나와 라운지에 들려 간단히 아침을 먹고 비행기에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동안에 나는 그들을 잊었다
다카마스는 처음이다 소도시의 공항은 작고 직원들은 너무나 친절하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웃음 가득한 인사를 받으며 입국장을 나와 공항 셔틀버스를 탔다 작은 섬들을 들릴 생각으로 온 거라 페리선착장이 가까운 곳에 호텔을 예약해 두었다 유명한 우동집에 들러 식사를 했는데도 아직 체크인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근처 리츠린공원에 갔다 이른 여름이었으나 햇빛이 대단했다 수형이 화려한 나무들과 연못이 예뻤지만 그늘이 별로 없는 공원을 걷느라 금세 지쳤다 새벽에 나와 비행기를 탔으니 피곤하기도 했다 공원 가운데 찻집에 들었다
정말 저게 뭐니? 너무 추래하지 않아? 그렇게 부자이던 나라가, 참
뒤쪽에서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용어가 아닌 곳에서 들리는 우리말 소리는 스피커를 켜놓은 듯 크게 느껴졌다
오래된 공원은 조금은 낡고 빛바래 있었다 연못의 물은 탁했고 지저분했다 산책로에 깔아놓은 풀잎을 엮은 매트는 해져서 신발에 흙먼지가 묻었다 지자체마다 경쟁하듯이 공원과 산책로, 둘레길을 정비하는 우리나라의 정리된 공원과 굳이 비교를 하라면 그랬다
그녀는 이제는 산책 중인 사람들을 흉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옷차림이거나 혹은 튀어나온 뱃살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염색하지 않은 머리칼, 알아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인지 목소리도 줄이지 않고 함부로 험담을 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 앞에 앉은 여자도 지쳤는지 마지못해 대꾸를 하는 얼굴이 굳어 있었다
아침 일찍 양복을 입은 출근자들과 관광객 사이에 앉아 페리를 타고 나오시마에 들어와 셔틀버스에 올랐다 페리에는 없던 다른 피부색의 관광객들이 많았다 영어나 스페인어, 불어를 사용하는 그들은 좁은 버스 안에 손잡이를 잡고 서거나 앉아서 조용조용히 대화했다 지추미술관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알아보라고 했지
어떡해 내일 다시 와야 해?
큰 목소리로 소리치는 그녀 옆에 낯익은 숱 적은 머리, 그녀와 그 남자다
데스크에 다가가 들어가게 해 주면 안 되냐, 외국인이다, 미안하다, 부탁한다
여자에게 등을 떠밀려 안내직원에게 조용히 부탁하던 그가 고개를 저으며 그녀 앞으로 다가오자 밀치고 그녀가 나섰다
왜 안되냐고 한 두 명쯤 들어가면 왜 안되냐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뒤에 선 나와 다른 관람객들은 그저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나는 괜히 귀가 빨개졌다
결국 내내 표정이 없던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가, 가자고! 다시 오면 되잖아
동선이 뻔한 여행지라서였을까 나는 자꾸만 마주치는 저들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나오시마는 아름다웠다 조약돌이 깔린 바다, 베네세 미술관 앞 노란 호박 앞에서 사람들은 줄을 지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미술관들 사이를 걸어 다니며 동선이 같은 관광객들과 자주 마주쳤다 파란 바다와 초여름의 푸르름에 감탄하며 오래 걸었다 페리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나는 또한 번 그들을 보았다
나란히 걷는 그들을 따라 걸었다 정말 더이상은 소란스러운 상황을 만들지 않기를 바랐다 차라리 앞질러 갈까 생각하면서 멀찍이 거리를 두고 걷는데 아무 말 없이 걷던 남자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길가에 함부로 자란 풀숲으로 들어갔다 또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해서 나는 조마조마하기까지 했다 다행히 소란은 없었고 그들을 앞질러 스쳐 지나가면서 보니 여자의 손에 꽃묶음이 들려 있었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하는 일 없이 시간이 지났다 오랜만에 다 늦은 여행 기념품을 건네주려고 친구들을 만났다
오래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산책이라도 하자고 수성동계곡 쪽으로 오르막길을 오르는 중이었다
아, 할머니 자꾸 쓰레기를 풀어놓으시면 어떡해요
가게 앞이 지저분해지잖아요
아 안 돼요 이제 오지 마세요
허리가 펴지지도 않는 작고 마른 할머니가 자신의 몸보다도 큰 보따리를 들고도 다른 손에 든 비닐봉지를 열어 길에 싸서 내놓은 빈병과 캔, 종이박스들을 넣고 있었다
노인이 걷는 오르막길은 가파르고 짐은 너무나 무거워 보였다 새카맣고 마른 늙은 손을 떨면서 보따리를 쥐고 온 힘을 다해 넘어지지 않으려 애를 쓰며 걷는 것처럼 보였다
아, 줘요 이리 달라고
참 노인네 이거 누가 가져간다고
오르막길을 걷느라 땅만 보고 걷던 사람들이 동시에 얼굴을 들어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았다
할머니의 지저분한 보따리를 뺏어서 들고 남은 손으로 노인의 손을 잡고 오르막길을 오르는 여자, 그녀가 분명했다
머리숱이 적은 남자가 뒤를 따라 걸었다 그의 손에는 빈 병과 종이박스가 들려 있었다.
<나오시마에 가고 싶다.
사진을 보다가 베네세에 묵으며 전에 썼던 손바닥 소설이 생각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