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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lon easy Sep 12. 2021

결핍 속의 풍요로움

Ntambu_Zambia_2006

무리한 해외 일정과 후반 작업의 고단함으로 영혼까지 갈아 넣은 듯한 2005년을 보내고 당분간은 맡은 프로그램을 차분하게 진행하며 일상에 충실하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한 신부님으로부터 아프리카 잠비아에 진~한 다큐멘터리 아이템이 있다며 같이 갈 수 있겠냐는 제안이 왔다. 왜 훅 당겼는지 모르겠지만 큰 고민 없이 회사에 보고하고 출장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역마살이 오히려 나의 일상이 되었다.


자고 싶다… 숨 쉬고 싶다


인천-홍콩-요하네스버그-루사카. 세 번의 환승을 하는 여정이었다. 총 25시간이 걸리지만 그나마 다른 코스보단 짧아서 선택한 루트였다. 하지만 2011년 잠비아를 들어갈 땐 시간이 더 걸리는 걸 감수하고 인천-두바이-요하네스버그-루사카 루트로 일정을 짰다. 이유는 홍콩-요하네스버그를 운행하는 캐세이퍼시픽에 가득 찬 중국분들 때문이었다. 13시간이나 걸리는 이 코스의 비행 내내 한숨도 잠들 수 없었다. 당시 아프리카 남부의 광산, 건설 현장에 수많은 중국 노동자들이 일을 하러 갔고 비행기에 가득 찬 그들은 내 주위에 삼삼오오 모여 싸우는 듯한 발성으로 두.런.두.런.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소리는 헤드폰 음악으로 어느 정도 막아본다고 해도, 진동하는 이 분들 특유의 향취는 10시간 넘도록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나라, 민족의 특징을 비하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견디기 힘든 내가 피하는 수밖에 없었단 소리다. 여행의 시작부터 녹초가 될 수는 없으니… ㅠ

잠비아 루사카 공항
이동 중에 만난, 밝은 잠비아 사람들

목적지는 잠비아의 오지인 땀부라는 곳이었다. 문명과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원주민들이 사는 잠비아 북서쪽 오지에 종합병원 규모의 의료시설과 행정중심지 역할을 하는 성당이 지어졌고 그 개관식 취재를 겸해서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작업이었다. 수도인 루사카 공항에 내려 키트웨로 이동했다. 땀부까지는 하루에 갈 수 없어서 중간에 위치한 키트웨의 피정의 집에서 1박을 하게 되었고 그곳 신부님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하루를 보냈다.

키트웨 피정의 집
키트웨 시장. 한참 휴대폰이 보급되던 시절의 광고.

풍요와 결핍의 아이러니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는 내전과 부족 간의 갈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그것들이 종교, 문화 등의 대립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대부분 석유, 다이아몬드 등 영토가 품고있는 자원에 관련된 분쟁 때문이라고 한다. 거기엔 이들의 조상들을 강제로 노예를 만들어 팔아 부를 축적했던 서구 사람들이 그 악의 역사를 변형해 여전히 자행하는 약탈과 부추김도 한 몫하고 있다. 그렇게 부족 간의, 국가 간의 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며 기아가 발생한다. (우리나라 자선단체들이 모금을 위해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보여주지만 풍요로운 자연을 가진 아프리카는 먹을 것이 없어 사람이 죽는 곳은 아니다. 단지 정치적, 분쟁적 상황으로 강제 고립되거나 폭력을 피해 생존 환경이 부족한 곳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들 때문에 곳곳에서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아프리카 남부에 위치한 잠비아는 주변 국가에서 피해온 많은 난민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곳곳에 난민촌들이 크게 형성되어 있고 유엔 기구 등 많은 국제 자선단체의 도움으로 삶을 연명하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잠비아에 원래 터전을 이루고 사는 70여 개 부족도 서로 큰 갈등 없이 지낸다. 잠비아는 어떻게 평화로운 상황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그 답은 위에서 얘기한 갈등의 원인에서 찾을 수 있다. 석유와 다이아몬드 등 가치 높은 자원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란다. 코퍼벨트라 불리는 세계 3대 구리광산이 있지만 그것이 거의 유일한 지하자원인 잠비아는 풍요로운 자원이 없어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곳이다.

인간의 삶에 부와 평화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밤이었다.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는 다른 명분의 가면을 쓴 채로 민족의, 국가의 경제적 이익때문에 행해지는 수많은 폭력과 분쟁에 평화를 뺏기고 신음하는 우리가 있다.

이동 중에 만난 타조를 닮은 나무(左). 보라색 꽃이 너무 인상적인, 잠비아 국화인  자카란다(右).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먹음직스런 과일 좌판.
신작로를 따라 하교하는 학생들
매일 깊은 풍경을 연출하는 아프리카의 석양
설치 미술품처럼 인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곳에선 교통사고가 나면 차에 악령이 씌여있다고 믿기 때문에 분노에 찬 주민들이 모여들어 이렇게 불태워 버린다고 한다.
카메라를 자주 들게되던 길게 뻗은 길들

땀부 미션


그나마 반듯한 비포장 길을 6시간 정도 달린 후 이젠 숲길로 들어간다는 걸 알려주는 표식을 만났다. 이곳으로부터 74km. 가다가 길이 끊겨있거나 웅덩이에 빠지지 않으면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작년에 경험하지 않았으면 이 무책임한 정보와 일정에 대한 부담에 암담했을 텐데, 뭐 그러려니 하게 됐다. 역시 경험이 불안을 치유한다.

이때 이후 여러 사연과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지금은 이 세상에 안계신 ‘유 신부님’은, 1997년 로마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복귀하기 전 동기인 아프리카 신부님들과 여행하다가 당신이 살아야 할 곳은 이곳이라는 이끌림에 무작정 오지로 들어왔다고 한다. 낯선 이방인에 대한 경계와 짧게 다녀가는 수많은 유럽의 선교사들에 대한 좋지 않은 경험 때문에 처음엔 이들에게 배척을 받았다고 한다. 숲에서 폭우를 맞으며 지낸 후 겨우 Hut을 지어 살고 함께 구더기를 잡아먹으며(물론, 수많은 과일과 카사바, 소고기도 먹는다.) 이들처럼 살기를 몇 년, 이웃이 될 수 있었고 추장으로부터 10만 평의 땅을 불하받아 집을 짓고 가톨릭 사제로서의 삶을 본격적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후 한국의 도움을 받아 성당을 짓고 한국에서 온 수녀회와 함께 병원을 만들어 개관식을 하게 되었다. 여러 인프라가 부족했던 잠비아 전체에서 큰 뉴스거리가 되었고 성대한 행사가 열리게 된 것이다.      

땀부 사람들

잠시 멈춰 서기


2005년의 경험이 새롭고 낯선 환경에서 나 자신을 더 가깝게 만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그 기대를 안고 이번 일정 전에 스틸 카메라를 장만했다. 캐논 350D와 두 개의 렌즈(24-105, 70-200). 촬영 장비와 함께 들고 다니며 담고 싶은 장면 앞에 잠시 멈춰서 카메라를 바꿔 들길 반복했다. 프로그램에 쓸 거라는 핑계를 앞세워 그렇게 틈틈이 이곳의 다양한 프레임에 나의 내면을 투사하게 되었다. 어두워지면 아무 것도 할 게 없는 곳, 숙소에서 사진을 정리하며 나와의 시간을 보냈다.


엄마   


전화를 하셨습니다.


어릴 땐 저렇게 따라다니며 

화장실도 못 가게 했다는데…

이제는 안부 전화조차 거의 안 하는 

무뚝뚝한 둘째 아들에게 


그냥 생각나서 했다고…


천 번을 생각하고 용기 내어 

한번 전화하시는 모습이 


뿌옇게 그려집니다. 



다리   


위태롭던 다리는 안타깝게 무너지고

그 받침들만 앙상하게 남습니다.


세월의 물줄기에 저 기둥들마저

하나 둘 쓸려 내려가겠지요.


이제 개울 건너에 

어찌 가야 할지 막막합니다.


그래도…

가야 합니다. 



자전거 소년   


잠비아 오지에서 만난 친구입니다.

고물이지만 자전거를 가지고 있어 뿌듯해했고

내 사진기 앞에서 기꺼이 포즈까지 취해주었습니다.


왜 이 친구가 부러웠는지…

생각해봅니다.



이인조


자부심을 싣고 달리는 땀부의 오렌지족과

평생 친구로 지낼 것 같은 씽크로나이즈드 키즈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만났지만

두 청년의 어린 시절이

씽크로 키즈와 하나의 모습으로 연결됩니다.


문득 내 소중한 친구들이 보고 싶습니다.

 


지금 다시 그 때를 떠올리며, 많은 위로를 받았던 순수하고 맑은 표정의 땀부 사람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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